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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Mar 24. 2019

완벽한 하나의 유기체

# 암환자는 가족이다.

하늘은 이미 어두 컴컴하다. 늦은 밤 사이로 힘없이 걷는다. 전철 플랫폼에 서 있다.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 나는 집으로 가는 중이구나. 전철은 몇 분에 도착하지?'

그저 멍하니 생각나는 조각들을 주워 담아본다.




이곳은 몸이 망가지고 약해질 때 찾는 곳이다. 나에게는 제2의 공간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는 처절하게 외치는 몸의 신호를 의심하고 두려움을 찾는 곳이다. 또 누군가는 무덤덤하게 몸의 신호를 확인하고 슬퍼하는 곳이 하다. 반대로 지구 상에 존재하는 탄소, 질소, 산소로 구성된 공기를 처음으로 느끼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는 어디인가? 뻔한 질문을 했나?

이곳은 병원이다.


노란 얼굴과 눈동자가 보인다. 힘없이 터벅터벅 걷는다. 조금 쌀쌀한 봄바람을 뒤로하고 그는 또 하나의 공간으로 들어온다. 평소 키 크고, 어깨가 넓은 체구는 오늘따라 작게 느껴진다. 옆에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계시는 어머니가 보인다. 황달(jaundice)에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가 이곳 중앙 로비로 걸어오신다. 황달은 감기가 아니다. 반드시 치료가 필요한 증상이다. 입원해서 검사를 해야 한다. 원인을 확인하고 적절한 치료를 해야 한다. 불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예상했던 입원 수속을 밟았다.


환자복을 입고 계시는 아버지는 입원을 시작으로 준비된 검사를 받았다. 입원실에서부터 병원 로비, 검사실 등 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나는 평소 지상에 갈 일이 없다. 오늘은 평소와 다른 일상을 보냈다. 지하생활만 하다 보니 새로운 것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원무과 접수와 수납 창구에서 사람들을 상대하는 행정 직원, 입원 절차를 설명하며 기본적인 키와 몸무게를 체크하는 간호사, 흉부 X-ray와 CT촬영을 진행해준 방사선사, 복도를 오고 가며 기록지를 세심하게 확인하는 의사 그리고 힘없이 침상에 누워있는 환자부터 조심스레 걸음마를 연습하듯 걷고 있는 사람까지 매우 다양했다. 이 공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새삼 놀랐다.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하나하나 생명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이 공간은 병원이다.


내가 일하는 이 장소는 정말 경이로운 곳이다. 생명이 태어나고 또 생명의 불씨가 꺼지는 공간. 삶과 죽음 사이에 어마한 일들이 공존하고 있다. 기쁨을 느끼고 아픔을 호소하고 삶의 끈을 고민하고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 지하에서 생활하다 보니 큰 숲이 안 보여서 일까. 병원이라는 공간이 새삼 놀라움 가득한 곳으로 새롭게 느껴진다. 병원 입구부터 입원실까지 모든 구역에서 목적에 따라 집중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보였다. 모두의 말과 손짓과 행동은 환자에 집중되어 있다. 작은 것 하나하나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직장 동료 혹은 선생님들이 눈에 띄었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모든 것들을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해 가는 모습을 보았다. 평소 내 모습도 이럴까? 분명 그럴 것이다. 환자를 보든 안보든 모두가 병원이 해야 할 분명한 목적을 위해 각자 업무에 충실하고 있다.

내 눈에 보이는 병원이라는 공간과 함께 짜릿한 무엇인가 느껴진다.


이 건물은 하나의 완벽한 유기체구나.


어느 하나 버릴게 없이 세포와 같이 각자 맡은 바 기능을 충실히 하는 것은 우리 몸과 같다. 움직이는 신체는 더욱 신기하지 않나?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주관하는 '뇌'는 얼마나 신기한가. 몸 구석구석 피부 자극을 포함한 오감을 느끼고  또다시 자극을 전달하고 받는 일련의 과정만 보더라도 그렇다. 생각만 해도 하나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지 깨닫게 된다. 우리는 그야말로 <하나의 완벽한 유기체>인 것이다. 이 중 무엇인가 고장 나면 큰일이다. 기능 저하나 상실은 주위 모든 것들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담관(bile duct)이 막혀 제때 담즙이 나오지 않으면 소화불량이 생기고 복통을 동반한 주위 장기에 이상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급기야 황달과 같은 증상은 환자 및 보호자로 하여금 엄청난 걱정과 고민을 안겨준다. 다시 말해 계속 문제가 생기면 분명 큰일이 생길 거다. <하나의 완벽한 유기체>에 노란 얼굴이 된 아버지가 힘없이 들어오셨다. 걱정이다. 보통, 평소, 별일 없이, 아무렇지 않게, 무사히 등의 단어들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진다. 화도 난다. 왜? 아버지의 몸은 완벽한 유기체에서 벗어나야 하는가?


하찮게 여기는 작은 것들이 하는 작은 기능은 중요하다. 무엇이라도 부족하거나 이상이 생기면 곤란하다. 작은 것들이 모여서 큰 것이 된다고 하지 않은가. 병은 작은 것일수록 더 잘 확인해 봐야 한다. 우리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어찌 보면 나도 잘 몰랐다. 평소 지하에서 하고 있는 일련의 일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 행위라는 걸 모르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구름 사이를 뚫고 비치는 햇살은 북적이는 병원 테라스 창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작은 빛줄기 하나는 소중하다. 바쁜 일상에서 아무 생각 없이 반복적인 일을 하찮게 여기면 안 된다. 작은 것 하나가 큰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하나의 완벽한 유기체>에 내가 하는 일이 작은 기능으로서 움직인다는 사실만으로 자부심과 긍지가 느껴진다. 또한 사명감도 생긴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내가 하는 것은 분명 작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수없이 보았던 암환자가 나의 친구, 나의 가족, 나의 친척과 같다. 나도 그럴 것이다. 머리로 알지만 가슴으로 제대로 알기는 쉽지 않다. 지금부터 스스로 다짐해야 한다.  


암환자는 가족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 가족은 고민하고 갈등하며 조그마한 희망을 갈망한다.
 내 작은 기능이 그 갈망에 한 줄기 빛이었기를 바란다.

-침상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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