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꿈을 꾸고 있어요.

by 정진현

퇴직을 앞두고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그 생각의 끝엔 늘 이런 결론을 낸다. 여태껏 난 열심히 살았어! 그러니 퇴직 후엔 작은 내 공간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꺼야! 난 충분히 그런 자격이 있어.라고 말이다.

그 공간이란 작은 마당이 있고 사시사철 꽃이 피는..염색천이 길게 늘어진 작은 파라솔밑에서 꽃구경도 하고 낮잠도 자고 빗소리,눈내리는 풍경,삼겹살 굽는 냄새..작은 텃밭에서는 싱싱한 채소들이 자라고...


이름을 부르면 내려온 두 남동생들과 함께 마당 구경을 하며 이곳엔 무슨 꽃을 심을지 언제 사러갈지를 이야기하고, 미리 준비한 맛있는 음식을 파라솔 밑에서 먹기전 다 같이 마당과 연결된 작고 예쁜 작은 방에 계신 엄마의 상태를 체크하면서..우리 엄마! 오늘도 우리 다 보니 좋지요? 하면서 말이다.


60년대에 태어난 나는 대학을 나와 60이 넘은 지금까지 직장도 다니고 크게 내 삶을 관통하는 고난도 없이 평범하게 살았다. 고난이 없었다고 하니까 전에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께서 아마 그건 그런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이지 진짜 힘든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닐꺼라고 감사하게 말씀해주셨다. 그때도 속으로 진짜인데! 진짜 힘든 일 없었는데..했을 뿐인데..그게 아니였었던 것 같다.


가끔 스멀 스멀 올라오는 여러 마음이 있다. 그 중에 하나는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운 마음이다. 남편은 지금 서른 살인 딸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집에 있다. 물론 몇 해 중간에 거의 일용직 비슷하게 다니긴 했지만 그 뿐이다. 남편이 직장엘 다니면 커버되는 많은 부분이 그렇게 되질 않으니 연쇄적으로 좋지 않은 환경이 되어 여러 결과 중에 성격이 특이하신 엄마가 치매 오신 것도 한 원인이라 생각한다. 난 남편에게 크게 바란 것은 없었다. 다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특별하게 아프지 않으면 몸을 움직이는 것 ,나중 사위가 백수가 되고 귀한 딸아이 혼자 이리뛰고 저리 뛴다면?!. 그러나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질 않고 나아지지도 고쳐 지지고 않아 말을 하지 않으니 평화가 왔지만 내 마음은 평화롭게 보일 뿐인 것이 내 솔직한 마음이다.

내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무너질 여러 상황 들이 너무 무섭고 버겁다. 전생 까르마도 위안이 되질 못했다. 그냥 밉고 화난다. 그냥 나를 놓아주었음 좋겠다. 나는 착하지도, 큰 뜻도 있는 위인이 못 된다. 그냥 현재는 그냥 무너지는 것이 무섭고 싫어서 간신히 붙들고 있을 뿐, 좋은 사람이라 이러고 버티는 것이 아니다. 이젠 남편에게 자녀에게 기대하는 것을 접었다. 왜 이럴까?를 접었다. 나는 내 역할에 충실하자! 이것이 내 삶이니 이 삶에서의 내 역할만 생각하자. 어떻게 살던 남편 삶이고, 자녀 삶이다. 그래서 지금은 내 삶에서의 내 역할만 충실 하느냐 여러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있다고나 할까? 앞으로 접어둔 감정이 튀어나올지도. 영원히 안 나올수도, 다른 감정이 지배할 수도 있을진 모르지만 지금은 그냥 내 역할에만 충실하기...

아무튼 그런 환경으로 친정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그 사이에 정신분열증에 가까운 친정 엄마 성격에 늘 자신의 기대에 만족을 못 시킨다고 바보, 멍충이라고 두 남 동생을 향해 매일 쏟아내는 분노와 욕을 해대셔서 수 십년을 직장생활도 결혼도 하지 못한 채 나이 먹고 이제는 치매 걸리신 친정엄마를 수발하고 있다. 미안함과 감사함, 그리고 내 동생으로 태어나준 그 고운 인연, 원망과 불평 한마디 하질 않고 자신들의 운명인 양 살아내는 그 두 동생은 내겐 神이다. 그 두 동생과 노후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두 동생이 머물 공간을 마련하여 함께 하며 못해 준 것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원망의 대상인 친정엄마도 함께다. 그래도 우리에게 귀한 형제의 인연을 맺게 해주시고 여러 환경의 부재로, 자신의 성격이 형성되고 그 성격과 생각이 고착되어 자신에게나 자녀에게도 송곳이 되는 것을 모른 채 살아오셔서 서로에게 상처만 남은 우리에게 화해를 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공간을 꿈 꿀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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