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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Mar 08. 2019

향응 접대 없는 A대학병원

#격려의 마음만 감사히 받고 선물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허탈감을 느낀  있는가? 누군가 물어본다.  그 누군가는 YBC NEWS 보도자료에 올라온 내용이다.  


근절되지 않는 대형병원 '갑질' 경기도 A대학병원, 임대시설 업주에 부당한 횡포


최근 올라온 기사다. 자극적이다. 여기서 A대학병원은 내가 다니는 직장을 말한다. 처음 내용을 접할 때는 몰랐다. 그 대상 기관이 내 직장이라는 걸 알기까지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주 접하는 장소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간략히 요약된 내용은 이렇다.


A병원 카페 운영자 P 씨, 병원 측이 계약 연장 빌미로 온갖 '갑질'했다 주장

음식과 술 접대는 물론 병원 내 행사 시 찬조, 시설물 보조금, 명절 선물 등 요구

병원 측에 탄원서 제출했지만 아무 대답 듣지 못해,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

병원 측, "접대 사실은 인정, 임대 기간 종료 통보는 계약 기간 만료에 따른 정당 행위"


중요한 맥락은 두 가지다. P 씨의 고발과 부당한 향응 접대다. 카페 사장주장인 계약 기간 연장에 대한 부당성은 신고된 상황에서 그 적합성을 따로 따져 볼 문제다. 즉 기사에서 말한 갑질이라는 자극적 단어는 오버라고 생각한다. 나와 같은 직원에게는 고발 따위는 중요하 않다. 사실 관심 밖이다. 진정 관심은 부당한 향응 접대다.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분명히 받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근거 자료도 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3년 10월부터 2017년 4월까지 선물, 식사, 술자리, 마사지와 같은 각종 접대를 위해 지출된 명세서가 그것이다. 금액은 총 13,994,000원이다. 이 금액은 보도자료에 나와 있다. 정확한 금액이 아닐 수도 있지만, 향응 접대가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지출 명세서가 이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김영란법'이라고 말하는 '청탁 금지법'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청탁 금지법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약칭이다. 이 법률의 골자는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임직원, 학교 교직원 등이 일정 규모 이상의 (식사대접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으면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처벌하는 것이다.


나는 허탈하다. 향응 접대. 항상 원내에서 받은 교육에서 나오는 무서운 말. 조직 내 일개 직원이 이를 어기면 매우 곤란한 일이 발생할 것이다. 기사 내용은 내 가슴 깊은 곳에 <허탈감>이라는 스크래치를 또 한 번 새겨 주었다. 자주 이런 생채기가 많아지는 것은 내가 직장생활을 오래 한 것을 이야기해 준다. 또한 몸담고 있는 이 좋은 직장이 더럽혀지는 상황도 많이 보게 된 점도 그렇다. 안타깝다.


2003년, 특별한 소망이 없는 내게 입사 합격 소식이 왔다. 취직이라는 기쁨을 온몸으로 느끼며 출근했던 기억이 난다. 좋은 직장, 좋은  직원이 된 것이다. 정말 자랑스러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너무나도 뿌듯한 기분이었다. 대학병원이라는 자부심은 로비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장면을 연출해 주었다. 사실 사회 초년생 때는 출근 자체가 너무 좋았다.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다. 이 좋은 직장, 대학병원이라는 울타리에서 열심히 정말 열심히 하겠다는 애사심이 샘솟았다. 일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걸 다 씹어 먹을 자신감은 충만했다. 그래서 그런지 입사하고 나서 예전에 나와 같은 비정규직이 없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으로 노동조합에서 간부 활동 했다. 뿌듯했다. 작은 참여가 큰 결과로 나올 듯했다. 우쭐함도 있었다. 그래서 더욱더 열심히 했다. 율동, 풍물, 투쟁. 비정규직 철폐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외쳤다. 내 병원과 내 직장 동료 그리고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길 바래 서다. 너무나 작은 소망이었다. 이 좋은 직장에 오기까지 힘들었던 비정규직 생활을 누군가는 밟지 않고, 꽃 길만 걸어가길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능력과 노력이 부족했다. 죄송한 마음이 먼저 든다. 입사 때 느낀 행복은 복수노조, 직원 간 불신, 위계질서 등으로 무너진 지 오래다. 이런 내가 부끄럽다.


직장은 예전 입사 때보다 좋아졌다. 병원의 크기와 외관은 예전과 비교가 안된다. 직원수도 마찬가지다. 10년이 넘으면 강산도 변하는데 곧 20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는 당연 변화가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런 <허탈감>이 가슴 한편에 새겨질 때마다 입사했을 때 느낀 햇병아리와 같은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명감은 없어지고 분노만 남게 된다.  병원이라는 울타리에서는 워낙 다양한 직종이 존재한다.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의사, 행정 사원, 연구원, 간호사, 임상병리사, 전문간호사, 시설 직원 등 굉장히 다양하다. 일개 직원인 나에게 이런 <허탈감>을 안겨주는 기사는 내 인생에 있어 큰 영향을 주진 않는다. 남의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마음이 아프고 내 고향이 더럽혀지는 모습에 안타까울 뿐이다. '향응 접대를 받았으면 분명 누군가 처벌을 받겠지. 설마 그냥 넘어가면 어이없겠다.'라는 생각으로 마무리해 본다.



최근 읽 책 <숀 아처, '빅 포텐셜'>에서 조직에 관한 내용이 기억난다. 좋은 방향으로 조직을 이끌어가고 성공이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서는 경영진만의 능력은 부족하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작은 성공은 <스몰 포텐셜>이라고 부르고, 전체 조직의 성공은 <빅 포텐셜>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작은 성공보 함께 일구어 나아가는 조직의 성공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큰 성공을 위한 과정과 만족감은 결국 작은 성공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즉, 모든 사원은 최종 목표를 위한 경영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영진은 모든 사원에게 그 권한을 줄 필요가 있다. 동기부여와 만족감은 개인의 애사심과 직업적 사명감을 높여준다.


내가 적을 두고 있는 이곳에서 권한이란 무엇일까? 단 하나라고 생각한다. 환자 케어다. 꼭 환자만 보는 부서 혹은 직원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고 본다. 모든 직원이 환자를 보는 모든 행위가 이루어지는 병원이라는 구역에서 나름의 병원장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사측, 노측으로 나 말하며 편향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각자 직업적 소명과 애사심은 분명 존재한다. 자아의 정체성과 노동의 원천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모든 직원은 엄격한 잣대로 환자 케어에 전념해야 한다. 노동을 제공하고 직장이라는 이 좋은 공간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곳에서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부당한 일은 없어야 한다. 개개인은 병원의 얼굴이다. 환자는 우리를 보기 때문이다.


작은 긍정의 힘은 주위 모든 이에게 전달된다. 반대로 부정의 힘은 이보다 더 빠르게 전달된다. 사람은 긍정보다는 부정에 매우 자극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침 뉴스를 생각해 보라. 모든 TV 채널은 왜 전날에 발생한 사건/사고를 아침부터 그렇게 뉴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말하는가. 뉴스의 소재가 자극적일수록 사람들은 한 번이라도 더 보게 된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미디어는 매일 아침마다 우리에게 부정적인 힘을 주입시킨다. 어느 연구 결과는 말한다. 아침에 부정적인 뉴스를 접한 그룹 최대 약 8시간까지 부정적 심리가 지속된다고 보고 한 바 있다. 놀랍지 않은가? 이번 <허탈감>을 느끼게 해 준 내용 또한 마찬가지다. 분명 부정적인 힘과 그 이상의 무엇이 우리 모두에게 전달될 것이다. 좋은 직장에서 자신의 사명감이 줄어들고, 주위 동료와 환자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또한, 그나마 남은 잠재적 긍정이 조금씩 없어지는 게 아닌지. 생각해 본다.


모든 직원은  청탁 금지법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주위를 돌아보면 포스터가 심심치 않게 보일 것이다. 


격려의 마음만 감사히 받고 선물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이것만 지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분명 원인이 있다는 걸 말한다. 항은 반드시 명확히 분석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 부끄러운 자태를 그냥 조용히 미세먼지가 걷히듯 방임 또는 방종하거나 묵살하면 또 다른 부정적인 힘이 수백 명 혹은 우리 좋은 병원에 찾아오시는 환자에게 전달될 것이다.

우리는 자신과 환자 또는 보호자 모두에게 긍정의 힘을 전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약용의 목민심서(제2조 행장을 꾸림)에 나오는 글로 마무리하고 자 한다.


어리석은 자는 남들이 자기를 부러워하는 줄 생각하고 있지만, 부러워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도리어 미워할 줄 모른다. 자기 재산을 덜어다가 자기 명예마저 손상시키고, 게다가 남의 마음까지 사게 되니 또한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무릇 사치는 어리석은 자나 하는 일이다.


Ps. 혹시 경영자가 볼 수도 있어서 생각할 여지를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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