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반복하는 사람들을 위해
나는 인생을 그렇게 치열하지 않게 살았다. 무엇을 쟁취하기 위해 목숨을 걸 듯 열심히 해본 적도 없다. 학생 때 보는 시험도, 공인중개사 시험도, 개발자가 되기 위한 공부도, 회사에서 필요한 기술도, 그렇다고 정치적인 신념, 가족에 대한 사랑까지. 맹렬히 원했지만, 금방 포기하거나 좌절했다. 시험 공부를 하면 다른 목표가 더 반짝여 보였다. 기술을 배울 땐 다른 기술이 더 밥벌이가 좋아보였다. 목표는 괜찮아 보였지만 걷는 내내 꼭대기까지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인생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고, 흘러가며 만나는 변곡점마다 나름 특별히 빼먹지만 않을 정도로 성실하게 살아 온 것 같다. 모든 것을 바쳐 집중하며 살아본 적은 없었다.
나는 나쁘지 않은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인생을 지켜보는 주변인(특히 엄마)은 상당히 곤란해했다. 무엇하나 제대로 성취하지 못한다. 쉽게 질려한다. 뭐 하나로 끝장을 내보려 하지 않는다. 등등의 평가를 주로 받아왔다.
타인은 나와는 내 인생을 다르게 보는 듯 했다. 하지만 할 말이 주로 없었다.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 변곡점마다 반성했지만 내 천성이 그러해서 그런지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여전히 치열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글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가끔 본인의 인생을 위로 해주는 글을 만나게 된다. 그 글은 어마어마해서 나의 인생을 지탱할 정도로 강력하다. 나는 그 글은 존경하는 채사장 저서,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에서 발견했다.
나도 인생의 모든 것을 한 가지에 쏟아 부어야 했어야만 했던 때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쏟아 부어야 할 것만 '같은' 때가 있었다.
당시에는 다른 것에 눈을 돌리고 한 눈을 팔면 안될 거라 생각했던 순간이 참 많았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들이었다. 이게 잘 되면 이것으로 평생 밥벌어 먹고 살 수 있겠구나 싶었던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내 모든 것을 온전히 바쳐야 했지만, 나는 성실하지 못 한 사람답게 묵묵히 적당히 해왔다.
뜻하는 결과를 모조리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나는 다른 것을 탓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결국 나의 책임이다. 놀러가자는 애인, 친구, 가족을 뿌리치지 않았고 재미있어 보이는 영화, 드라마를 마다 하지 않았다. 새롭게 보이는 인생 경로를 더욱 흥미롭게 보았다.
실패한 이유 사실 잘 알고 있다. 진정으로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적이 없다.
나도 본 적이 있다.
자신이 목표로 삼은 일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열정적인 사람들. 한가지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 목표는 간단했고 그들의 선택도 명쾌했다. 이들은 확실히 분명해 보이는 것을 선택하고 집중한다. 그들은 의심하지 않고 확신에 차며 열심히 한다.
하지만 세계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이들이 선택했던 분명했던 밥벌이는 급변하는 시대 탓에 분명해지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천재가 아닌 탓인지 성과를 보기에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려버린 경우도 있었다. 한가지에 열중하기 위해 또 다른 중요한 것을 놓쳐버린 경우도 있었다. 목표를 방해하는 타인으로 좌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큰 자본으로 인해 엄청난 방해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본인 내의 문제 등으로 맞지 않는 다는 걸 깨닫는 경우도 있었다.
정말 한가지에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다른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선택을 하지 못한다. 그저 그 길이 잘 못됨을 알아도 꾸준히 해나간다. 괴롭더라도 그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나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실패한다. 그리고 그 실패의 충격은 실패가 익숙한 사람과는 결이 다르다. 세상은 한가지의 전략으로 덤벼드는 사람에게 정복될 정도로 만만치 않다.
월급이 모자라면 부업을 알아보아야 하고, 부업이 모자라다면 투자를 알아봐야 한다. 투자가 아니라면 사업을 해야 하고, 사업이 아니라면 또 다른 방식의 재테크라도 해야 한다.
취직을 위한 기술을 공부하다 다른 기술이 더욱 매력적인 것 처럼 보인다면 어서 찍어 맛이라도 봐야한다. 세상은 한가지만 잘하는 장인이 성공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거나 없다.
반면에,
나는 내 인지에 닿은 모든 것을 신경 써주어야 했다.
매 중요한 순간에 애인, 친구, 가족과 놀러도 가야 했고. 나의 감각을 위해 오락과 미디어도 아낌없이 받아들였다. 온갖 뉴스도 꼬박꼬박 봤다. 악기도 배웠다. 온갖 취미를 가졌었고. 잔기술도 정말 많이 찍먹했다. 나름 지금 생각해보면 현실의 경험이 풍부해지고 세계의 복잡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세상의 지식과 지혜를 내가 아는 바에 한해서는 연결지을 수 있게 되었다.
따라오는 다양하고 엄청난 실패.
하지만 적당하게 살아지는 마법과 같은 것이 삶이었다. 성공도 아니지만 실패에 허덕이는 비극은 없었다. 술을 마시고 헤롱헤롱하며 괴로움으로 밤을 보낸 적은 있지만 일주일을 넘기진 않았다. 실패가 익숙해졌고, 실패했으면 다른 길을 찾는 것이 빨랐다. 그 다른 길조차 끝을 보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길로 적당히 살아졌다. 어쨋거나 이게 아니다 싶으면 잘 돌아섰다.
나는 실패한 적이 없다. 그저 작동하지 않는 10,000가지 방법을 발견했을 뿐이다.
토마스 에디슨 (Thomas Edison)
학교 공부를 하다 적성에 문제가 있는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워낙 적당히 한 탓에 다른 것이 눈에 참 많이 들어왔다.
식물을 키웠다. 식물을 키워다 팔며 용돈 벌이를 했다. 적당히 판을 키우다 접었다.
이게 아닌 것 같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밥벌이를 위해 알바를 했다.
알바를 하다보니 적당한 기회가 보여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새우를 키웠다. 새우를 키워다 팔며 용돈 벌이를 했다. 적당히 판을 키우려다 접었다.
운좋게 번듯한 회사를 다녔다.
회사생활이 끔찍해서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퇴사하고 알바를 했다.
알바를 그래도 열심히 했는지 그 회사의 사무직에 스카웃되었다.
그러다 세상이 개발자로 떠들썩하기에 퇴사하고 개발공부도 했다.
원체 레드오션이 된 분야인 탓에 성공하지 못하고 그 중소기업에 다시 취직했다.
중소기업은 망해버렸고 어쩌다보니 그 곳에서 파생된 사업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사업도 하게 되더라.
어쩌다보니 괜찮은 규모의 업체 대표이사가 되어있었다.
(이 글을 적기 전엔 매 변곡점마다 스토리가 상당해 얼마나 글이 길어질까 싶었다. 막상 적어보니 별거 없다란 생각이 든다. 인생 참 별거 없다더니 진짜 별거 없다. )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은 이놈이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싶을 것 같다.
우선 열심히 살아오시면서 한 꿈을 바라보고 성공한 적지 않은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대단합니다. 존경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많은 분들께 나는 꼭 전하고 싶었다. 이렇게 계속 실패하는 분들께. 이렇게 집중하지 못하는 분들께. 계속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와 중도포기하시는 분들께. 그런 행위가 반복되어 마음 속에 부채감이 쌓여있을 분들께.
당신도 무언가를 목표했을 것을 안다. 중간에 잘 못된 길을 선택했구나 생각을 수도 없이 한 것을 안다. 그래도 당신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쏟아붓지 않았던 덕분에 계속 그 길을 선택할 것인지, 쉴 것인지, 다른 길로 건너 갈 것인지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사람은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 없다.
인생은 항상 플랜 B가 있다. 플랜 C도 있고 D도 있다. 들으면 듣는 대로, 보면 보는 대로 플랜 XYZ까지 있다. 모든 플랜은 먹고 사는데에 지장이 없다. 힘들 순 있었지만.
특정 분야에 엄청난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인생 주변을 둘러보며 걷길 바란다. 세상엔 무엇이 있나. 또 무슨 소식이 있나. 다른 사람들은 뭘로 밥을 벌어먹고 사나. 저건 왜 저렇게 재미있어 보이나. 등등.
그리고 명심해야 한다. 이것은 금세 포기하는 것,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신중히 선택하는 능력이란 것 이다. 이 능력은 다양한 경험이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재빨리 다른 경로로 틀 수 있을만큼 다양한 것을 보고 알아야 한다. 눈을 최대한 넓게 떠야 안다.
당신께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하나의 전문직을 가져라.’,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하라.’, ‘언제나 노력하고 나태해지지말라.’ 하고 말하는 이들을 경계하라. 이들은 이 것 밖에 모르는 또 다른 실패자의 조언이거나 운좋았던 그 분야의 천재일 뿐이다.
세상이 나에게 골라보라며 펼쳐주는 것들. 진로, 직업, 사업, 종교, 신념, 목표, 미래. 세상은 단 한 번도 당신에게 단 한가지만을 골라 그것에만 매진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당신은 수험생이 되기 위해, 취준생이 되기 위해, 노동자가 되기 위해,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불교도가 되기 위해, 한국인이 되기 위해, 여자가 되고 남자가 되기 위해, 부모가 되고 자녀가 되기 위해, 이념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 관습과 윤리에 순종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당신 앞에 세상은 하나의 좁은 길이 아니라 들판처럼 열려 있고, 당신이 보아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어딘가의 목표점이 아니라 지금 딛고 서 있는 그 들판이다.
발아래 풀꽃들과 주위의 나비들과 시원해진 바람과 낯선 풍경들.
이제 여행자의 눈으로 그것들을 볼 시간이다.
채사장 저서,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