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시카 Feb 19. 2022

An Ordinary Day

나폴리에서 평범한 어느 날.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보통 아침이 되면 알람이 없어도 비슷한 시간에 잠이 깼다. 항상 눈 뜨자마자 누운 채 바로 침대에서 스트레칭을 한 후, 졸린 눈을 비비며 상쾌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철제로 된 하얀 베란다 창문을 열면, 창 밖에서 은은히 들어오는 햇볕과 함께 집에서 키우는 작은 종달새들이 기분 좋게 노래를 불러줬다. 바람이 살짝 부는 날에는 하얀 레이스 커튼이 춤추듯 살랑살랑 흔들려서 참 예뻤다. 


이 커피를 마시기 전까지는 에스프레소는 원래 제일 맛없는 커피인 줄 알았다.


이탈리아인들은 대체로 아침에 단 음식과 에스프레소로 아침을 시작한다고 한다. 주방으로 가서 옅은 갈색 빛을 띠는 나무로 된 찻장에서 소주잔만큼 작은 유리잔을 꺼내 설탕 한 스푼을 넣고, 방금 넣은 커피 캡슐로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동안, 간단하게 설탕으로 코팅된 단 과자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 과자를 먹으면서 가족들과 Buongiorno!(좋은 아침이에요!)라고 아침인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무언의 약속처럼 항상 다 같이 집안일을 했다. 침구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다 되면 베란다에 널었다. 그러고 나면 각자 할 일을 하는데, 대부분 친구와 같이 거실 (식탁 겸) 책상에 앉아, 친구는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이탈리아어를 공부했다오후가 되면 하교하는 시간이라 애들이 까르르 웃는 소리가 종종 들렸다. 여름 같던 날씨는 10월이 다가오자 비가 밴쿠버만큼 자주 왔는데, 그럴 때면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으며 공부를 했다. 먹구름이 가득 차 버리는 바람에 집 안은 평소보다 어두웠지만 그만큼 또 운치가 있었다. 


저녁이 되면 "Striscia la Notizia"이라는 시사 코미디 쇼를 틀으셨다. 명실상부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나폴리탄인 남자 앵커와 스페인&이탈리안 배우 겸 모델인 여자 앵커가 매일 나와 지루할 수도 있는 사건들을 재밌게 풀어줘서 언어를 잘 몰랐던 나도 종종 봤던 기억이 있다. (아쉽게도 앵커들은 매 텀마다 바뀐다고 한다.) 여느 뉴스처럼 어떤 때는 감동적인 이야기로 마음을 울렸고, 어느 날은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범죄를 밝혀내서 통쾌했으나, 대부분은 "Fuori dal coro" 같은 프로그램에서 매일 같이 그린 패스에 관해 의미도 없는 찬성과 반대로 서로 목청이 찢어질 만큼 열띤 토론 하느라 꽤나 시끄러웠다. 


그중에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폴리탄 가정식!


홈스테이 아주머니는 그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이 그렇듯 손이 정말 크셨다. 밥을 남기더라도 (물론 남은 밥은 다음 날 먹었지만!) 부족하게는 먹일 수 없다며 항상 한솥 가득하게 만드셨는데, 무엇 하나 빠질 것 없이 정말 맛있어서 음식을 남긴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깨끗이 비웠었다. 특히 한국 음식과 다르게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이 따뜻할 때 먹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매일 같이 저녁이 되면 코스 요리처럼 한 음식을 끝내면 다른 음식이 나오고 또 다시 세 번째 음식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진수성찬을 끝낼 수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맛있게 먹고 나면 어느새 씻고 잘 시간이었다.


늦은 밤이 되면 다 같이 장난치느라 배꼽이 빠지게 웃은 날도 많았고, 또 어떤 날은 혼자만 살찔 수 없다며 야밤에 초콜릿을 녹이며 반 컵씩 야금야금 야식을 나눠 먹었다. 주중에는 친구들이 한국어 수업을 들어서 옆에서 보조 선생님처럼 모르는 문제들을 도와줬고, 주말이 다가오는 금요일 밤이면 친구와 나는 약속한 듯이 의자에 앉아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켜고 듀오 게임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가끔은 저녁 먹기 전에 집 근처를 하염없이 걸으며 서로 못다 한 이야기의 꽃을 피웠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물 흘러가듯 평범한 일상을 산 것은 아니다. 나폴리에 도착하고 며칠 동안은 시차 적응에 그동안 못 잔 잠을 채우느라 밤 낮 할 것 없이 앉거나 누우면 바로 잠들었는데, 홈스테이 가족은 혹시나 내가 어디 아파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하필 동네 근처에서 칼부림이 나는 바람에 경찰 몇 대가 올 만큼 응급 상황이 일어났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턱이 없는 나는 가족들이 돌아가며 여러 번 깨워도 여전히 비몽사몽이어서 집안은 어수선했고, 어찌어찌하여 겨우 일어나 보니 이미 밖은 아수라장이었다. 심지어 저녁을 다 같이 먹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렸다는 말을 듣고는 기다려준 가족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에 밥 먹다 말고 꺼이꺼이 울었다. 


개인적으로 남한테 민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터라 혹여나 문제를 일으킬까 봐 지나칠 정도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홈스테이 가족들이 선뜻 먼저 나서주며 나 또한 Famiglia(가족) 구성원이 되었으니 그저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내다 가라고 다독여주셨다. 그때부터 우리는 서로 가족끼리 쓰는 애칭으로 부르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홈스테이 부모님을 이탈리아어로 Mamma(엄마)Papa(아빠)라고 부른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머나먼 타지에서 새 가족이 생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열정의 도시 나폴리로 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