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아의 행복편지
“너 아침에 우산 가지고 나간 건 어쩌고 비를 홀딱 맞고 와!”
엄마는 현관 앞까지 뛰어나와 들고 있던 수건을 남자아이에게 던져준다. 바로 에어컨 앞으로 뛰어나 설정 온도를 24도를 26도로 올려둔다. 손은 온도를 올리지만, 눈은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는 남자아이에게 고정하고는 저놈 저놈, 뭐라 대답하는지 보고 한소리 더 하려고 준비 태세다.
“......아... 학교에 두고 왔어요.”
대답을 듣더니 엄마는 역시나 싶다. 에어컨 온도를 조절하며 생각해둔 말을 그대로 줄줄 뱉어낸다.
“아니, 너는 비 오는 거 빤히 보이는데 학교에 두고 오긴 왜 두고 오는 거야, 정신이 있어, 읎어.”
“......아.... 나올 때는 안 왔어... 저 독서실 가요.”
학교 점심시간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비가 온다. 학교에서 집까지 뛰어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인데, 비 좀 맞으면 어떻다고 엄마는 아침부터 우산 안 가져가냐고 엘리베이터까지 쫓아 나왔다. 엄마는 기상청에 뭐 아는 사람 있나. 다른 건 몰라도 엄마가 우산 가지고 나가라고 하면 꼭 비가 오더라, 신기해. 아니 그래도, 접을 수 있는 우산이면 사물함이나 책상 서랍에 넣기라도 할 텐데 엄마는 꼭 장우산으로 준단 말이야. 이거는 들고 가려고 해도 바닥에 질질 끌리는 게 소리도 싫고 귀찮다. 심지어 들고 다닐 때 무거워. 무거워서 싫다. 내가 툴툴거리고 있으니까 앞에 앉은 놈이 우산 싫으면 나나 달라고 자기는 우산 없다고 그런다. 나는 안 써도 넌 못 줘. 미쳤나 저게.
이렇게
싫었는데,
싫었는데.
그 애가 창밖으로 손을 뻗는다.
옆에 애랑 뭐라 뭐라 얘기하는데 안 들려도 난 다 안다. 표정만 봐도.
엄마, 고마워. 장우산 최고야.
비가 억수 같이 내리는 어느 오후. 같은 학교 교복을 입은 두 학생이 나란히 걷는 걸 봤어요. 여학생과 남학생. 둘이 나란히 우산을 쓰고 걷는데, 아니 글쎄. 남학생 어깨가 다 젖어서 보는 순간 웃음이 폿(풉도 아니고) 하고 터지더라고요. 우산의 기울기라는 게 보통 90도잖아요. 그런데 한 45도는 되어 보였어요. 여학생은 좀 부끄러운 듯 앞서서 걷고 남학생은 땅으로 점점 기울고 있는 우산을 들고 여학생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우산이라는 게 똑바로 들어도 무거운데 한쪽으로 기울면 더 무거워지잖아요. 앞으로도, 옆으로도 기울고 있는 우산이 얼마나 다정해 보이던지. 우산이 아니라 오함마였대도 꿋꿋이 들고 따라갔을 뒷모습이었습니다.
너무 집 앞까지 가는 건 여자애도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 아마 우산은 그 여자애 주고, 본인은 집까지 뛰어갔을 거예요. 집에 가서 엄마한테 우산은 어쩌고 비를 이렇게 맞고 왔냐고 한 소리 들으면 어때요. 그 우산 비싼 거라고, 또 어디다가 두고 왔냐고, 이제 장마라서 내내 쓰고 다녀야 하는데 느이 아빠도 하나, 나도 하나 쓸라면 우산 없는데, 우산 사는 사람 따로고 어디 가서 잃어버리고 오는 사람 따로야, 하여튼 내일 학교 가는 대로 우산부터 찾아놓으라는 소리 좀 들으면 어때요.
그 애랑 같이 우산 쓰고 걸었잖아요. 그거면 됐죠.
두 학생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의 하이틴 로맨스를 떠올리고 싶어서 기억의 구석을 뒤적거리다가 제가 뭘 하나 찾았거든요. 그러다 아차차 했습니다. 걔가 한 달 만에 바람 펴서 차였지. 아차차. 황급히 저의 안전한 현실로 돌아왔지 뭐예요. 내 우산은 내가 들어야지, 암. 심지어 나는 우비도 있다고.
2022년 7월 12일 화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