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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Jun 26. 2020

아들이란 이름으로

잠시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아니 외면했었다. 지난날이 힘들고 지치더라도 애써 외면하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 집중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렇게 지내다 보니 지난 과거의 힘겨움과 생각은 기억 속에서 희미한 잔상으로 잊혀갔다. 그렇게 하루 이틀,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이 지나고, 또다시 월요일이 지났다. 방금 1초가 60초가 되고 1분이 60분이 되고 1시간이 24시간이 되면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 시간과 함께 몸이 잠들고 일어나는 일상이 지나갔다. 그렇게 지금이 지나갔다.


누구에게나 시간이라는 단어는 과거, 현재, 미래를 기억하게 한다. 하지만 나에게 과거는 없고, 현재도 없다. 당장 지금이라는 단어만 있을 뿐이다. 과거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이 정의하고 말하는 그 시간이라는 단어는 나에겐 오로지 지금이다. 모든 걸 버리고 당장 생각나는 질문 하나. 지금이 얼마나 소중한가?


시간이 멈춘다는 말이 있다. 지금 내 심정은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가는 상투적인 말에서 정반대로 시간이란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그럴 일은 절대로 없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과거, 현재, 미래를 떠나 지금이 정지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진 한 장으로 오래 남았으면 한다. 그게 전부다. 그것 말고는 더 바라는 게 없다. 


눈은 감으면 또 다른 아침이 밝아 올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죽은 자의 삶이고 죽은 자의 시간이 될 것이다. 지금이라는 시간의 잣대는 죽은 자의 소유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살아있다. 그 의미는 오장육부가 지금의 전과 후를 넘어가며 반복적으로 살고 죽는 것일 테다. 그런 와중에 순간 정지하는 하나의 개체는 죽음이라는 단어로 정의되겠지. 그 순간이 누구에게는 일상이고 그 수간이 누구에게는 참담한 지금이 될 것이다.


착잡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지금이 소중한 가운데 순간순간 과거라는 단어로 변형되는 이 시점에서도 다가올 지금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후회스러운 마음 한편이 아련하게 떨린다. 예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눈 앞에 보일 때가 정말 처절할 정도로 힘겹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지금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옥에 간 사형수가 맞이하는 창살에 맺힌 아침이슬과 다를게 무엇이 있을까?


지금 전까지만 해도 시간을 외면했다. 애써 외면하다 보면 좋았다. 모르는 척하면 더욱 좋았다. 하지만, 지금이라는 시간은 자꾸만 나를 재촉한다. 마음은 정지된 시간이 되고, 몸은 과거와 미래로 달려 나아간다. 진정 마음은 정지된 시계추가 되어 있는데, 몸은 움직이는 시계추에 떠밀려 나아가야 한다. 이게 말이 되는가. 지금이라는 그 녀석은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다. 나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내 옆에 모두가 생각할 테다. 애써 외면하고 있던 내가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착잡하다.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오늘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멋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당당하게 서서 내 뒤가 아닌 앞에 있는 큰 어르신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렇게 잠시 아주 잠시 지금이라는 외면하게 된 시간이 행복이라는 단어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물리적이고 공간적으로 또한 시간적으로 아직은 그 지금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문제는 그 지금이 곧 다가올 것이라는 두려운 예감이다. 더욱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경험적 기억이 더욱 내 마음을 멍들게 한다. 어느 순간에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처음은 아니잖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라는 녀석은 엄청 빨리 다가오는 것 같다. 잠시 외면했던 그 녀석이 다가올수록 어떤 마음으로 방어막을 준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모르는 척, 아닌 척, 외면해버리면 그만이지.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아들이란 이름으로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두 끈에 우리는 같은 시간이라는 끈 위에 함께 가고 있지 않은가. 끈이 짧아지고 누군가는 먼저 그 끈을 놔야 한다. 이게  눈에 보이고 당연하다는 이치가 참 서글프다. 태어나는 순간이 지금을 바라보고 열심히 달려가는 게 아닌지 착잡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남은 것이 무엇인가?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되묻고 싶다.


지금은 그렇다. 지금은 소중하다. 잠시 아니 잊고 싶었던, 외면하고 싶었던 지금이 다가왔다. 이제 지금을 준비해야 한다. 준비라는 말 자체가 익숙하지 않다. 아직 다가오지 않고 애써 포기하는 모양이지만 눈 앞에 펼쳐질 지금을 뻔히 알기에 더욱 머리가 멍하다. 이제 곧 다가올 지금까지 도대체 난 뭘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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