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바통은 넘어간다

by 기공메자

<작가의 생각 한 줄>

"인생의 승부는 오래 버티는 힘보다, 물러날 줄 아는 태도이다."


인생의 무대에 오래 머무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한때는 박수의 중심에 선다. 그러나 시간은 늘 다음 장면을 준비한다. 무대는 비워지고, 조명은 옮겨 간다.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삶을 단단하게 만든다.


나는 오랜 세월 소방관으로 살았다. 불길 앞에서의 망설임은 곧 재난이었고, 결단 하나가 생명과 직결되었다. 책임은 언제나 무거웠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후배들이 들어오면 기술을 전했고, 판단의 기준을 함께 나누었다. 현장은 결코 혼자 버티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자 변화는 분명해졌다. 내가 가르치던 후배들이 지휘를 맡았다. 나는 현장에서 물러나 조용히 뒤를 바라보는 자리에 섰다. 처음엔 허전했다. 그러나 그 허전함은 곧 감사로 바뀌었다. 나의 시간이 끝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다음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라 계주에 가깝다. 각자에게 주어진 구간이 다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달렸느냐가 아니다. 주어진 구간을 얼마나 성실히, 진심으로 달렸느냐다. 내 몫을 다했다면, 다음 주자가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길을 내주는 것이 책임이다.


현역 시절 자주 들었다. “선배님은 언제까지 현장에 계실 건가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설 자리가 없어질 때까지.” 그러나 돌아보니 자리는 사라진 적이 없었다. 다만 내가 물러서야 할 시간이 왔을 뿐이다. 삶은 그렇게 자리를 바꾸며 이어진다.


퇴직 후 나는 작가로 살고 있다. 불을 끄던 손으로 문장을 쓴다. 사람을 구조하던 마음으로 사람을 위로한다. 무대는 달라졌지만 본질은 같았다.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그대로였다. 형식이 바뀌었을 뿐, 방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영원한 챔피언은 없다’는 말에는 쓸쓸함이 담겨 있다. 그러나 동시에 희망도 들어 있다. 누군가의 퇴장은 또 다른 누군가의 출발선이 된다. 자리를 비워주지 않으면 새싹은 자랄 수 없다. 끝까지 쥐고 있는 것이 능력이 아니라,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가 성숙이다.


지금도 나는 후배들의 등을 바라본다. 그 눈빛에는 두려움과 열정이 함께 있다. 예전의 나와 닮아 있다. 그래서 말해 주고 싶다. 너희의 시간이 시작되었다고. 언젠가 너희도 바통을 건네야 할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네 구간을 진심으로 달리라고.


삶의 승패는 기록이 아니라 태도에서 갈린다. 무대의 중앙에 있을 때뿐 아니라, 조용히 물러난 자리에서도 빛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을 오래 견디게 하는 힘이다.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지금의 자리가 전부라고 믿지 않아도 된다. 당신이 진심으로 달린 흔적은 누군가의 길이 된다. 영원한 챔피언은 없지만, 태도는 남는다. 당신의 오늘이 누군가의 내일을 밝히는 바통이 되기를 바란다.


<이웃의 공감 댓글>

주진복 작가님. 누군가를 위한 희망의 바통을 건네실 수 있는 참으로 귀한 손을 지니신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바통을 통해 작가님의 36년 소방관으로서의 시간과 작가로서의 시간이 함께 전해지고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 느꼈습니다. 그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휘관 자리를 후배님께 내어드리실 때 마음이 얼마나 먹먹하셨을지 헤아려 보게 됩니다. 분명 보람과 기쁨도 있으셨겠지만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비워내신 자리, 그리고 비워졌던 그 공간을 ‘작가’라는 이름으로 사랑과 희망의 시와 글로 다시 단단히 채워 가시는 모습이 참으로 근사하게 느껴집니다. 인생의 바통을 건네는 그 과정 속에서 작가님의 숭고한 마음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귀한 글 나눠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작가의 답글>

따뜻한 말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 시절의 무게와 시간들을 이렇게 마음으로 받아 주셔서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비워낸 자리에 글로 희망을 채워 가는 길입니다. 님께서 그 마음을 함께 걸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오늘도 님의 하루에 평온과 빛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작가노트>

퇴직 이후 삶의 속도가 달라진 어느 날, 자연스럽게 현장의 시간이 떠올랐다. 치열하게 서 있던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야 보이는 감정들이 있었다. 이 글은 물러남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책임이라는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이었다. 다음 세대를 응원하는 자리에 서는 것 또한 삶의 중요한 역할임을 기록하고 싶었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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