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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IONIONION Mar 12. 2018

서툰 어른, 서른의 정신승리

- 서툰 어른, 서른의 정신승리

오빠, 벌써 서른이에요? 와 진짜 어른이다!
형, 서른인데 돈 많을 거 아니에요 형이 쏴요


아무것도 없단다. 너희들과 똑같이 부모님 집에 얹혀살고, 한 번 카드를 긁을 때마다 내 마음속 알파고가 생활비를 계산해 준단다. 그래, 나 서른이야. 근데, 난 아직 어른이라고 하고 싶진 않아. 그래, "서른은 서툰 어른이"라고 하는 게 어떨까?

지금의 30대가 보아 온 '어른'들은, 지독하게 쌓여 있는 가난을 아무 불평 없이 두 손으로 퍼서 꾸준히 줄여 나갔어. 집에 있던 금붙이를 팔면서 IMF도 견뎌냈고, 집도 장만하면서 애까지 키워냈지.


내가 과연 부모님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엄격+근엄+진지). 앞으로 뭘 먹고살아야 할지 매시간이 고민이고, 이렇게 벌어서 집은 언제 살 수 있는지 계산기를 두드리다 결국 내 머리를 두드려. 시대가 다르고 기회가 다르며, 계층 간 이동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부의 불균형이 심하다, 라고 투덜거리기엔 나도 스스로가 너무 서툰걸 안 탓인지. 침묵하게 되더라. 이렇게 고개 숙인 내 옆에서 친구들이 유명한 회사를 다니며 집도 사고 차도 사는 모습을 볼 때면, 나를 탓하곤 해.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친구들의 옆에서 날지 못하는 내 모습을 말야.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꼭 쟤네들처럼 날아야 하나? 왜 저들과 똑같아 지려 했을까. 난 사실 고소공포증도 있는데.'


인생이란 길을 완주하는 데엔 정해진 방법이 없잖아. 달려도 되고, 걸어도 되고, 날아도 되고, 헤엄쳐도 돼. 기어가면 뭐 어때? 내 인생 레이스는 나만의 것인데. 우린 각자의 삶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인데. 은연중에 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나 봐. 20대 초반에 폭탄이 떨어지던 이스라엘 가자 지구 근처에서 6개월을 살고, 배우고 싶었던 것, 하고 싶었던 것, 도전해 보고 싶었던 것을 '재지 않고' 해왔으니까.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칼같이 재며 내 삶을 설계하지 않고, 내 마음의 사이즈를 재며 살아왔으니까. 즐겁게 살아와 놓고는 이제 와서 스스로를 틀에 맞추려 했던 내가 우습더라.


이런 내 모습이 남들의 눈엔 조금 느리게 보였나 봐.

"양파야, 너 괜찮겠어? 돈도 모아둔 거 없고. 이제 너 서른인데..."
"괜찮아. 서른은 조금 서툴러도 돼. 조금 느려도 돼. 서툰 어른이라 서른이거든."


맞아. 정신 승리야. 그런데, 정신 승리했더니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웃기게도 내가 살아온 방식이 부럽다는 친구들도 있어. 그러니까,


너도 할 수 있어

너도 살아갈 수 있어. 잘 살 수 있어. 잘 사는 것의 정의가 '부자처럼'이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너만의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렇게 머릿속 너만의 백과사전을 정리해 보자. 만약 너만의 것을 못 찾겠고, 좋아하는 것도, 관심 가는 것도 모르겠으면, 무엇이든 다 해보자. 아르바이트도 많이 해보고, 기회가 있다면 회사도 다녀보고, 열심히 돈 모아서 바다 건너 다른 땅도 밟아 보자. 너의 마음이 무엇에 쏠려 있는지 모르는 이유는, 네가 너 스스로에게 '보기'를 몇 개 맛볼 기회를 주지 않아서 아닐까? 최대한 맛을 봐 보렴. 많이 맛보다 보면 이전엔 경험해 보지 못한 짜릿한 맛이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


우리 모두 서툰 어른이야. 내 발걸음이, 내 날갯짓이, 내 아가미 호흡법이 서툴지라도 그 행동을 멈추진 말자. 그래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 대신, 힘들면 서로에게 말하는 거야. 어깨 정도는 빌려줄 수 있으니까.



감사하게도 주변에 좋은 20대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고민을 듣고 공감하면서, 말로는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정리해 작성한 글입니다. 또한, 저 자신을 위한 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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