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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Feb 23. 2021

끄적끄적

일 잘하는 것이란

인사평가 결과가 나왔다. 진급하지 못했다. 애초부터 기대는 안 했다. 기대한 만큼 상심이 크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결과를 접하니 기분은 별로다.


과정보다 결과가 모든 걸 말해준다. 평소에 누가 잘하든 못하든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결론은 나의 인사평가가 별로라는 사실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 한다. 그만두지 않을 거면 그냥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로하는 후임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일에 대한 열정이 식어질 것 같다. 진급하지 못한 상심보다 더 무섭게 다가오는 감정은 이렇다.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었다. 이왕이면 눈에 보이도록 했어야 했다. 적당히 내 일만 했어야 했다. 시간을 쪼개며 나를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없었다. 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린다. 보상심리가 작동한다. 나도 별 수없는 직장인이다. 진급이 도대체 뭐라고 지난 과거의 열정을 되짚게 하는지 모르겠다. 나이가 먹어서 갈수록 열정이 식는 게 아니라 인사평가를 받을수록 식어가는 것 같다.


나는 일에 대한 열정이란 자부심과 전문성 그리고 솔선수범이라 생각한다. 후임들에게 본보기가 되기를 희망했고 그들도 잘 따라왔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진급을 못한 선임으로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희망 섞인 말과 행위는 결과에 묻혀 버렸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게 유감스럽다.


오늘도 첫 차를 타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불을 켜고 컴퓨터를 켰다. 장비도 켰다. 커피머신에 물을 채웠다.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메일을 확인했다. 오늘 할 일을 점검했다. 출근 전 한 시간은 오로지 나의 세계다. 미리 프린트해 둔 논문도 읽어본다. 짬이 나서 강의 녹화도 한다.


동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이지만 오늘따라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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