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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영 Aug 06. 2018

마리옹 파욜의 이토록 도발적인 그림책들

 *네이버 메인에 소개되었습니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5741062&memberNo=37685217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마리옹 파욜의 작품들은 ‘성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고도 불린다. 때로는 도발적이고 때로는 곱씹을수록 씁쓸하기 때문이다. 유쾌한 첫인상에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면, 밀크초콜릿을 기대하며 베어 문 것이 다크초콜릿이었을 때처럼 깜짝 놀랄 것이다. 그렇지만 한 번 맛보면 쉽게 끊을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인 마리옹 파욜의 그림책 두 권을 소개한다.


출처: Picture book Makers
출처: academy of gentle arts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일러스트레이터인 마리옹 파욜. 스트라스부르의 장식미술학교 출신인 그녀는 졸업 프로젝트로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획한다. 바로 그림에 서사를 담아보는 것. 그전까지 간단한 일러스트만 작업하던 파욜은 대사 없는 카툰처럼 한 페이지를 여러 컷으로 나눈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이 그림들은 훗날 한데 엮여 책으로 출간되었고, 묘한 매력으로 수많은 마니아층을 양성하며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바로 마리옹 파욜의 첫 번째 그림책, <관계의 조각들>이다.     

출처: L'ecureuilmort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각각의 작품들은 현대사회를 배경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조명하고 있다. 친구, 연인, 부모와 자식처럼 익숙하고 일상적인 관계들은 예쁘게 포장되는 대신 그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대화가 부족한 연인은 함께 있는데도 혼자 있는 것처럼 외롭고, 스스로와 사랑에 빠진 남자는 거울을 들여다보느라 제 주변을 맴도는 여자들을 신경도 쓰지 않는다. 이별 후 모든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던 연인은 하나뿐인 아이마저 자로 잰 듯 반으로 갈라버린다. 다소 그로테스크한 결말은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을 어딘가 불편하지만 매혹적으로 끌어올린다. 외로움에 지친 여자는 연인을 카펫처럼 돌돌 말아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자신의 모습에 취한 남자는 깨진 거울과 함께 산산조각 나며, 새로운 사랑에 빠진 남녀는 서로의 반쪽짜리 아이를 하나로 합친다.

 거침없는 상상력은 주저하지 않고 금기시되는 주제까지 파고들어간다. 그 중 한 작품에서는 속이 훤히 비치는 치마를 입은 여자가 등장한다. 치마는 고래 뼈로 만든 코르셋 같기도 하고, 새를 가둬두기 위한 새장 같기도 하다. 지나가던 남자는 망설임 없이 몸을 웅크리고 치마 속으로 자진해서 기어 들어간다. 창살이 견고해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상상력은 두 번째 그림책 <어떤 장난>에서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남녀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룬 이 책은 화들짝 놀랄 만큼 도발적이고 다양한 비유가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런 에로틱한 표현마저도 파욜 특유의 유머러스한 시선 덕분에 유쾌하게 처리된다. 앞으로 파욜의 상상력이 과연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저절로 기대되는 이유다.     

 사실 파욜의 작품은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한 편의 시를 읽을 때처럼, 그저 찬찬히 들여다보고 작품이 걸어오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때로는 페이지를 바로바로 넘기는 대신 눈을 감고 나름의 해석을 달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더 매력적인 건, 반드시 첫 페이지부터 읽기 시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각각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어 중간부터 시작하거나 끝에서부터 거꾸로 읽어도 아무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책장을 덮어야 할 순간에 가까워지는 게 아쉬워 괜스레 페이지 넘기는 속도를 줄여본 경험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시도해보기를 추천한다.    

출처: Picture Book Makers. 파욜의 이야기들은 이렇게 구상된다.

 흥미롭게도 파욜의 이야기들에는 시놉시스가 없다. 메시지나 줄거리가 아니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편적인 이미지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작품 바깥에서 이야기를 꾸며내는 대신 작품 안으로, 캐릭터 속으로 직접 들어간다. 자신이라면 다음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상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본인조차도 작품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지 쉽게 짐작하지 못한다. 인물들 한 명 한 명, 이야기 하나하나 모두 그 자체로 마리옹 파욜인 셈이다. 그렇기에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프랑스 출신 아티스트의 내밀한 속마음을 살짝 훔쳐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까지 한국에 소개된 마리옹 파욜의 그림책은 단 두 권.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많은 만큼 그녀의 이름 역시 아직까지 생소하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들은 모르고 넘어가기엔 너무나 매력적이다. 일러스트레이터보다는 매혹적인 스토리텔러라고 부르고 싶은 마리옹 파욜, 앞으로 그녀의 책들이 우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기를 바라본다.        

마리옹 파욜 공식 홈페이지 http://cargocollective.com/marionfayo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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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인디포스트'에서 쓴 기사입니다!

미처 다 옮겨오지 못한 동영상들을 함께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http://www.indiepost.co.kr/post/7580 여기로 놀러와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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