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을 가르치러 갔다가 인생을 배우고 왔습니다

문화기획자가 깨달은 AI 음악의 진짜 쓸모

by 문화기획자 정장희

2년 전 처음 AI 작곡 강의 의뢰를 받았을 때만 해도 나의 포커스는 온통 '기술'에 맞춰져 있었다.


텍스트가 어떻게 가사가 되고, AI가 어떤 원리로 작곡을 해내는지. 그 마술 같은 과정을 알려드리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2년 남짓 '시니어 생애 AI 음악 수업'을 진행하면서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전문 강사가 될 것이 아니라면 굳이 복잡한 기술과 사용법을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기술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웅크린 삶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는 것. AI 음악의 본질은 화자의 이야기에 있다.


지난해 만난 성북구 어르신들과의 수업에서는 철저히 '관계 맺기''이야기 발굴'에 집중했다. 기술적인 구현은 전문가인 내가 맡고, 어르신들께는 그저 당신의 삶에서 가장 노래로 만들고 싶은 순간이 언제인지에 집중하시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전문 인터뷰어'로 일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 학부 기자생활 때부터 이미 20살 이상 차이나는 교수님들과 인터뷰 하고, 다양한 직종의 선배들을 자주 만났다. 이후 이주민, 예술인, 창업인 등 삶의 커리어가 변할 때마다 마주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성실하게 청취해 왔다. 하지만 시니어분들과의 인터뷰는 이전의 그것들과는 조금 달랐다. 덤덤하게 풀어놓는 그들의 옛 이야기 안에서 그 어떤 다큐멘터리나 위인전보다 따스하고 뭉클한 감정들이 수없이 진동하고 있었다.


무거운 구리그릇에서 가벼운 스댕(스테인리스)으로 바뀌던 70년대. 사람으로 가득한 구 서울역 풍경 아래, 고향이 같다는 이유로 처음 맞선자리에서 만난 두 청춘남녀. 남편이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으로 돈을 벌러 떠난 뒤 홀로 세 딸과 팍팍한 시집살이를 견뎌야 했던 젊은 날의 눈물. 창경궁 밤 벚꽃놀이에서 우연히 만난 고향 친구와 평생의 반려자로 살아가며 키워낸 소중한 아이들. 한국의 굽이치는 근현대와 눈부신 경제 발전의 뒷 켠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낸 이들의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저마다의 사연이 세상 하나 뿐인 곡으로 흘러나올 때 굴곡지고 애처롭던 삶의 흔적들은 눈부신 추억이 된다. 80세가 훌쩍 넘은 노년. 이제 어디에 그 긴 세월의 이야기를 털어놓으실 수 있을까. 누가 그들의 낡은 서랍 속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까.


"선생님, 감사합니다"


노래를 듣고 눈물 흘리시는 어르신들에게 그들 인생의 한 조각이 담긴 천금같은 감사를 받는다.


새벽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다듬어 노래로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 펑펑 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건 AI가 만든 노래인데 내가 왜 이러지?" 비슷한 작업을 하는 이들도 아마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으리라. 물론, AI의 노래실력은 이제 왠만한 아마추어 가수들보다 우수하다. 하지만 우리를 감동시키는 건 AI의 노래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하루하루 살아내기도 버거운 우리들의 삶을, '힘들다' 말 한마디 없이 80평생 오롯이 살아오신 선배님들에 대한 경의로움이 좀 더 본질에 가깝다. 그 노고에 '수고하셨다' 안아주는 멜로디 앞에서 누군들 울지 않을 수 있겠는가.


AI 작곡을 혼자만의 취미로 즐길 때, 흥미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게 되네?!" 두근 거리는 설렘과 호기심도 딱 그 때 뿐이다. 하지만 2년 전 어르신들의 이야기로 곡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내 안에 일종의 '소명의식' 같은 것이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내가 하는 이 일이 누군가의 삶에 이토록 큰 위안이 될 수 있구나" 가슴 벅찬 자부심. 문화기획 일을 시작하게 만든 가장 큰 동기였지만, 창업을 하고 가장이 되고, 코로나를 헤쳐오며 기억 속 어딘가에 아련히 방치되어 있던 그 '초심'이란 녀석이 오랜 방황을 끝내고 다시 돌어온 기분이었다.


예술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하지만 예술에 접근하는 문턱이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는 않다. 특히 어렵게 삶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에게는 더더욱 멀게만 느껴지는 영역이다. 그렇다고 생계와 창작의 경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예술인들에게 문화소외계층의 삶까지 모두 보듬어 달라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문화기획자이자, 인터뷰어, 생활음악인으로 살아온 나에게 'AI 작곡'은 문화영역에서 소외된 이들을 품어 안는 훌륭한 '대안'이 되었다. 인생에서 몹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던 할머니는 당신의 노래가 생긴 이후 하루에도 몇 번씩 그 곡을 들으며 위로를 받는다고 하셨다. 작업자로서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다.


사람들은 AI가 인간의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 두려워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목격한 AI 기술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그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가'에 있다. 이 본질을 잊지 않을 때 비로소 AI와 인간의 공존이 가능하다. 인간이 배제될 것이라는 막연한 공포에 천착하기 보다, 기술로 배제된 이들을 치유하고 포용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 그것이 문화기획자로서 내가 AI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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