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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Mar 31. 2019

건강과 돈 중에 무엇이 중요한가?

# 늦었는데 저녁 챙겨 먹어라.

점심시간이다. 복도에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직장 동료이자 선생님들이다. 모두 피켓 하나씩 들고 있다. 이미 아는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하나하나 읽어 본다. 내용을 하나로 함축해 보았다.


"8시간만 일하자."


주요 대상은 3교대 근무 간호사다. 그러나 피켓은 간호사가 들고 있지 않다. 정작 당사자는 관심이 있나? 지나가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충격이다. 관심 1도 없는 간호사가 대부분이다. 왜냐고 물어보면 하나 같이 이렇게 답한다.


너무 바쁘다. 일하는 것도 바빠 죽겠는데. 이런 거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우리는 일을 많이 하나? 찾아봤다.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연 2069시간으로 OECD 국가 중 1위 멕시코(2255시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미국은 1783시간으로 한국 근로자가 1시간 에 33.1달러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때 미국 근로자는 두배인 63.3달러다. 추가적으로 전국 보건의료산업 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 따르면 간호사는 시간 외 수당을 받지 못하는 이른바 '공짜 노동'이 70.6%, 43.3%는 휴게시간을 전혀 보상받지 못한다고 한다.


피켓 내용은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입장에서 합리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머릿속에 떠나질 않는 질문 하나가 있다.


기본 근로시간 8시간만 일하면 죄인가?


이와 관련된 기사가 있다. 관심 있는 사람은 읽어보길 바란다.

https://www.yna.co.kr/view/AKR20180320072000017   




아버지 몸은 망가졌다. 이미 끝났다. 아직 작은 불씨는 남아 있다. 긍정의 마음과 회복 가능성은 아직 있다. 그러나 망가진 몸은 좀처럼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돈과 시간 그리고 간절함이 필요하다.


담도암으로 입원 중인 아버지는 9년간 아파트 경비를 하셨다. 항상 새벽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에 귀가하신다. 아마도 2교대로 24시간을 근무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정확한 근로시간을 물어보고 싶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정확히 모르고 있는 나도 참 한심한 아들이다. 중요한 것은 출근 후 근무지에서 약 24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이다. 그에 비하면 내가 일하는 곳은 천국이다. 참 힘들게 일하셨다. 이미 몸과 마음이 망가진 아버지는 초췌한 얼굴로 침상에 앉아 조용히 말씀하셨다.


"작년 이맘때 일을 계속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그때 그만두고 실업 급여나 타 먹으면서 쉬운 일을 찾았어야 했는데."  


"경비업체도 외주라서 중간에 관리업체 사장 눈치 보랴. 같이 일하는 팀원들 관리하랴. 반장이라고 대충 할 수 있나. 완장을 찼으니 더 열심히 해야지. 내가 무슨... 10만 원 더 벌겠다고 4년 동안 반장을 했는지. 참…"


"주민들한테 시달리는 것도 모자라 이제 몸이 이모양인데. 회사에서는 언제 나오냐고만 하고 결근한다고 뭐라 하고. 나이 먹어서 남은 건 몸뚱이 하나뿐인데. 자식한테 짐만 주는구나."


아버지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허망'이라는 단어로 함축하여 현실을 분석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밤낮으로 일하고 또 일했는데 남은 건 병이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만 남아서 더욱 괴로워하시는 것 같다. 평소와 달라진 현실이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이제 남은 여생이 어느 정도 정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나 또한 허망하다. 겨우 60대 초반이다. 너무 젊다. 희망을 갖자.


"내 몸이 이제 그만 쉬라고 하나보다. 아들도 몸 생각하면서 일해라. 돈도 좋지만 몸 챙기면서 해라. 건강 잃으니 모든 게 허퉁하다." 간헐적으로 속 쓰림을 호소하며 말을 이어 갔다.


"경비도 너무 많이 하면 못써. 밤에 일하는 게 쉬운 게 아닌데. 여기 간호사도 힘들겠어. 맨날 환자 보는 것도 그렇고 잠도 못 자고 일하니. 남의 돈 버는 게 쉬운 게 아냐."


여동생이 생각난다. 지금은 소식만 듣고 있다. 몸은 만신창이다. 허리는 틀어지고 마른 몸으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 젊은 시절 여동생은 모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했다. 그때 동생이 힘들어하는 목소리가 기억난다. 3교대 근무 밤낮으로 일하고 정신 차리기 힘들어하는 모습 말이다. 새벽에 일하는 게 너무 싫고 몸이 축나서 몇 년 후 일을 그만두었다. 지금은 낮에 일하는 작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은 간호사다. 다시 생각해보면 말렸어야 했다. 몸도 약한데 그렇게 일하는 걸 몰랐다. 옆에서 신경도 못 쓴 오빠가 미안하다. 어디든 새벽에 일하는 건 쉬운 게 아니고 몸을 망치는 지름길인 것 같다.


"늙으면 그만 일해야지. 회사도 쓰다가 쓸모없으면 버리는 거지. 한 살이라도 젊은 사람 쓰지 늙으면 개만도 못한 취급당하기 십상인데. 주민들도 이상한 사람 많고. 늙으면 그만 일하고 쉬는 것도 현명한 거야. 손주들 용돈 몇 푼 더 벌라고 남들 것까지 하고 그랬으니 그래서 이 모양 이렇게 된 것 같아."  


"아버지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 아픈 원인이 밤낮으로 일하고 스트레스받고 화날 때 술로 풀고 잠도 못 자고 무리하게 생활해서 그런 것 같아. 술 한 잔해야 잠을 청할 수 있으니 그게 다 병으로 간 것 같아. 이게 원인이야. 이거 수술하면 낫기는 하냐?"


자세를 추스르며 이미 해가 넘어가고 밤이 깊어질 준비를 하는 창밖을 보며 내게 말하신다.


퇴근해야지. 늦었는데 집에 가서 저녁 챙겨 먹어라.


너도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잔업하겠지만, 피곤하고 지칠 때는 쉬면서 해라.




그 흔한 제주도 여행 한 번 못 갔다. 가족 여행이라고는 가까운 제부도에서 광어 매운탕이 전부다. 경치 구경이라고는 사계절마다 찾아오는 가족 생일날뿐이다. 그날이면 하늘 한 번 보고, 추운지 더운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손자와 손녀들 재롱떠는 모습에 미소 지으며 작은 식당에서 가족들과 식사하는 게 전부였다.


며칠 전 눈에 눈물이 맺힌 어머니의 한 말씀이 기억난다.


"광주에서 5.18 겪고 죽을 고비 넘기고 돈도 없어서 사북 탄광에서 그 고생했는데… 이렇게 자식들 키우고 손자 손녀들 용돈 준답시고 그 밤잠을 못 자면서 일했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냐. 우리는 참 불쌍한 세대야. 고생만 하다가 늙으면 천덕꾸러기 취급받고, 네 아버지 고생한 거는 기억해야 한다. 성질은 못 됐어도. 나는 다시 태어나면 네 아빠랑 다시는 같이 살고 싶지 않다."  




뭐든지 적당히 하는 게 좋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하는 게 참 어렵다. 욕심 때문이다. 누구나 그렇듯 내게도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 버리는 것이 어렵지만 필요하다. 그러나 말이 쉽지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만 생각하고 일하면 조직과 옆 동료에게 곤란해진다. 큰 맘먹고 내 마음대로 한다고 해도 '왕따'뿐만 아니라 '이상한 사람'으로 찍히는 건 시간문제다. 반대로 남 눈치 보며 모든 일을 다 도맡아서 하면 몸이 남아나질 않는다. 몸이 망가지면 직장이든 가정이든 모든 걸 잃게 된다. 나는 지금에서야 제대로 보고 느끼고 있다.


중간만 해도 다행이다. 보통으로 살아가는 건 쉽지 않다. 어느 미세먼지 없는 청한 하늘이 떠오른다. 땅바닥에 앉아 옆 친구를 보며 생각한다.  


일등 해야지.


조잘거리는 목소리와 흥겨운 음악과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 한 선생님이 우리들 옆에 서 있다. 우두커니 서 있던 선생님은 시계를 보며 오른손을 머리 위로 올리신다. 또 다른 손은 입으로 가져간다. 발아래에서 시작하여 저 멀리 길게 그러진 하얀 선을 보며 비장하지만 경쾌한 호루라기 소리를 듣는다.  


삐~


생각할 여유가 없다. 무작정 두 팔과 두 다리를 움직인다. 숨이 차 오른다. 그 와중에 욕망이 꿈틀거린다.  


'일등 하면 어떻게 하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온다. 열심히 두 팔과 두 다리를 움직이며 달린다.

정말 친한 친구, 조금 친한 친구,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 정말 재수 없는 친구, 정말 정말 싫은 친구 등 다 같은 친구 녀석들과 열심히 달렸다. 앞에 기다란 끈이 보인다. 도착할 무렵 뇌가 인지한 후 0.3초 만에 내 입에 나온 말은 슬펐다.  


'엇!!! 에구!!!'


넘어졌다. 아주 시원스럽게.

아픔과 창피는 내 몫이다.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지만 그때는 그렇게 불렀음) 5학년 가을 어느 운동회 학교 운동장에 넘어졌고, 창피함에 투덜거리며 일어났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하나? 게으름 피우는 것보다는 열심히 하는 건 좋다. 그러나 자기 몸을 혹사하면서 열심히 하는 건 이제 싫다. 지금까지 몸 신경 안 쓰고 일다. 일에 열심히 아주 처절하게 하는 사람은 엄청 많다. 그러나 자기 몸뚱이는 세상에 단 하나뿐이다. 이런 사실이 중요하다.  


몸이 망가지면 누가 챙겨 주나? 당장 지금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버지 몸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 존경스러운 교수님의 집도와 치료에 기도할 수밖에 없다. 또한 24시간 정성스러운 손길로 보살펴 주시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작은 희망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추후 간병인의 손길이 필요할 수 있다.  가족은 단지 마음으로 응원 아닌 응원이 전부다. 자기 몸은 알아서 신경 써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면 당연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다.


건강과 돈 중에 무엇이 중요해?


너무 이분법적이지만, 난 대답할 수 있다. "둘 다 중요하다."

그러나 질문이 잘 못 되었다. 질문을 바꿔보자.


건강과 돈 중에 무엇이 덜 중요해?


답은 뻔하다. 그만큼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인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자꾸 망각하면서 살고 있다. 안타깝다. 건강이 최우선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어 속담이 있다.

First things is first.

제일 중요한 게 먼저다. 다시 한번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하자.




마지막으로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에서 작가 앤디 앤드루스가 죽음의 순간을 표현한 문장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죽음의 순간 생사가 걸린 절대 위기의 순간을 맞이한 사람들은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의 과거가 영화 필름처럼 재빠르게 눈 앞에 스쳐 지나가는 것을 경험한다고 한다. 그 몇 초의 순간에 유년 시절, 청소년 시절, 성인 시절이 간절한 하이라이트로 압축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순간 어떤 사람은 후회와 자책을 느끼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불가피한 것을 받아들이고 마음의 평안을 찾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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