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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Mar 02. 2021

끄적끄적

좀비

죽었던 녀석이 살아 돌아왔다. 놀랍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된다. 언제 금방 죽을지도 모른다. 

어디서 찾았는지 모르지만 딸은 이 녀석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아빠~ 이건 무전기야. 또 이렇게 열면 전화기가 되는 거야~ 알았지?”


호기심으로 오래된 상자와 함께 충전기를 찾았다. 충전기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눈앞에 불빛 보였다. 옆에 있던 딸은 무전기가 살아난걸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 보았던 스마트폰과 전혀 나른 독특하고 처음 보는 유물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14년 혹은 15년 전이라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할지 모르겠다.


이 물건은 이미 끝났다. 생명이 없다는 걸 알기에 장난감처럼 다뤘다. 나른한 오후 배가 불러 바닥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때론 여름이면 시원한 물속에서 헤엄도 쳤다. 아이들과 함께 놀다 보면 어느새 장난감 바구니에 인형들과 꿈나라로 갔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났다. 커다란 짐가방에 커다란 자동차를 타고 낯선 곳에 이사를 가기도 했다. 이 녀석은 쓸모없는 녀석에 불과했다.


메뉴를 눌러 사진을 검색했다. 보인다. 정말 보인다. 15년 전 나의 모습이 보였다. 14년 전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내가 보였다. 14년 전 어깨동무를 하며 웃는 나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잠시 아주 잠시. 그때로 돌아갔다. 마음만 그때로 돌아갔다.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는 그 녀석이 짠하게 느껴졌다. 상처 받고 눈물 흘리고 참아준 녀석이 대단했다. 14년 혹은 15년 동안 옆에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너무 놀랍다. 옆에 있는 아이들도 없던 그 시절, 아내와 14년을 함께할 줄 꿈에도 몰랐던 그때 그 감정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 녀석도 대단하지만 옆에서 무전기라고 자기 꺼라고 우기는 딸과 바닥에 뒹굴뒹굴거리는 아들도 대단했다. 함께 살아온 아내는 신처럼 보였다.


오늘을 시작하고 끝내면 하루가 간다. 이틀이 가고 또 일 년이 지나간다. 또 다른 일 년이 오면 우리는 오늘처럼 시작하고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보면 이 녀석처럼 힘도 없고 살았는지 죽었는지 천덕꾸러기처럼 풀 죽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처럼 대단한 존재로 남아 있을 것이란 기대는 이 녀석을 다시 보며 다짐해 본다.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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