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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Mar 12. 2019

그 좋던 열정 어디 갔어!

# 등잔 밑이 어둡다.

모두가 퇴근한 시간,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다. 아주 조용하다. 침묵 속 작은 공간에 뭉친 어깨를 털어낸다. 무거운 마음으로 오늘 일과를 정리한다. 빨리 일어나고 싶다. 일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메일을 확인한다. 어디선가 많이 본 영어 메시지가 보였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열어보았다.


Accepted


이 단어 하나만 보였다. 이거 된 건가? 정말? 이게 현실이야? 너무나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예스, 예스, 예~스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는 나의 목소리만 메아리처럼 공허한 공간에 작은 울림으로 돌아왔다.


2013년 6월, 지난 2년간의 고생과 기대와 기쁨이 한순간에 밀려오는 감정이다. 눈물이 날 지경이다. 사실 눈물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분명 감격에 겨운 기쁨과 환희를 느꼈다. 힘들게 실험하고 진행해온 연구의 결과인 논문이 유명한 해외 저널에 게재가 된 것이다. 정말 그때 그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나와의 싸움이었다.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노력의 결실이었다. 작은 의문에서 시작하여 오로지 <제대로 연구를 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이겨냈다. 힘들기도 즐겁기도 한 과정 속에 많은 것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나는 2013년 6월을 기억한다.




2019년 3월, 아침부터 만원 전철에 올라탔다. 지금부터 약 2시간을 가야 한다. 2주 차 수업을 위해 잠시 자료를 본다. 출근하는 인파에 제대로 서 있기도 자료를 읽기도 힘들다. 그렇게 졸린 눈을 비비며 여러 가지 상념에 빠진다. '오늘 수업은 어떻게 할까.' 가는 길이 지루해질 시점에 드디어 인파가 줄었다는 알았다. 자리에 앉았다. 잠시 여유를 느껴도 될 것 같다. 읽던 책을 펼쳐 본다.


미국 코미디언이며 전문작가, 방송가인 앤디 앤드루스의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읽을수록 주옥같은 글을 발견하게 된다.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이 책에서는 소설 속에 위대한 인물이 등장하고, 저자는 그들의 입을 통해 말한다.

그래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열정은 마음의 선물입니다. 열정은 멋진 꿈을 가진 사람을 도와주는 힘입니다. 열정은 확신을 낳고 평범한 사람을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당신에게 열정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그 열정에 감화되어 당신의 꿈을 실현하는 일에 도움을 줍니다. 열정만 있으면 이 세상에서 극복하지 못할 어려움은 없습니다. 그 누구도 당신의 행동을 멈추지 못합니다!


<그 좋던 열정 어디 갔어!>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예전에 있던 열정이 남아있는지 궁금해졌다.

부드럽고 빠르게 달려가는 전철 안에서 잠시 눈을 감아본다. 열정이란 게 보이는 거야? 아니잖아. 손에 잡히지도 않는데 뭐가 있다고 찾으려고 애를 쓰나. 왜?


사실 열정은 그 실체가 없다. 즉 상황에 따라 그 단어는 의미가 달라진다. 예컨대 연애할 때는 결혼이 열정이 된다. 얼마나 열심히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온몸 받쳐 함께 한 지붕에서 살려고 노력했던가.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열정이 대단하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또한 유치원생 아들과 사랑스러운 아내와 함께 캠핑은 왜 그렇게 열심히 다녔던가. 하루가 멀다고 매일 밖에서 노숙 아닌 노숙을 했다. 이것도 열정이다. 몇 개월 동안 쉼 없이 주말마다 캠핑을 다니는 것도 웬만한 열정이 아니면 힘들다. 논문도 마찬가지다. 남들만큼만 하면 될 것이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렇게 남이 시키지도 않는 연구에 빠져 논문 쓰기에 밤샘을 하며 고민했던가. 이 또한 열정이 아니면 쉽게 이루기 힘든 결과다. 돌이켜보면 그 실체 없는 열정은 내게 많은 걸 이루게 해 줬다.


열정은 수시로 변하고 창조된다.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마음은 다르게 느껴진다. 특히 마음이 그렇다. 나이가 먹어서 혹은 호르몬 때문인지 모른다. 그냥 느끼는 걸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매일 변하는 마음만큼이나 열정 또한 변한다. 전철안 좋은 구석에서 지금 내게는 '좋은 수업'이 생각난다. 이것도 열정이다. 그렇지 않다면 마음속 전철은 이미 지옥철로 변했을 것이다. 왕복 약 4시간을 투자하여 '수업'이라는 열정을 가지고 또 다른 무엇을 이룰지 궁금해하는 나를 본다. 그렇다. 오늘 아침, 내 작은 열정을 책 한 권에서 찾게 된다.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있다. 자기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본다. 무엇인가 가까운 곳에서 문득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시시각각 혼란스러운 마음과 감정을 열정으로 변화시킬 수 없을까? 답은 자극이라 생각한다. 책 한 권의 작은 글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누군가의 질책도 그중 하나다. 달콤한 조언도 좋지만 누군가의 질책은 분노와 함께 강한 자극으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소심하게 자존감을 내려놓을 필요는 없다. 객관적인 부족함 혹은 기대감을 잘 파악하는 것도 남의 질책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한 가지는 스스로의 질문과 자책도 있다. 가령 오늘과 같이 <그 좋던 열정 어디 갔어!> 스스로 외쳐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분명 나 자신의 대담함과 자랑스러움을 찾게 될 것이다.  그 좋은 열정은 분명 자기 자신이 알 것이다. 마음이 따라가는 대로 고민하지 말고 열정으로 변이 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열정을 승화하기 위해서는 달콤함보다는 외로움처럼 힘듦을 즐겨야 한다. 사실 이겨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무슨 좋은 결과를 바라는가. 결과만큼 고통이 수반된다. 이를 이겨내야 한다. 연구를, 논문을, 수업을 생각하며 과거 내가 다짐한 말이 기억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노력한 만큼 나온다. 그냥 믿자.


2013년 6월, 나는 경험하고 느꼈고 즐겼다. 그렇지만 그 준비와 과정은 엄청난 외로움과 고통이 뒤따랐다. 이겨내는 게 정답이다. 누가 대신 해결 해 주지 않는다.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김난도 교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저서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미래가 이끄는 삶, 꿈이 이끄는 삶, 열망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열망을 뜻하는 영단어 'passion'은 아픔이라는 의미의 'passio'를 어원으로 한다고 한다. 그렇다. 열망에는 아픔이 따른다. 그 아픔이란 눈앞에 당장 보이는 달콤함을 미래의 꿈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데서 온다.




교실이라는 이름의 작은 공간에 수십 명이 앉아있다. 모든 시선은 내게로 몰려있다. 속으로 생각한다.

그 좋던 열정 지금 하자. 쓸데없는 생각 말고.


아무것도 아닌 마음가짐에서 나의 목소리와 몸짓은 힘이 생기고 조금의 흐트러짐도 줄어든다.

열정은 변한다. 수시로 변한다. 잘 잡아야 한다.




어깨에 짓눌린 가방은 집에 가는 여정에 더욱 무게감이 느껴진다. 잠시 외출, 직장동료의 얼굴이 그려진다. 핸드폰에 남겨진 여럿 메시지를 확인해 본다. 지금 그들은 힘들다. 일에 지쳐 허덕이는 힘없고 몸과 마음이 망신창이가 된 직장인 그것이다. 여기서 그것은 너무 지쳐있는 무생물과 같다. 그들의 지친 어깨에 조그마한 열정을 찾아주고 싶다.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숨겨진 그들의 열정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야 한다. 또 한 번의 <삼겹살과 소주 한 잔>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들에게 힘이 되어줄 자신만의 열정을 찾도록 도와야겠다. 그래야 지친 어깨를 풀 수 있지 않을까. 분명 그들의 열정은 숨겨져 있다.

그들도 나처럼 아니, 나와 함께 <그 좋던 열정 어디 갔어!>라고 외치며 답을 찾아야겠다.


-전철 안 작은 구석에 앉아 있는 수천 명 중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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