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 기획자가 카메라 맞은편 세상과 마주한 이유
2020년 일말의 기미도 없이 들이닥친 코로나는 모든 무대의 조명을 꺼버렸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망망대해 위에서 이제 막 세상과 만난 첫 아이를 안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멈춰 있을 수만은 없다." 사람들을 모을 수 없다면 우리가 직접 찾아가야 한다. 기존에 계획했던 현장 문화기획 행사들을 영상 콘텐츠로 전환하고 '유튜브'라는 새로운 무대의 조명을 켰다.
대학에서 신문방송을 전공하고, 인턴과 기자활동을 했던 곳에서도 사진과 영상을 줄곧 담당했기에 변화된 상황이 낯설지는 않았지만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던 시기나, 문화기획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줄곧 나의 자리는 무대 뒤편이었다. 연출가, 기획자로 남들이 빛날 수 있는 무대를 디자인하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믿어왔다. 그러나 새로운 무대는 새로운 역할을 요구했다.
유튜브 무대에서는 직접 인터뷰의 진행자가 되고, 행사 사회를 보며 영상 속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기꺼이 렌즈 앞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 갑작스러운 시대의 변화는 나를 비롯해 무대 뒤에 머물던 사람들의 커리어와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해 준 결정적 계기가 된다.
유튜브로의 전환이 가져다준 가장 큰 선물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연결'이다. 오프라인 행사는 현장에 발걸음 한 소수의 사람들만 온기를 나눌 수 있지만, 온라인에 올린 영상은 지역의 경계를 넘어 우리를 전혀 모르는 낯선 이들에게까지 닿는다. 물론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도파민이 터지는 자극적인 콘텐츠도 아니기에 구독자가 크게 늘지는 않았지만 "영상 보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좋은 영상을 멀리서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댓글들을 읽을 때면 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곤 한다.
문화기획자로 만들어온 '생활문화'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관람객이 아닌,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무대이자 과정이었다. 코로나 시기 유튜브라는 플랫폼에 뛰어든 수많은 크리에이터들 역시 그런 마음이었으리라. 거대 기획사나 방송국이 점령한 지금의 시장과 달리, 본래 유튜브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선명한 매력과 진솔한 이야기를 세상에 던지는 서브컬처로 시작됐다. 물론 마이너한 콘텐츠가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비주류 아이템으로 유튜브를 시작하는 이들도 점차 줄어 들고, 자체 알고리즘도 이들을 조금씩 배제하는 추세다. 하지만 이런 추세가 지속되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진짜'들만 살아남고 있는 것 같다. 돈이 되건 말건 계속 한다는 건 '진짜로 그걸 좋아한다'는 거니까 말이다.
작년부터 시작한 '러닝' 덕분에 유튜브 알고리즘은 더욱 *다양한 러닝 유튜버들의 영상을 찾아준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동기부여를 얻는다.
"저 사람도 하네? 그럼 나도 할 수 있겠다"
돈이 많아서, 혼자 살아서, 환경이 달라서. 갖은 핑계로 버티던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가진 게 많지 않아도, 외모가 뛰어나지 않아도, 심지어 장애가 있어도. 어떻게든 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의 위대한 용기는 수많은 사람들을 전염시킨다. 평범한 이들의 밝은 에너지가 세상을 크게 바꾸고 있는 것이다.
지난 2년 간 우리 조직도 공공기관의 지원 없이 *'인터뷰', '러닝', '온라인독서클럽' 등 다양한 주제로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를 꾸준히 제작해 왔다. 코로나 이후 로컬문화 생태계가 거의 해체된 탓도 있지만, 오히려 당시 경험했던 '시공간을 뛰어넘는 폭넓은 연결'의 긍정적 효과를 지속하고 싶은 의지의 발로였다. 재무제표상으로는 분명 마이너스다. 하지만 당장의 이익과 타협하지 않고 우리들의 철학을 묵묵히 쌓아 올린 덕분에, 올해는 지역 청소년들에게 크리에이터 수업을 진행하는 '미디어 강의'를 제안받게 됐다. 자극적인 영상과 조회수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세상과 성숙하게 나누는 방법들을 아이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크리에이터로서 AI를 활용해 음악을 만들고, 로고를 만드는 등 자체 브랜딩하는 교육도 커리큘럼에 포함했다.
평범하고 진솔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쌓이고 회자되는 세상. 내가 가진 소박한 일상에 감사하고 그 행복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문화가 우리 곁에 단단히 자리 잡기를 바란다. AI는 그런 세상을 위해 더 없이 좋은 도구가 될 것이다.
* 추천하는 러닝 유튜브 채널은 [마라닉TV], [러너임바], [러너 김셀렉], [체체체가 달린다], [두두부부], [승용이형], [지구언니] 등이다.
* '인터뷰', '러닝', '온라인독서클럽' 등 필자가 제작한 유튜브 콘텐츠들은 [타래유니버스] 채널에서 감상하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