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기
재미있는 사실 하나. 미라클 모닝(The Miracle Morning)을 쓴 저자 할 엘로드(Hal Elrod)는 새벽 5시에 무조건 일어나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 오히려 몇 시에 일어나든 하루를 본인에 맞는 루틴으로 시작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새벽 5시 클럽에 헐레벌떡 뛰어간 이유는 다름 아닌 최근에 들어서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때는 2017-18년, 처음 미라클 모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아직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학생 신분이었던지라 집과 학교로 행동반경이 제한되어 있어서 굳이 아침 시간을 내어 줄 필요성을 전혀 못 느꼈다.
몇 년 후 그렇게 원하던 프리랜서 직업을 얻고 부모님 집에서 나와 독립을 하면 부모님 잔소리 안 듣고 내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웬걸,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전혀 아니었다.
나름 알차게 1년을 보내자고 규칙을 만들어서 매일 실행하도록 노력했다.
이탈리아에 워홀로 온 작년 5월부터 꾸준히 하던 모닝 루틴은 다음과 같다.
일어나는 시간이 불규칙하더라도 기상 이후에는 되도록이면 모닝 루틴을 시작한다.
루틴의 순서에 상관없이 그날 중요도에 따라 메일을 확인하고, 운동하고, 집안일 모두 끝내놓고, 어떤 언어를 선택하던 상관없이 책을 한 챕터는 꼭 읽고, 영어 단어와 이탈리아어를 50개씩 공부한다.
일 할 때는 출근과 퇴근을 정하지 않고 시간과 상관없이 당일 끝내야 할 목표를 대략 설정해서 당일에 끝내는 것을 목표로 잡는다.
결과는... 반만 성공했다.
(아참, 왜 책 내용처럼 순서 안 지키고 명상도 안 한다고 물어본다면 이미 몇 년 전에 따라서 시도를 여러 번 해봤는데 단 한 번도 지속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저자가 만들어준 루틴은 내게 전혀 도움이 안 됐다. 그래서 나만을 위해 만든 지극히 개인적인 루틴이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컴퓨터 붙잡고 매일같이 일을 하다 보니 허리가 아파서 요가라도 하려고 매트를 깔면 주위에 나뒹구는 검정 먼지구덩이들이 내 신경을 건드린다. 바닥을 급하게 쓸고 있다 보니, 전날에 먹고 쌓아둔 접시들이 아슬아슬하게 탑을 쌓았네. 후딱 설거지하고 뒤돌아보니 세탁기 옆, 엉기정기 쌓여있는 옷 무더기가 보인다. 며칠 비가 와서 빨래를 못했는데 이 참에 해야지. 옷을 예쁘게 개어서 옷장에 잘 보관해 둔다는 행위는 잊힌 지 오래다. 초반에 막 독립했을 때는 주름 하나 없이 예쁘게 입자고 다리미질하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몇 달에 거친 나름의 노하우로 빨랫대에서 대충 마른 옷을 집어 입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밀린 집안일을 하고 나면 뱃속의 시계는 어김없이 꼬르륵 울려대고 어느새 밥 먹을 시간이다. 배고프다고 시위를 해도 밥을 차려주는 사람이 없으니 내 몸뚱이 손수 이끌고 주방에 가서 후다닥 점심을 만든다. 요리보다는 청소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독립 초 때는 엄마가 먹지 말라는 것만 골라 먹었었는데, 몇 달 만에 또! 15킬로 찌고 캐나다에서 가지고 옷이 또!! (처음은 2021년 3개월 이탈리아 생활 때) 안 맞아 충격에 빠져버렸다. 그래도 이번에는 나름 관리한다고 덤벨이랑 가정용 벤치 프레스도 구매해서 매일 운동했는데? 이상하네? 거울로 달려가 급하게 몸을 확인해 보니까 딴딴한 게 분명 근육도 전에 보다는 눈에 띄게 생겼다. 아무래도 내 동생이 말라깽이 시절 그렇게 원하던 벌크업 뭐시기를 비슷하게 한 것 같다.
밥도 먹었으니 이제 다시 책상에 앉아 그동안 못했던 일을 꾸역꾸역 해낸다. 고객들에게서 연락이 온다. "이거 바꿔주세요. 저거 바꿔주세요. 문제 생겼어요. 고쳐주세요." 일할 때 말고도 밥 먹다가, 휴가 갔다가, 자다가 새벽에 들어오는 문의들... ㅎㅎ 어찌어찌 정신없이 해내려고 하는데 어느새 깜깜한 밤이 되어버려 더 늦기 전에 후다닥 매트를 깔고 운동을 해야 했다. 작년에는 습관을 기른다고 맨몸 운동 했을 때는 길어야 40분이었는데, 덤벨로 상하체 각 잡고 운동하다 보니 적어도 1시간 30분은 꼭 매일 투자해야 한다. 몇 년 전에 일하다가 다친 허리를 지금은 근육으로 받쳐주고 있어서 하루라도 빼먹으면 몇 날 며칠을 허리 통증으로 고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에는 똑같이 사다리에서 떨어졌어도 며칠 안에 금방 회복했는데, 30대 때 다치고 이제는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회복 속도가 눈에 띄게 느리다.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꾸준히 운동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오늘의 일도 대충 끝났고, 저녁도 먹었겠다, 일을 마저 못한다면 남은 시간을 활용해 이탈리아어 공부라도 하고 싶지만, 이미 진이 빠진 나의 정신은 이미 딴 데에 팔려있다. 이탈리아어 글자 하나 읽다가 인스타그램 확인하고, 한 단어 공부하다가 배경 음악 찾겠다고 유튜브를 켜버리는 순간 두세 시간은 순식간에 없어져 버린다. 눈이 피곤해서 시계를 확인해 보면 항상 잘 시간이 훌쩍 넘은 새벽 세 네시였다.
매일 잠들기 전 오늘은 무엇을 해냈나 생각하다 보면, 어떤 날은 운동만 3시간 하느라 하루종일 지쳐 아무것도 못했을 때도 있고, 이도 저도 아닌 날도 왕왕 있었고, 일을 어떻게 하긴 했는데 만족스럽게 마무리하지 못한다던가, 단기 프로젝트가 장기 프로젝트로 변하고, 한 가지 일을 해결하느라 다른 일들은 아예 신경을 못 썼다거나, 특히 그중에서도 이탈리아에 온 지 이제 반년이 넘어가는데 다행히 입과 귀가 조금은 트였다지만 전체적으로 내 욕심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패배감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몇 개월 내내 매일 열심히 루틴을 따라 했는데 성공보다 더 많이 실패했을까? 곰곰하게 생각하다가 떠오른 사실. 한 번도 새벽에 모닝루틴을 해본 적이 없었다.
2023년도 말쯤에는 이대로 아무것도 성공하지 못하고 캐나다로 돌아갈까 봐 불안한 감정이 나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는 바람에 불면증에 걸려 이틀에 걸러 하루만 잠을 겨우 잘 시기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새해맞이 루틴을 좀 고쳐서 새벽에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새벽 3시 반에 시작한 모닝 루틴은 마치 찐한 초콜릿 케이크를 먹은 것처럼 환상적이었다. 그전에 하던 루틴을 고대로 하는 바람에 장장 네 시간이나 걸렸던 날이었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시간을 들였는데도 불구하고 루틴을 마친 시간이 남들은 이제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일곱 시였다. 남들은 잠든 고요한 새벽 동안 그 누구의 방해 없이 오롯이 나와 내 루틴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기 때문에, 꾸준하게 하기 위해서 그전 루틴보다 해야 할 목표와 가지 수를 반 절이상 줄였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의 내용을 바탕으로 끝내야 할 정확한 시간을 정하고, 해야 할 일들을 앞 뒤로 연결시켜 유기적으로 연결시켰다. 책에서 조언해 준 데로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과 접목시켰다.
그렇게 고친 2시간 반에서 3시간 모닝 루틴은 다음과 같다.
전날 저녁에 9시에서 10시에는 잠들도록 노력하고 꼭 새벽 5시 반에 일어난다.
눈을 뜨면 바로 허리 통증 줄여주는 간단한 스트레칭들을 모두 1분 미만으로 한다.
침대에서 일어나면 컴퓨터를 켜고 차를 탄다. (너무 졸린 날은 커피를 탄다.)
아침과 메일 확인 하기 전에 5분 동안 꼭 오늘 하루에 해야 할 일을 적는다.
차를 마시면서 영양제 젤리를 하나 먹고 아침을 먹으면서 메일을 확인한다.
메일 확인 후 바로 (오로지 흥미 위주로 고른) 한국 책을 15분 동안 읽는다.
한국 책 읽은 후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 3개 이하인) 디자인 관련 된 영어 책을 15분 동안 읽는다.
영어 책을 읽으면 5분 동안 몰랐던 영어 단어 5개를 외운다. (이해력을 높이기 위해서 예제도 같이 적는다)
책 읽고 바로 이탈리아 문장 20개를 20분 안에 외우고 당일 테스트를 통과한다. 무사히 통과하면 작은 초콜릿 하나를 먹는다.
공부가 끝나면 창문을 열고 환기시키며 집안을 정리한다. 간단한 설거지와 바닥 쓸기는 매일 하지만, 딥클리닝이 필요할 때는 요일마다 한 개씩 나눠서 한다. 웬만하면 30분, 최대 1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깨끗한 집에서 1시간에서 1시간 반동안 요일별로 나눈 운동을 한다. 컨디션이 별로일 때는 코어랑 요가 위주로 간단한 맨몸 운동만 30분 이내로 한다. 어지럽거나 배고프면 달걀 프라이와 아몬드 6알을 먹는다.
주말은 아예 쉬거나 그날에 따라 하고 싶은 루틴 3개 이하로 골라서 한다. 컨디션에 따라 아침 7시에 기상해도 괜찮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생리통 때문에 걷지도 못한 아픈 날 이틀을 빼고 단 하루도 빠진 날이 없었다. 심지어 하루 동안에 해야 되는 리스트 항목 개수들도 모두 마쳤다!
그전 8개월 동안에는 읽으려던 12권에서 달랑 4권만 완독 할 수 있었다. 영어 원서는 한 권이 고작이었다. 그 마저도 내용이 너무 유치해서 읽다 그만뒀었다. 그러나 1월 한 달 동안 한국책은 4권 중 3권을 완독 했고 디자인 영문서도 반 이상을 꾸준히 읽고 있다. 무엇보다 디자이너 주니어 때는 디자인 툴 연습이 이론 익히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오해했었는데, 연차가 쌓이면 쌓일수록 왜 이렇게 디자인해야 되는지 이론적으로 접근하니 이해도 쉽고 요긴하게 써먹을 팁도 많았다. 예제로 이렇게 실수하지 말라고 하는데 내가 주니어때 하던 실수를 고대로 나열한 글을 볼 때면 왜 나는 일찍 시작하지 않았는가 한탄이 절로 나온다.
이탈리아어 수준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그전 8개월 동안 대략 1500개 정도 외울 수 있었다. (생존을 위한 문장을 제외하고) 아기가 말을 트는 것처럼 "이거, 저거, 엄마, 아빠" 수준에서 "배, 아야, 약국, 약, 사다"등 단어를 내뱉을 수 있게 되었고, A2 리딩에서 틀린 문제가 없을 정도로 단어 읽고 추리하는 기초 능력도 올라갔는데, 갑자기 동사가 과거나 미래 시제로 변한다거나 내가 스스로 단어를 조합해서 문장으로 얘기할 때는 여러 단어들을 조립하느라 시간이 아주 많이 걸렸다. 1월 한 달 동안 문장들을 달달 외워 버릇 하니 여전히 시간은 걸리지만 전에 보다는 빠르게 간단한 문장들은 바로바로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하루종일 앉아서 작업을 업으로 먹고살다 보니 매일 운동하는 시간 제외 활동량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건강을 위해 요즘 유행하는 간헐적 단식을 하려고 그동안은 아침을 건너뛰고 점심 저녁만 먹었는데, 5킬로 이상은 도저히 빠지지 않았다. 요즘에는 저녁에 일찍 자야 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아침과 점심을 든든히 먹고 저녁을 건너뛰는데 속도 덜 부담스럽고 몇 십키로를 빼는 드라마틱한 차이는 없지만 육안으로 눈에 보일 정도로 살이 빠졌다.
아침에 해야 할 숙제를 모두 마치니까 해냈다는 자신감과 함께 맘이 편해지고, 남들처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다른 회사원들처럼 웬만하면 장 보는 것도 퇴근 후나 일 시작하기 전에 얼른 갔다 왔다. 그렇게 드디어 미루고 미뤄졌던 프로젝트 하나를 한 달안에 끝낼 수 있었다.
캐나다 저녁 식사는 보통 5시에서 7시 사이일 정도로 저녁이 짧다. 해도 짧고 저녁에는 모든 가게가 닫기 때문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생활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지만, 이탈리아는 저녁을 7시에서 9시, 심지어 금요일이나 토요일은 12시까지도 먹기 때문에 밤이 길다. 그래서 앞으로 얼마나 이런 개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맛본 자유는 너무 달콤해서 당분간은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난생처음으로 내일 아침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