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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에이 Nov 24. 2019

66. 명자나무, 아가씨

저녁을 먹고 배가 불러 또 산책을 다녀왔다.
비가 내린 뒤 공원은 스산했지만 짙은 향을 머금고 있었다.
마른 잎을 우려낸 차에 코를 갖다 댔을 때 녹아드는 고요함.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이파리들은 비를 맞으며 그저 떨어지기만 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일생에 품었던 체취를 세상에 뿌리며 떠나나 보다.

향에 코를 내밀며 걷다가 잎이 다 떨어지고 뾰족한 가지만 남은 나무를 만났다. 가지만 남은 나무의 이름은 찾아볼 엄두도 내지 않는데, 다행히 옆에 팻말이 세워져 있다.

명자나무.
사람 이름을 닮았다. 찾아보니 봄에 피는 꽃이 무척 곱다. 꽃이 장미를 닮았다 생각했는데 역시 장미과 식물이다. 요란스럽게 화려하지도 않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속이 깊은 아낙의 마음 마냥 은은하면서도 고결한 느낌을 주어 아가씨 나무라고도 한다고.

그러니까 내가 본 가시는, 장미꽃을 닮은 꽃과 잎 속에 깊이 감춰두었던 아가씨의 마음인 셈이다. 아가씨의 이름은 명자^^
내년 봄에는 여기 지나며 꽃을 확인해봐야지.

명자 아가씨~ 내년 봄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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