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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아 Mar 08. 2023

12. 점포정리 편

박민아의 행복편지 

아파트 앞 마트에 점포정리라고 써진 종이가 붙어있다. 


왜 갑자기? 


(사장님 말에 의하면) 13년 동안 멀쩡히 있었던 슈퍼가 왜 갑자기 점포 정리지? 갑자기 헤어짐을 통보하는 연인과 마주한 마음 같다. 왜? 갑자기? 우리 어제까지 참 좋았잖아. 아무런 내색도 안 하더니 왜 갑자기? 


나는 어리둥절하지만, 바구니를 집어 든다. 40프로 세일이라? 맥주와 라면부터 담는다. 주인아저씨가 다른 사람들의 기록을 공유해준다. 어떤 사람은 소주를 짝으로 들고 갔고, 또 어떤 사람은 25만원 어치 장을 봐 갔다고 한다. 맥주 6캔, 라면 두 묶음, 과자 몇 개는 별거 아니었구나. 나는 조금 더 과감하게 움직인다. 


“평소에 농심마트만 가던 사람들도 요 며칠은 여기로 와요. 저기 신나라마트 다니는 사람들도 온다니까요? 심지어 근처 편의점이 저희 때문에 문을 일찍 닫더라고요. 우리 때문에 장사 안되니까. 그러니 열심히 집어 가요. 물건 금방 빠져.” 


아저씨는 기쁜 것인지, 뿌듯한 것인지, 통쾌한 것인지, 씁쓸한 것인지, 쓸쓸한 것인지, 괘씸한 것인지 모를 말을 한다. 


누군가는 현대마트의 열렬한 단골이었지만, 근처 큰 마트와 편의점만 가던 사람들도 많았다. 사실 주민 대부분이 농심마트와 신나라마트에 갔다. 더 쌌고, 더많았으니까. 나는 현대마트에 언제 갔느냐 하면 급하고 귀찮을 때였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 물 안 챙긴 걸 알았을 때, 빨리 라면 하나 사야 하는데 길 건너기 귀찮을 때. 어쩌면 아저씨의 말은 나 같은 사람을 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줌마, 아저씨는 좀 쉬신다고 했다. 


아저씨에게 뭐 하고 쉬실 거냐 물었더니 고향 얘기부터 하신다. 고향이 부산인데 거길 좀 가보려고 한다고. 아버지 산소는 남해에 있는데 거기도 좀 갈 거라고. 몇 주 전 현대마트 앞에 [상중]이라는 글자가 붙어있던 것이 생각난다. 그때 돌아가신 건가. 묻지는 않고 생각만 한다. 


아줌마는 뭘 하며 쉬실까. 여쭙지 않았지만 나는 왠지 알 수 있다. 아줌마는 일단 임영웅과 함께일 것이다. 물건을 고르고 계산대에 올려놓으면 아줌마는 임영웅의 영상을 황급히 끄곤 했다. 그러나 임영웅은 서운해하지 않아도 된다. 휴대폰 대기화면 속 임영웅이 여전히 아줌마를 보고 웃고 있으니까. 당분간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임영웅의 무대를 실컷 감상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란다. 



점포정리 세일은 이상한 행복이다. 


더 이상 이 가게를 만날 수 없는 건 분명 아쉬운 일이 맞다. 점포정리의 원인이 나인 것만 같은 죄책감도 아른거린다. 그러나 이런 고물가 시대에 과자와 음료수와 식료품을 무려 40프로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다? 그것은 아찔하고 찐한 행복이다. 





2022년 8월 23일 화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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