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아의 행복편지
엄마는 무서운 게 많아.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무서워해. 특히 당산역 9호선 에스컬레이터는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야. 그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져 크게 다친 적이 있거든. 내 뒤에서 어떤 아저씨가 엄청 빠르게 뛰어오다가 나를 쳤는데...어우, 여기까지만 말할게.
나는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도 잘 놀라. 내가 놀라며 내는 소리가 더 시끄럽다는 주변의 의견도 있는데 인정하는 바야. 그렇지만 무서운 걸 어떻게 하니.
얼마나 잘 놀라냐면은 내가 회사 다닐 때 사장님이랑 회식 할 때의 일이야. 사장님이 갑자기 재채기를 하셨는데 내가 그 소리에 놀라 소리를 질렀지 뭐야. 다들 아무 반응이 없었던 건 지금까지 이해 안 되는 부분이야. 정말 비명 수준이었는데. 취했었나, 다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천둥소리도 무서워.
비가 아주 많이 내리던 며칠 전 밤. 까만 밤을 밝히는 번개와 큰 천둥소리가 차례로 이어지던 밤. 너를 안고 창밖을 보면서 나는 사실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을 여러 번 참았어. 내가 불안해하면 너도 그럴 테니까.
나에게는 천둥을 무서워하는 기억이 있지만, 너는 천둥과 초면이잖아. 나는 천둥을 무서워하지만 좋아할지, 무서워할지, 재밌어할지, 앵콜앵콜 외칠지는 네가 정할 수 있길 바랐거든.
언젠가 네가 많은 걸 알게 되고, 여러 기억을 갖게 되어 천둥이 무서워지는 날이 오더라도 당분간은 호랑이 소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 당분간은 천둥이 치면 호랑이 흉내를 내며 하늘을 가리키는 너를 보는 것이 아주 큰 기쁨이기도 하고.
뭐든 무서워해도 되고,
뭐든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무서워해서 네가 무서워하지는 않았으면 했어.
내가 읽은 많은 책에서,
엄마는 딸에게 자신을 투영한다더라.
너는 내가 아닌데, 나인 줄 알고 산대.
반대로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산대.
이 제목 그대로인 책도 있어.
엄마가 두려워하는 걸 두려워하게 되고,
엄마가 바라는 걸 저절로 바라게 된다는 거야.
그 말은 당산역 에스컬레이터보다,
갑자기 내리치는 천둥보다 무서운 말이었지 뭐야.
너에게 좋은 것만 줄 수 없겠지.
가능하지도 않고, 옳은 일도 아닐 거야.
사실 나는 좋은 게 뭔지도 잘 몰라.
알아야 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천둥소리를 호랑이라고 말한 나의 마음에도
잘못된 게 있을지도 몰라.
너는 나와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 그랬을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나는,
번개가 칠 때 반짝반짝 손동작을 하는 너를 보면서,
마른하늘에 대고 호랑이를 찾고, ‘어흥 어흥’ 하는 너를 보면서 활짝 웃어.
그날의 기억이 너에게 재미있는 일이었다는 걸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
너에게 좋은 것만 줄 수 없겠지.
가능하지도 않고, 옳은 일도 아닐 거야.
그래도 나는 웃는 얼굴은 잔뜩 주고 싶어.
겁에 질린 내 얼굴보다는.
2022년 8월 11일 금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