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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시카 Jan 04. 2024

새해를 맞아 해외로 유학/이민 가기로 결심했다고?

꽃길을 뿌려줄 테니 가시는 걸음걸음 이 글을 지려밟고 가소서

지금도 고이 소장하고 있는 내가 가장 아끼는 책의 구절을 인용해서 해외 살이에 대한 내 의견을 단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외국에서 홀로서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것들과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을 제대로 알아야 타국에서 살아도 무언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쉬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새해에 많은 사람들이 하는 큰 결심 중 하나가 유학이나 이민이 아닐까? 각자 다른 이유로 한국을 벗어나 살아가고 싶은 열망. 잠깐의 여행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그런 갈증 때문에.


가서 살아야 되는 나라의 리서치조차도 없이 무턱대고 "나는 헬조선을 떠날 거야. 계획은 없지만 가면 뭔가 해결되겠지"라며 혈혈단신 떠났다가, 몇 천에서 몇 억 사기당해, 인종 차별을 수차례 겪고 심각한 우울증으로 집도 못 나와, 현실 도피하려 마약에 취해버린다거나, 비자 룰을 제대로 숙지 못해 쫓겨나거나 노숙자 또는 불법 이민자 되어버려 최저 임금도 제대로 못 받고 사는 사람들을 (심지어 서로 물고 뜯다 살인 사건도 더러 있었다!) 실제로 주위에서 보고 듣는데 그냥 무시하고 가만히 있기도 좀이 여간 쑤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당신의 유학/이민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해외 이민을 가겠다면 다음 질문들을 한 번 읽어보고 생각을 잘 정리해서 제대로 준비하고 가길 바란다.




1. 여행과 유학/이민의 차이점을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여행은 흔히 가지고 있던 외국 생활의 환상을 직접 겪어보기 위해 나의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유학/이민은 그 환상을 철저히 깨부수기 위한 목적으로 가야 한다. 단 한 번도 한국 의외에 다른 나라에 나간 적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한국에 살면서 한국 드라마처럼 "맞아, 나도 갑자기 훌쩍 떠난 여행길, 반짝이는 햇살 아래 이쁜 옷 입고 여유롭게 한 손에는 커피, 다른 손에는 비싼 노트북을 들고 잘 정돈된 예쁜 길가를 걷다가, 갑자기 완벽한 이상형의 재벌 3세가 날 낚아채면서 '너 같은 여자/남자는 처음이야'라며 사랑을 열렬히 고백했었지.." 따위의 경험을 실제로 해본 적이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하면 아마 당신은 나한테 "꿈이랑 현실을 구분 못하나?"라고 되받아치겠지.


내가 해외 유학/이민 관련 홍보글이랑 영상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 딱 저렇다. 정말 살을 내주고 뼈를 깎는 노력을 강산이 몇 번이 변하도록 오랫동안 꾸준하게 하지 않고서야 보이지도 들리지도 그렇다고 아는 사람조차도 없는 타지에서 현지인들을 제치고 한국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부귀영화 누리기란 마치 아무 노력도 없이 로또 1등 당첨을 바라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 사는 세상 다 고만고만하다. 


사람 기질이나 문화 때문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내가 살아 본 4개의 국가의 현지인들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 모두 공통적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과 경쟁에 지치고, 먹고사는 걱정, 가족/자식 걱정, 돈 걱정, 만나면 칭찬을 가자한 본인 자랑 아니면 걱정을 가장한 험담에, 이웃이나 친척의 무례한 질문 때문에 가족 모임에 가고 싶지 않다던가, 학교/회사 라인을 어떻게 타야 되나, 어떻게 하면 회식을 피할 수 있을까, 오늘은 회사 잘리지 않고 제시간에 퇴근할 수 있을까, 사회가 정해준 미적 기준에 나는 적합한가, 나이는 먹어가는데 나는 남들보다 잘 살고 있는가 등 무릇 인간이라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들을 다들 비슷하게 짊어가고 있었다.


(아메리칸드림 같은 실체적인 성공을 제외한) 진정한 해외 살이란, 찰나의 아름다운 겉모습만 훑고 떠나는 것이 아닌, 그 나라의 현지인들처럼 먹고 마시고 입고 생활하며 그 들의 삶 속으로 나를 온전히 내어 던져야 한다. 변화에 익숙해지고 그동안 가지고 있던 편협한 사고를 깨는 행위에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2. 평소에 내가 외로움/스트레스를 겪고 있을 때 어떻게 견디고 해결하는가?

의외로 외향적인 사람들보다 내향적인 사람들이 타향살이에 더 잘 적응한다. 


당연히 먼저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던가, 부끄러움 없이 실수를 계속하든 말든 외국어를 내뱉는다던가와 같은 행동들은 본인의 의지의 차이지 적성의 차이라고 하지 않겠다.


여기서 말하는 성격의 차이는 외로움이나 스트레스를 겪을 때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혼자 얼마큼 오래 잘 견딜 수 있냐는 뜻이다. 아무리 이민 생활에 적응을 잘했다고 한들, 나 홀로 타지 생활을 겪으며 얻는 어마어마한 고독과 스트레스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만 해서 극복할 수 있는 문제 따위가 아니다. 


아무리 더불어 사는 사회라고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언어와 문화 차이 때문에 서로 백 프로 이해하기는 힘들다. 생각지도 못한 고난의 연속일 때마다 남에게 의지하고 대신 해결해 주길 바란다면 당신이 과연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과연 그 누가 자기 자신을 희생하면서 까지 평생 당신을 뒷바라지할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결국 스스로 해결 방법을 어떻게 해서든 찾아내서 이 악물고 견뎌내 이겨내야 한다. 


가족 단위로 온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이 잘 풀리면 가족 간의 우애가 더 단단할 계기가 될 테지만, 대게 부모가 언어가 안 되니, 자녀들에게 투자한 만큼이라도 돌려받자고 한계까지 몰아붙이면서 오히려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길 바라며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파트너 사이도 마찬가지고.


누군가와 같이 왔다면 당신의 머릿속에 "내가 너 때문에 여기까지 오며 모든 걸 희생하고 있어."라는 말은 본인의 정신적 건강을 위해 지워두길 바란다. 해외 살이는 결국 각자도생이다.


절대 내가 돈/믿음을 줬으니 그 사람/회사(이)가 알아서 잘 해결해 주겠지 따위의 안일한 생각을 해버리면 그날로 본인의 삶과 돈을 남에게 휘둘리게 내어주는 꼴과 같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수많은 시행착오와 어마어마한 문화 차이에 부딪혀도 나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고 열린 사고를 해낼 수 있다.


3. 내가 가고 싶은 나라에 대해서 얼마큼 알고 있는가? 

당연하게도 정말 중요한 항목인데, 은근히 많은 사람들이 그 나라의 문화, 역사, 경제, 사회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대학 입시 넣듯 비자 신청 되는 나라로 대충 욱여넣는 경우를 종종 봤다.


캐나다 같은 경우에도 많은 이민자들이 미국이랑 캐나다가 뭐가 다른 지도 모른 채 온다. 놀랍게도.


관광이라면 정해진 스케줄을 잘 체크하면 될 일이고, 여행이라면 직접 다녀보고 부딪혀보며 발길 따라 설렘을 느끼는 게 묘미라지만, 유학/이민은 내가 앞으로 생활해야 될 나라다. 당연히 철저한 사전 조사와 되도록이면 답사까지도 미리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 역사, 경제, 사회도 두루두루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는 국내 및 국제 정세에 따라 비자와 이민 정책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뀌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된다고 해서 신청했다가 (오버 좀 보태자면) 하루 사이 갑자기 바뀐 정책에 몇 년을 허송세월하다가 다시 한국으로 가는 사람들도 봤다. 


명심하자. 당신은 이 나라에 외국인 입장으로 다른 현지인들처럼 생활하기 위해 온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살기 좋은 나라라고 얼핏 들어서 왔다면 돈과 시간만 낭비하고 천국이 지옥으로 변하는 일은 순식간이다.


4. 나의 외국어 실력은 어느 정도 되는가?

정말 누구나 쉽게 조언이랍시고 떠들어대면서도 막상 본인에게 하라고 하면 쉽게 해내지 못하는 항목 중 하나 아닐까 싶다. 출국하기 전에 얼마큼 외국어를 잘해야 되는가?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이미 외국어에 대한 인풋이 충분한 상태이고 아무래도 환경적 요인 때문에 아웃풋 연습을 할 수가 없는 상태라 부득이하게 왔다고 치자. 이런 경우는 정말 빠른 시간 내에 원하는 결과를 얻기 때문에 그 후에 본국으로 돌아가 해외 경험을 잘 살려 좋은 기회를 얻는다거나, 타국에서 계속 산다고 해도 숱한 보통의 1세대 이민자들처럼 살아남는 것만이 목적이 아닌, 자아실현을 이루기 위해 현지인들처럼 화이트 컬러 직장이나 페이가 좋은 직장에 일하며 비교적 (경제적으로) 잘 먹고 잘 산다.


그렇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대부분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와서 이런저런 이유로 준비도 안 하고 그냥 몸만 덜렁 온다. 이미 와서 생활하고 있는 이민자들이 그러면 큰일 난다, 공부를 미리 하라고~하라고~! 도시락 싸들고 옆에서 말려도 귓등으로도 안 듣고 "에이~ 와서 생활하다 보면 알아서 다 잘 해결되겠지." 부류다.


이런 부류는 세 가지 결과가 나온다. 


첫 번째. 처절하게 실패 후 눈물을 머금으며 다시 한국으로 귀환.


두 번째. 악착같이 버티다가 어찌어찌 사람 수준으로 실력을 올린 경우. 인풋이 이미 충분한 친구들처럼 유창하게 하려면 훨씬 더 오랜 시간 서러움 꾸역꾸역 참아가며 투자해야 한다. 저번글에도 말했지만 이민 1세대나 1.5세대가 보통의 노력(실력과 인맥 포함)으로 남들처럼 번듯한 학교 졸업이나 직장을 얻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세 번째. 모든 걸 포기했지만 한국에 돌아갈 수 없어서 지역 한인 사회에서만 교류하거나, 그마저도 못하고 아예 아웃사이더가 되는 경우. 자녀/파트너에게 모든 걸 희생하고 본인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람들이나, 부모 때문에 억지로 끌려온 친구들이 이런 부류에 속하는데, 특히 부모에게 복수한답시고 자기 파괴적으로 막 나가는 어린 친구들도 의외로 많다.


현실적으로 처음 예제와 같은 능력을 모든 사람이 갖출 순 없다고 치더라도, 당부하건대, 오기 전 최소한 실생활 언어는 가능할 정도로는 꼭 준비해야 한다. 


6. 가기 전까지 돈은 얼마나 저축할 수 있는가?

가장 현실적이고 제일 중요한 문제이다.


비자 신청부터 최소한의 저금을 증명해야 받을 수 있을 테다. 가끔 비자 먼저 대충 해결하자고 숫자만 맞추고 다시 빼돌려서 원래 최소한의 금액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있던데, 개발 도상국으로 가는 게 아니고서야 요즘 시대에 일자리 구하기 쉬운 나라가 하나도 없는데 가서 도대체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할 정도다.


최대한 준비했다고 해도 예상했던 거보다 최소 2-3배는 더 많이 쓸 일이 많다. 설사 돈을 벌려고 왔다고 하더라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 전혀 예상 못한 곳에서 지출이 많기 때문에, 당신의 피땀 흘린 돈이 마치 눈 녹듯 빠르게 사라질 테니 최대한 많이 저축해야 한다.


당신에게 묻고 따지지도 않고 "부와 명예를 주겠소! 나만 믿고 돈을 내시오!" 하는 부류는 당연하지만 사기꾼인 거 잘 알 텐데, 한국이었다면 무시한 채 지나갈 일들, 금발에 파란 눈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다가 신천지 끌려가거나 살해당한 뉴스도 봤다. 그래서 더 당부하고 싶다.




나 또한 어렸을 때부터 정말 죽기 살기로 버텼고 혹여나 누군가 나한테 기회를 줄 테니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힘들게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 번의 해외 생활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감히 말하건대, 우물 밖 야생에서 최하위 포식자로 생존해 나간다는 건 책이나 텔레비전 따위의 간접적인 경험으로만 넓혀질 수 있는 견문의 정도가 아니다. 교과서랑 다큐멘터리에서만 봐왔던 역사적 유물이나 거대한 자연을 직접 마주할 때면 놀랍다 못해 경외스럽다고 느낀다. 뿐 만 아니라 나 자신이 좀 더 성장하고, 스스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구나 실감할 때마다 이런 기회를 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하고. 매 해 잘 버티고 있는 나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새해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당신에게도 무한 찬사를 보내며, 2024년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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