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화예술 교육단체 일을 하고 예술 강사로 활동하면서 어느 광고에 나오는 카피 문구처럼 ‘사람이 미래’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단체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보상을 받았다. 다르게 말하면 같이 일하는 팀원들 사이에서도 그렇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만나는 참가자들에게서도 긍정적 에너지를 받고 있다. 팀원들 간에는 함께 고생하며 많은 경험을 공유해서 그런지 이제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경지에 도달했다. 서로 눈빛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나는 예술 강사로 활동하면서 일주일에 백 명이 넘는 참가자와 만나고 있다. 프로그램에 따라 참가자들의 연령대가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직업도 각양각색이지만, 함께 예술 활동을 하며 예술을 향유한다는 공통점만으로도 쉽게 친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참여자들과의 관계도 점점 두터워졌다. 아마도 몸으로 소통하기에 더 빨리 친해지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우리 엄마뻘 되는 참가자들과 수업을 하면서 내게는 엄마가 많이 생겼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먼저 겪어본 입장에서 유용한 정보도 주고, 나를 딸처럼 살갑게 대해준다. 그들을 만나면서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도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밖에서 중년 여성들을 만나면 엄마가 떠오르고 중년남성들을 만나면 아빠가 떠오른다. 어르신들을 만날 때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다. 참가자들과 춤으로 함께 하면서 내가 주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고 느낄 때가 많다. 무용과 예술 교육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었을까.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어린이일 때는 또 다른 재미와 의미가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서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 아이들은 무용과 예술에 관한 나의 고정관념을 기분 좋게 깨준다. 아이들이 춤추고 표현하는 걸 보며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가능하구나’하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같은 내용으로 교육을 진행하더라도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전혀 다른 아웃풋이 나온다. 그때마다 창의성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내가 어릴 적에 이런 교육을 받았더라면 좀 더 창의적인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하곤 한다.
물론 때로는 ‘내가 예술 강사를 왜 하고 있을까?’ 싶게 만드는 기운 빠지는 상황에 직면할 때도 있다. 특히 자발적인 참여가 아닌 누군가의 권유 혹은 반강제로 참가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하지만 항상 순탄하고 좋을 수는 없는 법이고 그런 상황에 대처하면서 나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기에 가치 있는 경험으로 여기고 있다. 크고 작은 경험이 쌓여 이제는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고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도 있다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부심이 자만심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지금까지 온 것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더 많음을 알고 있기에 스스로 더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교육에 예술 더하기: 젊은 강사들의 좌충우돌 성장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