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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시카 Oct 19. 2024

소렌토에서 결혼식 올리기

이탈리아에서 국제 결혼하기 최종장

내가 어렸을 때 한국에 살아왔던 년도보다, 이제 외국에서 살았던 년도가 훌쩍 넘어가는 시간을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한국어를 자꾸 까먹는다. 브런치에서 좀 더 정확하고 수려한 문체로 쓰고 싶어서, 요즘에는 모닝 루틴할 때 "한 문장이라도 제대로 쓰는 법"으로 자주 틀리는 한국어를 공부하는 중이다. 이번글은 저번 글보다 좀 더 읽기 편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글을 써본다.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고, 우리는 젖 먹던 힘을 짜내서 막판 스퍼트를 냈다. 집에 있을 시간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우리 가족이 집에서 배고플까 봐, 없는 시간을 만들어내 장을 두세 번은 더 보러 갔다. 프로슈토, 모차렐라 치즈, 이탈리아 와인, 초콜릿, 과자, 올리브, 수제 소시지등... 결국에는 다 싸가져 갔지만...


결혼식 이틀 전, 우리는 다시 소렌토로 가서 손님들이 드레스와 구두를 신고 다닐만한 거리인지, 근처에 볼 만한 장소가 있는지, 그리고 레스토랑을 고심해서 골랐다. 몇 십 개를 뒤져서 겨우 찾은 세 곳인데, 한 곳은 폐업한 지 오래고, 다른 한 곳은 알레르기 관련해서 커스텀 밀은 안 만든다고 거부했고, 마지막 한 곳은 10명이 넘는 손님을 한 테이블에 모실만한 공간이 없다며 자신의 형제가 하는 다른 가게로 추천해 줬다.


소렌토 푸오로 레스토랑


첫인상은 그리 좋지 못했다. 돌고 돌아 겨우 찾은 레스토랑이 겨우 좁은 골목길 한가운데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서버들도 그다지 친절하지 않아서 대충 알아보고 다른 가게 가자고 신호를 보내고 있을 찰나, 헤드 셰프가 친히 나와서 인사를 했다. 앉아서 얘기하자고 우리를 안으로 데려가는데, 알고 보니 이 레스토랑이 한 층만 있는 게 아니고, 반지하와 2층까지 있어서 건물 한 채를 다 쓰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당연히 결혼이 처음이니 어떻게 코스를 짜야 되는지 감도 못 잡아서, 노련한 셰프가 애피타이저부터 해서 디저트와 와인까지 술술 설명하더라. 우리가 잘 몰라서 여러 번의 번복이 있었음에도 셰프는 참을성 있게 들어주고, 조언해 주고, 심지어 맛에 자신 있다며 디쉬도 미리 맛도 보게 해 줬다. 덕분에 완벽한 구성으로 런치 메뉴를 짤 수 있었다. 당연히 끝날 무렵에는 예약금을 이미 걸고 있었다.


그 와중에 휴가 낸 걸 알게 된 남편의 슈퍼바이저는 더 엿 먹으라는 기세로 남편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무지막지한 양의 일을 시켰다. 며칠 내내 밤을 꼴딱꼴딱 새우면서 힘들게 일하는 그에게 차마 집안일까지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우리 집 대청소는 거의 내가 다 했다. 다행히 나는 결혼하는 주에는 일은 좀 미뤄두고 온전히 우리 결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우리가 렌트한 차, 공항에 주차 중...


결혼식 전 날, 다인용 차를 빌려서 헐레벌떡 나폴리 공항으로 친정 식구들을 데리러 갔다. 열몇 시간을 날아와서 당일에는 쉬어야 되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다들 쌩쌩했다. 덕분에 오자마자 바로 나폴리 시내로 가서 하루종일 걷고 저녁으로 피자를 먹었다. 예상 대로 나폴리 피자가 신선하고 맛있어서 친정 식구 모두 굉장히 놀랐다. 아쉽게도 처음이자 마지막 나폴리 피자여서, 부모님과 동생은 아직까지도 그리워하고 있다.


저녁이 되자, 다 같이 집에 와서 집 구경을 먼저 했다. 예상했던 거보다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부모님은 그제야 안심하셨다. 그렇게 곯아떨어진 동생과 남편은 다른 방에 두고, 시차 적응으로 새벽부터 깨신 부모님과 함께 새벽에 도란도란 얘기하다가 드디어 결혼식 아침이 밝았다.


아침은 정말 전쟁이었다. 내가 간단하게 이탈리안 크로와상인 콜넷또(Cornetto)를 만드는 동안, 가족들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순서대로 차례차례 일어나서 준비했다. 나는 중간에 시어머니와 시누이랑 함께 가까운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러 갔다. 늦어질까 봐 걱정 많이 했는데, 짧은 시간 내에 나쁘지 않은 머리를 해냈다. 의외의 복병은 내 머리카락이었다. 두껍고 숱이 많다 보니까 가져온 빤히 안 돼서 공구용 타이로 꽉 조였다. 이로 꽉 무는 바람에 미용사가 너무 힘을 주다가 손이 튕겨 나갔고, 그 반작용으로 나도 부딪혀서 머리가 좀 아팠다.


막 지나가다가 후딱 찍은 소렌토...


회랑에서 옷을 갈아입을 수가 없어서 집에서부터 드레스를 입고 갔다. 다 같이 서둘러 소렌토로 이동했고, 날씨는 정말 끝내주게 좋았다. 화창한 날씨의 소렌토는 천국이었다. 모두 그 아름다움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황홀해졌다. 딱 한 명, 분명 휴가 허가를 해줬으면서도 결혼식 아침 내내 왜 안 받냐고 꾸준히 볶아대던 남편 회사의 슈퍼바이저만 빼고.


가까스로 주차를 하고 울퉁불퉁 돌길을 지나 회랑으로 날아갔다. 하얀 웨딩드레스 입고 길가를 돌아다니니까 관광객들이 쳐다보는 느낌이 좀 들었지만, 그 시선들을 일일이 신경 쓰기에 우리는 너무 바빴다.


결혼식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주례사와 통역사는 서로 말을 맞추고 우리를 기다리는 중이었고, 아는 친구인 포토그래퍼 역시 동선 구상을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소렌토 회랑 (다른 커플 결혼식에 찍은 사진이라 의자가 모여있다.)


회랑 자체가 이미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굳이 꽃으로 식장을 가득 채울 필요가 없었다. 사시사철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를 중심으로 꽃 화원이 둘러싸였다. 여전히 따뜻한 날씨 덕분에 꽃들도 한창 피어 있던 날이었다. 마침 정오의 햇볕이 회랑을 무대 조명처럼 부드럽게 비춰주고 있었다.


미용실에서 나를 기다리느라 덩달아 시어머니와 시누이도 늦어지는 바람에 결혼식에는 시가가 제일 늦게 도착했다. 우리가 신랑 신부 입장을 위해 회랑 밖에서 입장하길 기다리고 있던 중, 시가는 우리에게 미안하다면서 식장으로 후다닥 달려가셨고, 다 같이 착석을 하자, 포토그래퍼 친구가 식을 시작하자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소렌토에 관광객 진짜 바글바글 할 정로도 많은데, 그 많은 관광객들이 하나같이 우리를 보며 다들 활짝 웃더라. 우리 초상권은 "결혼 축하해"의 말로 퉁치고 여기저기 찍히고 있었다. '이것이 유명인의 삶이구나...!' 좀 느꼈던 날이었다.


식장으로 걸어가는데 조용하다. 


'아차!' 정신이 없어서 식에 올릴 음악 고르는 걸 까먹었다. 다행히 시끄럽지가 않았다. 회랑 주위의 새소리와 소곤소곤 들리는 사람소리, 바람소리, 저 멀리 들리는 바닷소리를 노래를 배경으로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같이 나아갔다. 본의 아니게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식에서 실행하게 되었다.


입장한 후, 바로 이탈리아 소렌토 시청 주례사가 143, 144, 147항의 부부의 의무를 이탈리아어로 간단하게 설명했다. 한 구절이 끝나자 바로 옆에서 통역사가 영어로 해석해 줬다.


모든 의무 사항을 전달 후, 주례사가 우리를 번갈아 보며 물어본다.


"당신은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겠습니까?" 


남편은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한다. "네"


다시 주례사가 나를 보고 물어본다.

"당신은 그를 남편으로 맞이하겠습니까?" 


이미 공부를 한 달 동안 해놔서 뭔 말인지 다 알아들었지만, 통역사를 기다리느라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남편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네"


그러고 반지를 교환해야 하는데, 기껏 사놓은 결혼반지를 아침에 정신이 없어서 홀라당 까먹어버렸다. 다행히 시부모님께서 반지를 빌려주셔서 식장에서는 흉내만 내고, 가족과 친구 그리고 관광객이 보는 앞에서 키스를 했다. 그러자 우리 가족들은 물론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던 관광객들도 박수갈채를 보낸다.


이렇게 화창하고 좋은 날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단언컨대, 주위를 둘러봤을 때, 우리뿐만 아니라 정말 모두가 행복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시청에서 주관한 결혼식을 한 거라서 예식이 비교적 짧았다. 마지막으로 양쪽 아버님들이 증인으로 앞에 오셔서 혼인 증명서에 사인하고, 주례사와 같이 사진을 찍으니 예식이 끝났다.


식장을 한 시간 안되게 빌린 거라, 예식이 끝난 후에 포토그래퍼의 리드에 따라 회랑에서 결혼사진을 좀 더 찍고, 근처 오분 거리의 바닷가로 가서 구경도 할 겸 장소를 옮겼다.


소렌토 바다


끝내주는 바닷가 전경에 모두는 황홀함에 빠졌고, 우리는 정신없이 가족사진과 야외 촬영을 계속했다. 포토그래퍼 친구의 열정이 생각보다 대단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야외 촬영까지 마무리하고, 우리 모두 예약해 둔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자마자 화장실에서 드레스에서 세미 슈트로 갈아입었다. 


흙으로 더럽혀진 드레스를 고이 접어두고, 레몬첼로와 와인으로 입맛을 돋웠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애피타이저가 나왔고, 두 개의 메인 파스타를 먹고 세컨드토로 생선 튀김을 먹었다. 마무리로 달콤한 케이크와 커피를 마무리로 끝내주는 점심을 먹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만족한 얼굴이었다.



문제는 시차를 세게 겪고 있느라 졸면서도 먹고 계셨던 친정 식구들이었는데, 피곤한데도 시댁 식구들과 얘기하랴, 끝도 없이 나오는 음식 맛보랴 고생 좀 많이 하셨다. 어찌나 안쓰러워 보였는지, 남편과 나는 시댁의 배려로 멀리서 오신 부모님과 동생에게 신경이 더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시부모님은 우리가 그전에 시차로 고생한 걸 보셔서 간간히 우리 부모님이 괜찮으신지 여쭤보실 뿐 서운해하지 않으셔서 너무 감사했다.


세 시간의 만찬이 끝난 후 소화도 할 겸, 소렌토 시내를 살짝 걷다가 안녕을 고했다. 가기 전에 결혼식 손님들을 위한 선물(봄보니에레 (bomboniere))을 나눠 줬다. 보통 다른 커플들은 초콜릿 같은 간단한 선물만 하는데, 우리는 손님이 많지 않아서 한 명 한 명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여러 번 쓸 수 있는 에코백과 귀여운 미니소 열쇠고리, 컬러풀한 레가미(Legami) 스케줄러를 사람의 성격에 맞춰 색깔별로 다르게 줬더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받는 사람마다 너무 좋다고 해주니 덩달아 우리도 기뻤다.


그렇게 이탈리안 팀은 집으로 가고, 친정 식구들은 남아서 소렌토 구경을 했다. 골목 구석구석을 다니며 필요한 기념품을 사다 보니 해가 져서 서둘러 집에 갔다. 친정 식구 또한 너무 만족한 눈치라 날아갈 듯 기뻤다.


소렌토 아말피 도로는 해 질 녘에도 정말 아름다운 곳이지만, 안타깝게도 친정 식구들은 뒷좌석에서 모두 곯아떨어져버렸다. 가끔 동생이 억지로 일어나 "아름답다!"를 외쳤지만, 눈이 반 감긴 걸로 봐서 아마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집에 무사히 도착하고 잠깐 쉬었다.


근데 식을 너무 정신없이 하느라 몇 가지 빠진 게 있어서, 양쪽 직계 가족만 우리 집에 다시 초대했다. 남편이 급하게 결혼 케이크를 만드는 동안, 나는 집에서 어떤 피로연을 할지 가족들에게 설명하느라 정신없었다.


먼저 친정 식구들이 멀리서부터 가져온 한국, 캐나다, 독일 기념품들을 시댁 식구들에게 차례대로 나눠 드렸다. 모두 활짝 웃으며 너무 좋아했다. 이 좋은 분위기 이어서, 미리 준비해 둔 예물 아닌 것 같은 예물을 들고 와서 양쪽 부모님께 드렸다. 아버님들은 시계, 어머님들은 액세서리로 샀는데, 다행히 양쪽 부모님 모두 너무 좋아해 주셨다. 특히, 우리가 진심을 다해 쓴 편지를 읽고 네 분 다 눈물을 글썽이셨다.


그리고 마침내 케이크가 완성되었고, 커팅식을 하기 전에 우리가 열심히 연습해 둔 서약을 가족 앞에서 읽었다. 나는 이탈리아어로 읽고, 남편은 한국어로 읽었다. 완벽한 발음은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 모두가 나와 남편을 꽤나 사랑스럽게 봐주셨다.


그러고 케이크를 자르고 먹으면서 점심에는 미처 못한 얘기를 했다. 다행히 서로 좀 친해진 분위기였다. 그렇게 케이크를 먹자마자, 우리는 조심스럽게 모두에게 마지막으로 동네 구경을 제안했다.


동네 구경하고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부모님은 우리가 잘 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셨다. 이 길이 우리가 다 같이 걷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나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코를 훌쩍이며 걸으니까 엄마랑 아빠는 내 손을 붙잡으셨고, 시댁은 걱정되는 얼굴로 안녕을 고했다. 그렇게 친정 식구들은 다시 우리 집에 도착해서 마지막 만찬으로 점심때 먹고 남은 음식을 오븐에 덥혀서 식탁에서 야무지게 먹었다. 친정 식구들 모두 하나같이 이구동성으로 이탈리아 음식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 이제 알겠다면서, 건강하고 맛있는데 짜지 않아서 너무 좋다고 하셨다.


갈 채비를 하고 침대에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니까 벌써 공항에 모셔다 드릴 시간이었다. 이른 새벽에 공항 가는 가는 길이 참 너무 짧았다. 나는 슬픔을 감추고 조심해서 가시라고 배웅해 드렸다. 


다시 올라 탄 차에는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분명 여러 사람이 있던 흔적은 있었는데, 그들의 온기는 더 이상 없었다. 


우리 둘 다 고요함을 애써 무시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전 날 저녁을 스킵하는 바람에 너무 배가 고파 부모님이 사주신 가락국수를 먹으면서 마음과 배의 허기를 달랬다. 그렇게 억지로 다시 잠을 청했다.


자고 일어나자마자 시가에 갔다. 그동안 너무 감사해서 다 같이 뭐라도 하고 싶었는데, 의외로 다들 우리 만큼 힘들었는지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쉬자고 하셨다. 시부모님 친구분들이 축하를 많이 해주셔서 그들을 위한 간단한 선물을 준비하고, 양 쪽 친인척분들께 결혼했다고 인사를 드리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꿈같았던 식을 뒤로 하고,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찬찬히 돌아왔다.




다행인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결혼식을 너무 빨리 해버리는 바람에, 아직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로 결혼증명서가 도착하지 않아서 거주 체류증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제발 순탄하게 잘 통과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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