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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May 28. 2019

바다 인간

<체인지> 나만의 패션을 완성하라

나의 발걸음은 가볍다. 도시 한가운데에 있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크나 큰 공원 하나를 가로질러간다. 아침에 내린 빗줄기는 며칠 동안 건조한 공기를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다. 물 한 모금에 즐거워하는 나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가볍게 지하철로 발을 옮긴다. 그러나 나는 출근할 때 젖은 옷과 신발이 거슬렸다.


오늘은 그녀를 만나는 날이다. 약 4개월 만에 오랜만이다. 기분 좋은 날이다. 설렘을 가득 안고 저녁을 함께하는 자리다. 퇴근해서 더 좋은 이 시간에 나는 축축한 느낌으로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체인지>라는 이름의 어플을 열었다.


<체인지>는 나만의 패션을 완성해 주는 어플이다. 미리 입력된 나의 정보와 함께 신체 리듬을 알아서 체크해 주는 아주 똑똑한 녀석이다. 키, 몸무게, 허리둘레 등 나의 신체에 맞게 최적의 패션을 제안하고 골라주는 일종의 가상 시뮬레이션인 것이다. 계절과 그날의 날씨에 따라 사람의 기분은 달라진다. 체인지는 날씨는 물론 예상도 가능하다. 또한 나만의 맞춤형 비서와 같아서 오늘 나의 기분이 어떤지 정확히 파악해 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느낌대로 옷과 신발과 같은 패션 아이템을 수시로 제시해주고 상품에 대한 정보와 구입 경로까지 바로 알려줄 수 있다. 그야말로 나만의 패션을 완성해 주는 인공지능 코디인 셈이다.


체인지 앞 화면에는 이미 오늘의 날씨가 어떨지 내게 알려주고 있다. 단순한 아이콘 표시와 함께 현재 시각 오후 5시 기점으로 비가 그치고 다소 쌀쌀한 바람과 함께 20도의 기온을 유지한다는 메시지가 눈에 들어온다. 날씨 아이콘 옆에는 생체 리듬과 현재 나의 기분을 알 수 있는 ‘기분 좋음. 설렘 가득’이라는 메시지가 눈에 들어온다.


<체인지>는 이미 나의 신체와 기분 등을 체크하고 있다. 단순하리 만큼 큼직한 버튼 보인다. 나는 그 버튼을 평소와 다름없이 가볍게 눌렀다. 이어서 작은 음성으로 체인지는 내게 말을 한다.


오늘 기분 좋은 날. 패션을 추천합니다.


화면에는 세 가지 패션이 나의 실물 사진과 함께 나타났다. 깔끔한 정장 차림이다. 오늘의 콘셉트는 정장인가 보다. 체인지는 오늘 중요한 날이라고 이미 짐작한 모양이다. 일반적인 정장 같지만 자세히 보니 서로 다른 느낌을 풍기고 있다. 1번은 기본적인 검은색 계열의 줄무니가 약간 들어간 정상이다. 2번은 캐주얼처럼 색상도 화사하고 적당히 무늬를 가지고 있는 안전감 있는 아이템이다. 3번은 아주 자유로운 영혼이 느껴지는  반바지 차림의 정장이다. 그래도 품위는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고민해 본다. 나는 가벼워 보이는 화사한 푸른색 계열의 정장을 선택했다. 2번을 선택한 후 화면은 바뀌고 패션을 왕성할 곳을 묻는 메시지 창이 뜨고 어느 역에 체인지 매장이 있는지 지하철 노선도와 함께 보여 준다. 나는 오늘 만남의 장소인 신논현역과 가까운 고속터미널 역을 선택했다.




9호선 신논현역으로 가기 위해 고속터미널역에 하차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바쁘게 걸어간다. 퇴근시간이라 그렇다. 많은 사람들 틈에 나는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계단을 올라갔다. 이윽고 스마트폰이 미리 알려준 지도를 확인하며 <체인지>를 찾는다. 상점들 사이에 중앙에 딱 위치해 있었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입구를 기준으로 중앙에는 푸른 바다가 연상되는 시원스러운 푸른 카펫이 놓여 있고, 좌우에는 <플레이스>가 각각 5개 총 10개가 있다.


플레이스는 체인지가 선보이는 단순하지만 완벽한 공간이다. 이것은 개인 맞춤 패션을 제안할 뿐만 아니라 고객 스스로 옷을 벗고 입을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개인물품을 배송할 수 있는 창구 기능도 할 수 있다. 일종의 전천후 무인 탈의실인 샘이다.


플레이스 앞에 사람들이 보인다. 커플로 보이는 젊은 대학생도 있다. 반대편에는 플레이스 앞에서 무엇인가 고민하고 어느 한 중년 신사의 모습도 보인다. 이미 플레이스를 사용하고 있는 메시지도 눈에 보인다.


나는 아무도 없는 5번 플레이스 앞에 섰다. 플레이스 전면부에 대형 화면이 보인다. 앞문 자체가 터치 패널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플레이스를 사용할 것으로 미리 알고 있는지 대형 화면에는 체인지 로고와 함께 한 문장의 메시지가 뜬다.

당신의 패션을 체인지하세요.


나는 스마트폰을 켜서 <체인지 > 어플을 작동시켰다. 이내 탈의실 화면에는 이미 내가 선택한 푸른색 계열의 정장과 그에 어울리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캐주얼 운동화가 보인다. 이윽고 화면이 바뀌고 나를 다시 확인하는 플레이스는 내게 메시지를 보여준다.


“000님 안면&전신 인증 완료”


나는 벚꽃이 흔들거리는 화사한 거리의 풍경과  저만치 보이는 운치 있는 한강을 보고 있다. 나의 기분을 알아주는 듯 플레이스는 기분 좋은 장면과 함께 “딸깍”하는 소리를 내며 문을 얼어주었다.


그 안에는 내가 선택한 정장 한 벌과 캐주얼 운동화가 걸려 있다. 그 옆에는 <마이 박스>도 함께 있다. 마이 박스는 나만의 배송 박스다. 나만의 캐리어와 같다. 마이 박스는 가로 30 센티미터 세로 100 센티미터 정도로 개인이 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아담하다. 작지만 충격에 강한 재질로 되어 웬만한 유리 물건을 넣어도 문제가 없다. 물론 보안을 위한 인증 절차는 필수다. 나는 마이 박스를 1년 전 구매했다. 아직까지 아무 문제없이 기분 좋게 잘 사용하고 있다. 매 달 일정 금액이 나가서 가계부담이 되지만 여러 가지 혜택을 보고 있어 나름대로 가성비 높게 활용하고 있다. 이제 마이 박스도 1년이 되어서 그런지 이런저런 낡은 흔적이 눈에 띈다. 그래도 무선 서비스로 내구성과 보완 시스템을 알아서 점검해 주고 있어서 크게 불만은 없다.


나는 마이 박스 한쪽 모서리에 붉은색으로 작게 표시된 삼각형을 눌렀다. 삼각 표시 옆에 “인증 완료” 메시지와 함께 딸깍 소리가 들렀다. 지문인식 기능이 탑재된 마이 박스는 아직도 멀쩡히 잘 작동되고 있었다.


입고 있던 남방과 바지를 벗고 나는 마이 박스에 잘 정리해서 넣었다. 또한 나는 오전 비에 맞아 조금 축축한 신발도 미리 준비된 비닐 팩에 담아 마이 박스 한 구석에 잘 정리해 넣었다. 플레이스 안에는 잔잔한 선율의 피아노 소리는 나의 귀를 즐겁게 했다. 나는 플레이스 중앙에 걸려있던 정장을 잘 챙겨 입고, 바로 뒤편에 위치한 화면을 보았다. 체인지는 나의 패션을 체크해 주고 있었다. 다시 한번 옷과 신발에 대한 설명을 음성으로 내가 말해주고 있다.


“기분 좋은 설렘으로 당신을 응원합니다. 당신의 패션이 행복이 되길 바랍니다.”

“서비스에 만족하십니까?”

나는 기분 좋게 화답했다.

굿

체인지는 이내 마무리 인사를 한다. “마이 박스에 개인물품을 잘 정리하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나는 열린 마이 박스를 닫았다. 이윽고 삼각형 표시 옆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보였다. “어디로 배송하시겠습니까?” 아래에는 깜박이는 문구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Home” or “etc.”  나는 “Home”을 선택했다.

마이 박스는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의뢰 완료”라는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플레이스에서 나온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함께 식사할 메뉴를 고르기 위해서다. 그녀와 나는 미리 예약한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추천 메뉴를 확인하고 선택했다. 향기 좋은 정장과 내 발의 꼭 맞는 캐주얼 운동화는 내 기분을 더욱더 설레게 한다. 그녀에게 가는 발걸음이 너무도 가벼워 오늘은 참 좋은 저녁이 될 것 같다.



-약속 장소로 한 걸음 걷다 보니 세상 넓은 바닷속에 던져진 나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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