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홍 Aug 22. 2021

간 없는 남자

결혼과 동시에 아내에게 자주 듣는 말 하나가 있다. 


“간 없는 남자


직장인에게 하루는 고된 시간이다. 열심히 하다 보면 퇴근 시간도 잊은 채 저녁이 되곤 한다. 그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직장 동료와 술 한잔하는 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월요일이면 몸을 생각해 가볍게 한잔하고, 화요일이면 월요일이 짜인 피로 때문에 또 한잔하고, 수요일이면 곧 다가올 주말을 상상하며 또 한잔하고, 목요일이면 일주일 중 가장 피곤한 날이라 또 한잔하고, 금요일은 왠지 허기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또 한잔하며 일주일을 마무리했다.


집에 일찍 간다고 문자를 넣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냥 늦어진다. 그럴 때면 난 연기를 했다. 술 먹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집중한다. 


아내가 의심의 눈초리로 말한다.

“오늘은 일이 늦게 끝났어요?”

“응! 일이 늦었는데 집에 오는 길에 간단히 맥주 한 잔 했어.”


아내는 손짓을 하며 내게 말했다.

“잠시 이리 와 봐요! 뭔가 냄새가 나는데!”

“아 피곤해 빨리 씻어야겠어”

나는 그대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며 나지막하게 내게 말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먼! 아니 내가 무슨 죄가 있길래. 이렇게 간이 없는 남자랑 살고 있는 거지. 얘들아 아빠가 간이 없나 봐. 당신! 늙어서 찬밥도 없을 줄 알아! 정신 차리고 똑바로 해! 간이 큰 게 아니라 아예 간 없나 보네! 간 없는 남자야?!”


그때도 지금도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 할 정도였다. 정말 매일 간이 부어 있어서 그게 어디 있는지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미친 하루하루를 술자리로 꽉꽉 채워 넣었기 때문이다. 


“간 없는 남자”는 한 동안 시간과 돈을 써가며 맛난 음식과 술 한잔에 즐거워했다. 후회는 없다. 다만 절반만 줄였다면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간 없는 남자”는 아직도 간을 찾지 못했다. 저녁을 함께 할 동료들은 이제 결혼하고 이쁜 아이들이 있어서 함께 할 시간이 없어졌다. 언젠가 또 시간이 나겠지. 


“간 없는 남자”는 집안 일도 한다. 사람은 갑자기 변하면 안 된다. 그래서 적당히 아주 조금씩 간을 찾는 중이다. 오늘은 냉장고를 열어 봐야겠다. 혹시 찾아서 아내에게 자랑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준비와 재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