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월동 준비 편

박민아의 행복편지

by 박민아

어쩐지 11월 내내 따뜻하다 했다. 오늘도 따뜻하다고? 아니 오늘도? 어라 내일도? 그런 식으로 30일을 살았더니 올해는 겨울이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지 뭐야. 그러나 자연의 섭리는 우리를 좀 기다리게 하거나 놀라게 하는 일은 있어도 할 일은 다 하는구나.


파랗다 못해 차갑게 느껴지는 파란 하늘, 분명 지난주까지는 멀쩡히 매달려있던 나뭇잎은 언제 다 떨군 건지 앙상한 나뭇가지, 보도블록 군데군데 보이는 얼음까지. 그래, 겨울이 안 올 순 없지.



그러면 이제 월동 준비에 들어간다.


어딜 가던지 따뜻하게 입고 신을 것. 편한 신발을 신을 것. 그러나 실내는 아찔하게 더울 수 있으므로 벗을 수 있는 옷을 입을 것. 누군가 너는 인간이야? 양파야? 물어볼 정도로 겹겹이 입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 본인의 기초 체온과 평소 온도 감지 정도에 따라 적당히 조절할 것. 얇게 입어야 한다면 목도리는 꼭 챙길 것. 자신이 편도선이 약하다면 더더욱.


본가에서 엄마와 살 때는 매일 이런 잔소리를 들었다.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 그거 그 스타킹 너무 얇지 않냐, 겨울에는 패딩 좀 툭툭한 걸로 사 입어라 (사줘 엄마..), 목도리는 왜 맨날 두고 가냐, 겨울에 추운데 늦게까지 술 먹고 돌아다니지 말고 어?


이제 나는 엄마의 말대로 따뜻하게 입고 다닌다. 좀 심하다 싶어질 정도로. 코트는 어제 자로 마무리했다. 이제 무조건 패딩이다. 대신 엄마 말 하나만 빼고.


나는 늦게까지, 어디든 돌아다니려고 따뜻하게 입는다. 추워도, 바람이 쌩쌩 불어도, 심지어 함박눈이 쏟아지는 겨울이 와도 어디든 갈 수 있도록.


맛있는 밥집에서 술을 먹고 나왔는데, 저기 한 500미터를 걸으면 맛있는 커피집이 있다고 한다. 완전 무장에 편한 신발을 신었다면 500미터 그쯤이야 기분 좋은 술기운에 걸어갈 수 있다. 그러나 불편한 신발과 얄팍한 옷은 겨울의 나를 소심하게 만든다. 동선도, 아이디어도, 재미도 움츠러든다. 설령 일행을 따라가더라도 한 걸음에 한 번씩 투덜거리게 되겠지. 어우 추워. 어우 발 아파. 아직도 도착 안 했어? 많이 남았어? 어우 그냥 여기 어디 가까운데 아무 데나 가자. (이건 어쨌거나 투덜왕 박민아의 이야기다)




겨울은 춥지만, 언제나 추웠고 내년에도 추울 거다. 그런 겨울에 내가 하고 싶은 건 입김을 내 뿜고 실없이 웃으며 따뜻한 옷을 방패 삼아 어디든 걸어가는 것. 그러다 눈에 띄는 술집에 문득 들어가는 것. 손으로 외투를 벗으면서 눈으로는 메뉴를 살피고 뭘 시켜볼까 고민하는 것. 쓰고 보니 그냥 술 마시러 나가고 싶다는 말 같지만, 아무튼 어쨌든 겨울의 모험가가 되는 것.



아주 따뜻하게 입고 몹시 추운 곳에 가고 싶다.



2022년 12월 06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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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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