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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아 Mar 03. 2023

08. 거대한 행복 편

박민아의 행복편지 


소소한 행복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 이 일을 시작했을 때의 내 다짐은 그랬다. 


이를테면 이런 것. 

포근한 이불에 누워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것. 건조기에 돌린, 보송한 잠옷을 입는 순간. 그 잠옷을 입고 아까 말한 그 이불에 들어가 눕는 건 그중 제일이다. 나는 이런 행복에 대해 능통하다고 생각했다. 내 생활에는 그런 행복만 가득하다고 생각했으므로. 


그러나 나는 아주 잘못 알고 있었다. 


요가 수업을 기다리는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유방 초음파 결과, 유방 전문의 진료가 필요하다는 내용. 동작 사이사이에 메시지 내용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비키라고 할수록 더 커져 나중에는 교실을 가득 채웠다. 


오른쪽 가슴에 있는 결절의 모양과 크기가 좋지 않아 조직검사를 받았다. (행복편지 03 병원 편에 그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아이가 아팠다. 열만 나는 줄 알았더니 편도에 염증이 심했고, 입원 안 해도 되는 건데 일을 크게 키워 입원까지 했다. 


아이는 자기 왼팔에 달린 수액줄에 대고 잠꼬대를 했다. 자다 말고 일어나 삿대질하며 소리를 질렀다. 얼마나 미웠으면 그랬을까 싶어 안쓰러우면서도, 그런 아이를 달래느라 고단했다. 아이가 보채는 일이야 자주 겪었던 거지만, 나의 뇌는 불안 활동도 겸하고 있었으므로 평소보다 더 기진맥진했을지도 모른다. 


검사 결과, 나의 유방에는 작은 문제가 있지만 심각한 건 아니라고 했다. 6개월에 한 번 검사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의사가 말했다. 간호사는 내가 진료를 본 의사는 중환자만 본다며, 나의 담당 의사도 바꿔줬다. 병원이 나서서 나를 안심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뭐야 이거. 고맙게. 


나는 검사 결과를 듣고 나와 병원 앞에서 조금 울었다. 아플까 봐 무서웠으니까. 얼마나 무서웠고 간절했는지 내 오른쪽 가슴을 다정히 토닥거리며, 말도 했을 정도니까. 



나는 이제 거대한 행복을 꿈꾼다. 나와 나의 가족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프지 않을 것을. 그저 건강할 것을. 심지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지루한 하루를 보내더라도 건강하기만 하다면 충분하다고 (과감하게) 생각한다. 건강히, 지루한 매일을 사는 것. 건강히, 밍숭맹숭하게 사는 것. 오늘 건강하다면 내일도 똑같이 건강하기를. 그렇게 매일이 똑같기를.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오늘도 아이가 아파 집에만 있었다. 외출할 수 없는 아이는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 아이가 아프지 않았다면 오늘도 신나게 나가 놀았을 텐데. 매미와 개미와 콩벌레와 고양이와 강아지를 보면서. 


이 편지를 받아보는 당신도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몸도 마음도. 부디 건강해서, 덥고 습한 이 여름도 그저 불평만 하며 맞서기를. 어떠한 불안도 끼어들지 않기를. 그러다 문득 돌아보면 까맣게 타서 어리둥절하기를 바란다.  



2022년 8월 5일 금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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