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아의 행복편지
막 걷다가 딱 멈춰 섰어. 내려다보니 운동화 끈이 풀려 있네. 분명 처음 묶을 때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처럼 세게 잡아당겼는데 말이야.
요즘 긴장감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다시 한번 더 뭔가 조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지. 운동화 끈도 처음에 바짝 묶어두면 한 며칠은 잘 있지만, 어느 순간 스윽하고 풀려 있잖아. 다시 고쳐 묶어주지 않으면 밟고 넘어지고.
매일 똑같은 날이 최고라고,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지나가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다고 했지만 어느 시점에는 나를 흔들어 깨울 뭔가를 기다리며 살고 있는지도 몰라. 그게 나 자신밖에 더 있겠느냐마는.
나는 주로 그걸 냉장고에서 깨닫거든? 요리가 되지 못하고 쓰레기가 되어가는 채소를 보면 머릿속에서 종이 댕댕 울려. 어이 이봐 정신 차려. 저걸 저대로 지금 얼마나 둔 거야? 하루에도 수십 번 냉장고 문을 열고 닫는 동안 왜 저걸 꺼내지 않는 거야?
그럼 다른 내가 이렇게 대답하지.
언젠가 할 거야, 언젠가. 내가 저거 저기 있는 거 아니까 할 거야. 모르면 못 하는데 알잖아, 내가. 그렇게 비우지 못한 신선 야채실과 반찬통이 몇개 인지는 비밀이야.
알고 있는 것과 하는 것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해 이제 나는 좀 알 것도 같아. (이것도 아는 거네. 그만 알자...) 그건 긴장감이 아니었을까?
관망이 주는 나른함이 아니라 근육을 써서 움직이는 역동성이 필요한 시점. 나는 자세를 좀 고쳐 앉고 싶은 거야. 배를 잔뜩 내민 채로 흘러내릴 것처럼 소파에 앉아있었지만, 한 번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허리를 곧게 세우고 앉는 거지. 불편하고 어렵지만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끼고 싶으니까.
언제나 팽팽하고 빠릿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하지는 않을게. 지금은 이해보다 따끔함이 필요한 순간이니까.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줘. (나와 비슷한 모두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대체로 우리도 우리 자신을 답답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는 것. 나른한 나를 스스로도 너무 지루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래도 다행인 건 곧 1월 1일이 온다는 사실. 1월 1일이야말로 운동화 끈을 고쳐 묶고 허리를 펴고 앉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어?
다만 그전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를 않길 바랄 뿐이지.
일단 냉장고 청소를 어서 해야겠고.
2022년 12월 8일 목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