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아 Mar 03. 2023

02. 고양이와 할머니 편

박민아의 행복편지



내가 너처럼 고양이와 강아지를 좋아한다면, 

내가 너처럼 우리 옆집 할머니를 좋아한다면, 

내가 너처럼 높은 곳을 좋아하고, 

내가 너처럼 미끄럼틀을 좋아하고, 

너처럼 개미와 꽃을,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을, 

(먹는) 김을, 

치즈와 우유를, 

세면대에서 하는 물장난을, 

좋아한다면


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 날이었어. 


네가 고양이에게 과자를 내밀고, 너를 봐주지 않는 고양이를 30분이나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그러다 주위를 맴돌고. 그러다 나에게 고양이가 자기를 봐주지 않는다고 서운한 표정을 짓다가 또다시 자동차 밑에 들어간 고양이에게 가려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너를 보면은, 


나도 너처럼 고양이를 좋아하고 싶어져. 나는 사실 고양이를 무서워하거든. 고양이를 좋아하는 네 마음을 내가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면 네가 고양이 앞에서 보낸 시간을 응원해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있지. 비밀인데 엄마는 사실 우리 옆집 할머니를 좋아하지 않았거든. 늦은 밤, 갑자기 현관문을 쾅쾅 두드려서 나가보면 보일러가 안 된다고, 또 어떤 날은 현관문이 안 열린다고. 뭐랄까 너무도 당당히 우리를 불러내곤 하셨거든. 나눠주시는 음식도 늘 반가운 건 아니었고, 때로 너무 많아서 짐스러운 날도 분명 있었어. 엄마가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쉴 때도 할머니는 왜 회사 안 가고 집에 있느냐고 물어 보셨는데, 엄마는 왜 그 말을 고깝게 들었는지 몰라. 


그런데 어느 날, 너하고 아파트 복도에서 놀던 날. 다른 날처럼 마실 다녀오신 할머니가 너를 보시더니 까까를 주시겠다고 했고. (까까라니, 엄마는 이 부분도 왜 맘에 안 들었을까.) 빼꼼 열린 할머니 집을 네가 궁금해했고. 그걸 본 할머니가 “들어와도 된다. 아가” 하셨을 때 말이야. 나는 네가 당연히 내 품에 와 쪼르르 안길 거로 생각했는데, 정신 차려 보니 넌 어느새 신발을 신은 채로 할머니 집 거실을 뛰어다니고 있는 거야.


이 아파트가 지어진 89년부터 지금까지 쭉 살고 계셨다던 할머니 집은 우리 집보다 깨끗했지. 그 흔한 나이듦의 냄새도 안 나서 엄마는 사실 많이 놀랐어. 소박하고 고운 화분이 가득했고 안방 벽엔 돌아가신 할아버님의 사진이 제일 위에, 그 아래로는 자녀분들과 손주들의 사진이 걸려있었지. 내가 그 모든 걸 (티안 나게, 그러나 꼼꼼하게) 두리번거리는 동안 너는 여전히 신발을 신은 채로 거실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고 있었어. 그날 이후로 너는 할머니 집 앞을 지날 때마다 들어가자는 시늉을 했잖아. 그치. 사실은 있잖아. 엄마도 좋았던 것 같아. 그 일로 할머니가 이해되었다고 하면 조금 이상할까? 



 너는 나를 세상에서 제일 예민하고 경계심 많은 사람으로 만들지만, 동시에 내가 좋아해 본 적 없는 것들을 좋아하고 싶게 하고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이에게 마음을 주게 하네. 언젠가 엄마도 세면대에서 물장난을 해 볼게. 기대해도 좋아. 아마 네가 말리고 싶을 지도 몰라.






2022년 7월 14일 목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





매거진의 이전글 01. 우산 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