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강사는 교육자로서의 기술과 섬세함을 겸비한 예술가로서,
대상들로 하여금 예술 속에서, 예술을 통하여,
혹은 예술에 대하여 배움의 체험을 이끌어내는 예술가이다.
- 에릭 부스(Eric Booth)
예술 강사는 예술로 소통하면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지만 때로는 막막한 문제에 직면해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는 예술가이자 예술 강사라는 사실이다. 예술에 대한 배움과 예술을 통한 배움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학교에서 활동하는 일반 교사나 학원 선생과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전공인 예술을 살려 아이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예술 강사는 예술가로서의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책임 있는 교육자로서 스스로를 성찰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아이들은 예술을 대하는 강사의 열정과 태도를 통해 예술을 접하고 이해한다. 다시 말해 아이들은 예술 강사의 존재 자체를 예술과 교육으로 받아들인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한두 명의 강사와 많은 아이들이 만나는 교육 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 자신의 경험에 의존하기 보다는 먼저 이런 과정을 겪은 예술 강사나 자신과는 다른 노하우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문제 상황과 그에 맞는 대처 방안은 예술 강사와 교육 대상에 따라 다르다. 특히 수업 현장은 만나는 사람과 공간, 그리고 수업 주제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진다. 비슷한 문제나 상황도 아이들 연령과 성향, 또는 기관의 상황에 따라 해결책이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문제 상황에 대해 여러 대처 방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신속하게 적절한 대안을 강구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예술 강사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궁금해 하는 사항과 문화예술 교육 현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장애물, 그리고 기관과 협업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질문과 답변의 형태로 정리했다. 독자가 실제 수업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문제 상황을 가급적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대안도 자세하게 제시했다. 물론 아래에 나오는 방안은 우리가 예술 강사로 활동하면서 배운 점과 노하우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모든 상황에 활용할 수 있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하지만 실제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에 참고 자료로 유용할 것이라 믿는다.
관계 편
Q. 기관에서 수업을 하다보면 여러 학년이 같이 수업을 받는 경우가 있다. 학년이 다르다 보니 아이들 사이에 위계 관계가 형성되어 있고, 그에 따른 부작용이 일어나곤 한다. 예를 들면 강사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고학년 학생이 목소리를 높여 동생들을 혼내기도 한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
A.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예술 강사는 일주일에 한두 번 왔다가는 사람이지만 기관 내 아이들은 몇 년을 지속적으로 함께해온 관계이다. 이 점을 감안해서 일단 아이들의 문화를 존중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학년의 편차가 큰 경우, 고학년이 주축이 되어 활동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권위를 존중해 주되, 리더의 역할과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이 좋다. 특히 리더는 동생들을 혼내는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수업 내용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를 도와주고 이끌어주어야 한다는 점을 수업 초반에 강조하고 수업을 진행하도록 한다. 그러면 리더가 된 아이들은 강사가 나를 믿고 있다는 자부심과 동생들을 잘 이끌어야겠다는 책임감을 동시에 가질 것이다.
학년이 다른 아이들뿐만 아니라 또래 관계에서도 나름의 서열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대장 노릇을 하는 아이를 강사 편으로 만드는 것이 효과적이다. 대장 아이와 유대감을 형성하면 수업 진행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유대감을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그 아이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소소한 일이라도 긍정적인 점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게 좋다. 칭찬을 남발하면 역효과가 일어날 수 있지만 초기에는 칭찬에 인색하기 보다는 가급적 자주하는 게 효과적이다. 반대로 비판이나 훈계는 둘 만 있는 자리에서 하도록 한다. 일단 관계가 친밀해지면 대장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적극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등 강사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줄 것이다.
내가 실제로 경험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몇 년 전 수업 중에 대장 아이를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혼냈다가 그 아이가 갑자기 욕을 하며 밖으로 나가버린 적이 있다. 이때의 난감함이란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다. 머리속이 하얘지면서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저 아이를 따라 나가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남아 있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수업을 계속 진행해야 하는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몇 초가 몇 시간 같았다.
아이들도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과연 강사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 할까? 모두 나의 행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우선 마음을 추스르고, 남아있는 아이들에게 잠시만 교실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간 아이를 찾아 나섰다.
그 아이도 마음에 걸렸는지 문 앞에 서 있었다. 아이도 나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기가 죽어 문 앞에 서있는 아이를 보니 당혹스러움으로 쿵쾅거리던 심장은 자자들고 아이가 안쓰러웠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아이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눴다. 단둘이 있으니 좀 전에 욕을 하며 문을 박차고 나가던 아이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 아이는 친구들 앞에서 혼이 나니 자존심이 상해서 욱한 마음에 밖으로 나갔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도 솔직하게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로 한 후 수업에 들어오겠냐고 아이에게 물었다.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강사라는 권위를 사용하면 역효과가 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이는 잠시 생각한 후에 활동은 안하더라도 자리에 앉아 있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기로 서로 약속하고 나는 먼저 교실로 돌아가 수업을 진행했다. 곧 뒤따라 아이가 들어왔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아이를 받아주었다.
한 주가 지나고 그 아이를 다시 만났다. 아이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수업에 들어왔다. 내가 먼저 다가가 친한 척하며 인사를 건넸다.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태도가 지난번과 많이 달랐다. 스스로 반성을 한 듯 했다. "오늘 입은 옷 멋있는데?", "잘 어울린다." 내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대하자, 아이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이 일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을 졸이게 하지만 가치 있는 교훈을 얻었다는 점에서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강사가 처음부터 아이들의 서열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수업을 진행하는 중에 서열이 나타날 때에 대장 노릇을 하는 아이를 인정해주고 아이를 통해서 수업을 진행해보자. 칭찬도 하고 농담도 하면서 아이와 공감대를 형성하면 아이도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뿐 아니라 강사에게 도움도 주면서 자연스레 원만한 수업이 된다. 하지만 아이가 강사의 역할을 대신하려 하거나 강사의 권위를 무시하려 할 때는 적절한 지도가 필요하다. 다만, 혼낼 때에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가 아닌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교육에 예술 더하기: 젊은 강사들의 좌충우돌 성장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