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대감에 대하여

by Spring street

TCI 라는 검사를 와이프를 통해 알고 테스트를 진행했다. 심리학, 정신병리학에서 그나마 신뢰하는 자료로서 활용된다고 하던데, 그냥 여러가지 항목을 물어보고 내 성향에 대해 간단한 검사 결과를 제시한다.


와이프와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나타내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는 '연대'감 이었다.


와이프는 연대감이 백분위 0, (100명의 인간을 불러놓으면 연대감을 느끼는 순위 100등)

나는 연대감이 백분위 100, (100명의 인간을 불러놓으면 연대감을 느끼는 순위 1등)


물론 연대감을 느끼는 것이 좋은것이냐 아니느냐 하는 가치 평가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의 연대감은 쓸모없는 정도로 정신적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질문지 중 이 세상과 나와의 어떤 연결을 강하게 느끼느냐 하는 항목이 있는데


여기서부터 오늘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나는 인간찬가적 장르의 작품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인간으로 태어남에 감사함을 느끼고, 인간으로 살아감에 자부심을 느낀다.

쌓아올려온 역사와 문화, 수많은 개개인의 성공과 실패, 경험이 쌓여있음에 감사하다.


지금 내가 이렇게 편하게 앉아 컴퓨터 앞에서 목숨의 위협없이 글을 쓰는데 에너지 낭비를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역사가 최선은 아니겠지만, 지금 나의 삶을 만족하는 만큼의 딱 그것이라 생각한다.


가령, 스마트폰을 쓰고 있을 때도 말이다.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기계가 나의 손바닥에 놓이기까지, 그 안에는 인류가 쌓아온 수천년의 열망과 투장이 압축되어 있을 것이다. 인간이 가진 '알고싶다'는 욕망과 '소통하고 싶다'는 의지가 만들어낸 결정체다.

이 속에는 무수한 서사가 있을텐데,


'나를 위해서건 그렇지 않건 혜택을 누리는 건 동일하기 때문에'


인류가 신의 영역이라 여겼던 시각적 기억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위해 시작한 연구였을 것이다. 빛을 잡아내 숫자로 변화시켜보겠다며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벨 연구소의 과학자가 만든 이미지 센서. 물론 그들은 이 기술이 이미지센서에 쓰일지 몰랐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혜택을 모두 갖고 있다. 더이상 망자의 얼굴, 지나간 풍경을 기억으로만 흐릿하게 가지다 잊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반도체 칩 역시 사소하지만 위대한 발상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거기에 고든무어의 예언 '반도체의 집적도가 2년마다 두배로 늘어날 것'는 예언이 아니라 인류가 스스로에게 건 최면이자 약속이었다. 매년 "이제는 물리적으로 더 줄이는 게 불가능하다"는 벽에 부딪히지만 전세계 공학자들은 기어이 새로운 기술을 찾아내어 60년 넘게 이 약속을 지켜왔다. 덕분에 손바닥 안에 들어가는 휴대폰의 두뇌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소재의 역사는 정말 인간이란 참 지독하구나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자연이 숨겨놓은 비밀번호를 인간이 기어이 알아내는 과정이 얼마나 징글징글한지. 그 속에 들어간 노력은 참혹하리마치 아름답다. 19세기 나올레옹 3세는 본은인 금식기를 쓰고 귀한 손님에게만 알루미늄 수저를 내주었다고 한다. 알루미늄을 추출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금값보다 훨씬 비쌋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대 청년이 창고에서 전기로 분해하여 알루미늄을 저렴하게 대량으로 뽑는 방법을 찾아내고 사치품에서 문명을 지탱하는 실용적인 소재가 되었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서사가 담긴 스마트폰인가 싶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물건들 하나하나에 문명의 역사, 인류가 쌓아올린 지식과 경험의 가치가 올려져있다란 생각에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그렇기에 연대한다. 얼굴만 보면 알 수 없는 사람들, 글만 봐도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다. 지하철에 탄 꾀죄죄한 아저씨는 물리학 교수님이었고, 편의점에 담배와 술을 사간 불량해 보이는 아줌마는 의사선생님이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전장에서 각자의 서사를 집필하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무표정한 얼굴 뒤에는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 지독한 가난을 이겨낸 자수성가형 사업가가, 혹은 사랑에 아파하며 밤을 지새운 로맨티스트가 숨어 있다.


이들이 모여 스마트폰을 만들고, 법을 세우고, 문화를 일구며, 서로가 서로에게 혜택이 되는 거대한 그물을 짠다. 내가 알루미늄을 추출하는 법을 몰라도 가벼운 스마트폰을 쥘 수 있는 건, 누군가 이름 모를 이가 자기 생의 에너지를 그곳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지독한 연대인가.


내가 느끼는 이 '쓸모없는 연대감'은 어쩌면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여기까지 버텨온 근원적인 힘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얼굴도 모른 채 혜택을 주고받으며, 앞서 간 자가 남긴 지식의 토대 위에 다음 세대가 집을 짓는 이 거대한 릴레이. 그 대열에 나라는 인간 한 조각이 끼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기꺼이 인류라는 종(種)의 광팬이 되기로 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반짝이는 수억 개의 픽셀만큼이나, 세상 모든 이들의 삶이 각자의 빛을 내고 있음을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인간을 찬미한다. 나의 유약함을 알고, 타인의 위대함을 존경하며, 이 찬란한 문명 속에서 함께 숨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 삶은 이미 충분히 목적을 달성했다.

인간이라서 참 다행이다. 그리고 당신이 거기 있어서 참 좋다.


마지막으로, 연대감 백분위 0이라는 숫자를 받아 든 나의 아내에게 짧은 고백을 남기고 싶다.


당신은 가끔 이 세상과 스스로가 분리되어 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타인의 고통에 일일이 휘둘리지 않고, 세상의 거대한 흐름보다 내 눈앞의 고요와 실질적인 삶에 집중하는 당신의 그 담백함이 때로는 외로워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연대감이 100인 내가 실체 없는 인류애에 취해 정작 곁에 있는 당신의 쓸쓸함을 놓칠 때, 연대감 0인 당신은 가장 냉정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내 곁을 지켰다는 것을. 세상 모든 이를 사랑하느라 에너지를 탕진하는 나를 대신해, 당신은 오직 나라는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며 나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주었다.


나 같은 사람이 인류라는 거대한 숲을 보며 감탄할 때, 당신은 내 발밑의 흙을 단단하게 다져주는 사람이다.

당신의 그 '연대하지 않음' 덕분에 나는 비로소 고립되지 않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 용기를 얻는다.


그러니 연대감이 낮다고 해서 스스로를 차가운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은 인류 전체와 연결되는 대신, 가장 가까운 한 인간을 온전하게 품어주는 쪽을 선택했을 뿐이니까.


세상을 사랑하는 건 내가 할 테니, 당신은 지금처럼 당신의 자리를 지켜주면 좋겠다. 그게 바로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가장 완벽한 인간찬가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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