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아의 행복편지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대학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원래는 모이면 싱거운 농담으로 깔깔대는 사이인데 어느새 아이 어린이집, 유치원 정하는 일로 이야기를 나눌 때가 되었어요. 친구는, 집 가까운 곳과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을 고민하고 있는데 아이가 친구들과 떨어져 다니는 게 좋지 않을 것 같아 고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아이일 때는 친구와 가까이 살았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친구가 옆 아파트에 살았습니다. 감히 인생 최대 호시절이었다고 말합니다.
친구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간다고 연락해 오면 아파트 입구 벤치에서 만납니다. 별다른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따라갑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이번에는 네가 데려다줘라, 아니다 네가 데려다줘라, 지난번에 내가 데려다 주지 않았냐, 아니다 그냥 저 앞에서 헤어지자 옥신각신하다 돌아섭니다. 서로 갈 길 가다 문득 돌아봤을 때 눈이라도 마주치면 소름 끼친다며 서로 뭐라 나무랐지만 내심 좋았습니다.
동네 카페를 지나다 친구가 생각나 연락하면 늦어도 30분 안에 친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카페 구석 자리는 사장님은 모르셨겠지만, 저희의 지정석이었고요. 그곳에 앉아 있으면 집에 가던 친구 하나둘 모여 결국 몇 시간씩 앉아 있는 진상 손님이 되었지요.
또 어떤 날은, 신촌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탔는데 같은 버스에 친구가 타 있었습니다. 우리는 동네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집으로 향하는 길이 같으므로 그 여정에서 만날 수도 있었어요.
이런 일들 속에서 제가 얻었던 건 어쩌면 안전함이 아니었을까요. 외로운 날도, 즐거운 날도, 아무 것도 아닌 날도 서로가 필요하면 서로에게 닿을 수 있었던 것. 언제고 도움을 구할 수 있었고, 도와줄 수도 있었던 것. 튼튼한 울타리가 쳐진 넓은 잔디를 뛰는 기분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친구와 가까이 사는 축복은 몇 살까지 누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집 앞의 학교에 다니게 되는 나이까지는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친구가 있었으니까 그래도 20살까지는 그런 기쁨 속에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35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친구가 가까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할머니가 되면 아예 친구들과 모여 살고 싶고요.
대학교에 가고 회사에 다니며, 때로 결혼으로 혹은 이주로 서로의 터전에서 점점 멀어져야 할 때 그 순간마다 마음에 조금 썰렁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버스 타고 조금, 지하철 타고 잠깐, 혹은 차로 어느 정도 가면 만날 수 있는 사이인데 허전할 게 뭐 있겠냐고 물으면 저는,
그들은 그냥 친구가 아니라 나를 안전하게 해주었던 사람이므로, 내가 이 지역에 사는 익명의 누군가가 아니라 나 박민아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해주었던 사람이므로 가까이 지내고 싶은 것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제 친구는 똑똑한 사람이므로 아이 유치원도, 학교도 잘 정할 것입니다. 정작 본인은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면서 아이 걱정을 하는 제 친구는, 제가 걱정해주어야겠습니다.
2022년 11월 15일 화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