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아의 행복편지
병원 가기 며칠 전에 문자가 하나 와 있었어. 당연히 예약 확인 정도로 생각해서 읽지 않고 있었거든. 당연히 예약 전날까지도 무시하고 있었지? 그래도 다른병원에서 받은 결과를 가지고 가는 거니까 혹시 놓치는 게 있을까 싶어서 읽었는데, 무슨 유튜브 링크가 하나 와 있더라고. 동영상 필수 시청. 나는 냄새를 맡았어. 흥미로움의 냄새. 뭘까, 이 병원.
4분 남짓한 영상이었는데 그걸 내가 끝까지 봤지 뭐야. 내용 대략 이랬어. 해야 할 검사들은 비급여 항목인데, 그 검사들이 중요도에 비해 아직 급여 채택이 되지 않아 (비싼) 검사비를 내야 한다고. 그러나 그 검사는 정확한 진단에 아주 필요하므로 꼭 해야 하고... 등등. 보통 이런 설명은 접수나 수납할 때 해주지 않나?
그런데 돌이켜보니 흥미로움의 시작은 영상이 아니었어.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겼던 어느 날. 괜찮으면서도 가까운 병원이 없나 찾다가 블로그에서 이런 글을 봤어.
[ 명성에 비해 예약이 빨리 돼서 놀랐다. 바로 다음 날 진료를 볼 수 있었다. ]
뭐 얼마나 빨리 예약이 되었길래 그럴까? 빠른 예약이라고 하면 병원의 가장 큰 미덕인데 놀랄 거까지야. 빠른 거라면 내가 가장 원하는 것 중 하나지. 나는 그날로 바로 병원에 전화를 걸었어. 원하는 선생님이 있는지 묻더라고. 블로그에서 본 이름이 생각났고 그 선생님을 원한다고 말했지. 그랬더니 첫 마디가,
“그분은 이 병원의 이사장님이십니다.”
그래서..예약이 된다는 거야, 안된다는 거야. 아니면 뭐 전화에다가 대고 인사라도 하라는 건가.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당황하고 있을 때 바로 다음 말이 들려왔어.
“언제 예약 원하시나요? 내일 예약 원하시나요? 내일도 가능하세요.”
진료실 앞에 대기하고 있으니 간호 데스크에서 날 불렀어. 데스크 바로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아 계시래. 방금까지도 나는 의자에 앉아있다가 왔는데...? 그러니까 그 의자는 최후의 대기 의자 같은 거지. 당신은 모든 기다림을 거쳐 여기까지 왔습니다.
간호사가 나에게 물었어.
“다른 병원 진료 기록 가져오셨나요?”
“네.”
“진료 기록은 들고 계셔주세요.”
가방이라고 해봤자 에코백이었고, 진료 기록은 a4 용지 몇 장인데 말이야. 가방에서 그걸 꺼내는 게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건만, 들고 있으라니. 그렇지만 난 또 시키는 대로 잘하잖아. 순순히 종이를 손에 꼭 쥐고 이런 생각을 했어. 진료실에 들어가면서부터 종이를 내밀어야 할까. 아니면 달라고 할 때 주는 걸까.
또 하나 빠른 게 있다면 말이야. 그건 직원의 반응 속도였어. 그 병원에서는 환자가 1초 이상 두리번거리게 놔두지 않더라. 검사실도 많고, 여러 층으로 되어있어서 처음 온 사람은 딱 헤매기 좋은 곳이었거든. 다음 순서는 뭐였더라 싶어서 왼쪽 한 번 보고, 막 오른쪽으로 고개가 돌아가기도 전에 어디선가 직원이 나타나는 거야. 그리고 묻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종이 주세요.”
종이라는 건 그날 병원에서 해야 할 일이 적힌 안내문인데 그렇게 상세한 안내문은 본 적이 없어. 사실상 그것만 열심히 읽고 따르면 대기부터 진료, 검사, 추가 검사, 수납까지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탄 것처럼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지.
걱정과 불안은 나의 오랜 재능이고, 전문 분야거든. 하라고 하면 정말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말이야. 생각 좀 할라치면 “박민아 씨 3번 검사실로”, 이제 걱정좀 해볼까 하면 “박민아 씨 2번 검사실로”. 그렇게 여기저기 불려 다니다 보니 집에 가래. 다음 주에 오래.
블로거의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어.
그런데 블로거가 놓친 게 있었어. 명성에 비해 빠른 게 아니었던 거야. 빠른 게 명성이었던 거야.
다음 주에 다녀올게. 별일 아니겠지.
2022년 7월 19일 화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