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무너지지 않는다. 다만 넓어질 뿐이다.

도쿄의 거리 축제부터 AI 창작까지, 평범한 주인공들의 무대

by 문화기획자 정장희

'은평생활문화박람회'의 총감독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생활문화박람회는 지역에서 오랜 시간 동아리 활동을 이어온 문화 단체들이 그간의 활동성과를 전시하고, 무대에서 열정을 쏟아내는 뜻깊은 축제다. 화려한 무대와 풍성한 음향 아래 휘황찬란 의상까지 차려입고 나면, 여느 프로 예술인 부럽지 않다. 낮에는 각자의 일터에서 치열하게 일상을 살아내고, 저녁이면 자신이 사랑하는 문화활동을 꾸준히 탐구해 온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 밀도 높은 삶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내는 이들이 단 하루 무대 위 주인공으로 변하는 모습을 볼 때면, 문화가 평범한 이들의 삶을 어떻게 특별하게 바꾸어 내는지 가슴 벅차게 느끼곤 한다.


2008년 대학 시절, 한일 교류 프로그램으로 일본 도쿄를 방문했을 때 뜨거운 여름 시부야 한복판 교통이 통제된 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복장을 차려입고 퍼레이드를 펼쳤다. 가장 놀랐던 건 이들이 프로 예술인이 아니란 사실이었다. 퍼레이드의 끝 메인 무대에서는 오랜 시간 즐겁게 이어온 예술활동의 성과를 선보이는 생활문화 동아리들의 공연이 펼쳐졌다. 평범한 시민들이, 역시 평범한 시민들과 공동의 문화를 교류하는 커다란 축제라니! 당시 나에게는 무척이나 신선하고 짜릿한 충격이었다. 최근 우리나라 러닝 문화를 보면 세상이 그때와는 참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지금은 자신만의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충만한 이들의 에너지가 거리 위에 넘쳐 흐른다. 하지만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된 생활문화 커뮤니티가 거리로 쏟아져 나와 환호를 받는 풍토는 흔치 않았기에, 도쿄의 그 자유로운 에너지가 내심 부럽기만 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국민 예능이던 <무한도전> 멤버들이 댄스스포츠(2007)와 에어로빅(2008)에 도전하며 땀 흘리는 모습이 전파를 타 대중들의 인식에 큰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무언가에 열정을 쏟는 일상 속 예술활동의 가치가 사회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음악, 미술, 시 등 다방면으로 생활문화의 싹이 피어났고, 2016년 이러한 분위기는 '생활문화진흥원'의 설립으로 이어진다. 2017년 생활문화진흥원은 '지역문화진흥원'으로 통합되면서 생활문화의 의지가 전 국가적인 차원의 아젠다로까지 확립되었다.


은평의 생활문화박람회에서 만난 수많은 생활예술인들을 보면서 확신했다.


'이제 평범한 사람들이 당당하게 무대 위 주인공이 되는 문화가 자리 잡았구나.'


문화기획자로 살아오며 내가 내린 결론은 분명하다. 일상에 문화가 스며들면, 지쳐서 생기를 잃은 회색빛 얼굴들에 비로소 다채로운 색깔이 입혀진다는 사실. 그렇게 삶 속에 단단하게 뿌리내린 '나'라는 존재의 인식은 외부의 어떤 역경과 시련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강인한 힘을 준다.


지난 몇 년 간 코로나라는 긴 터널을 지나며, 만개하던 생활문화의 열기가 한때의 유행처럼 허무하게 사그라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최근 세대불문 타오르는 러닝붐도 본질적으로 보자면 생활문화의 일부이기에 나름 만족스럽게 러닝문화에 참여하고 있다. 생활문화가 됐든, 생활체육이 됐든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힘이 되기만 한다면 그건 가치 있는 문화현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AI라는 도구의 출현은 반갑다. 사그라들던 생활문화영역 전반에 다시 활기가 돌고 있다.


"나도 다시 예술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이들이 늘어간다.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시를 쓴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할 수 있다'는 건 '구매할 수 있다'로도 쓰일 수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AI로 작업하는 평범한 이들이 많아지는 현상은 프로 예술인들의 밥벌이를 위협하는 경쟁자가 늘어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예술인들의 작품을 직접 감상하고 구매까지 하는 실제 수요층의 전체적인 볼륨이 커진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이다. 황영조, 이봉주 선수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던 시기 이후, 처음으로 텔레비전 앞에 앉아 마라톤 중계를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직접 달리고, 직접 물품을 구매하는 러너들이다. 기타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클래식 콘서트에 가고, 조기축구하는 아재들이 케이리그에 진심이다. 그 문화가 내 삶 자체가 되면 적극적인 수요층으로 변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아이패드와 웹툰시장이 출현했을 때 그게 무슨 만화냐며 비난하던 출판만화계에서도 지금은 다들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린다. 실연 음반만 음악이라 말하던 이들에게 미디로 만든 음악은 조잡스러운 기술이었지만, 지금은 음악시장의 지향을 넓혀준 친근한 기술로 많은 음악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저작권과 초상권이라는 직업 예술인에게 생명과 같은 문제는 분명 국가적으로 시스템과 정책을 잡아나가야 할 일이다. '월 얼마 보장한다'며 AI로 찍어대는 무분별한 콘텐츠와 강의들도 일찌감치 당하고 나온 사람들로 인해 점차 파훼당하고 있는 추세다.


기억해야할 것은 평범한 이들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또 다른 평범한 이들과 공유하며 스스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AI의 출현은 분명 생활문화를 넘어 전 예술시장의 커버리지를 긍정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는 점이다.


예술은 무너지지 않는다. 다만 넓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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