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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May 31. 2019

행복 밥상

4차원 아들

“지난번 녹색어머니회 교통 봉사하면서 담당 선생님이 한 마디 하던데.”


나는 뉴스를 들으며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담임선생님 말하는 거야? 만났어?”


아내는 재밌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당신 아들이 좀 4차원이래."

나의 반응을 살피는 듯 아내는 유심히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웃기지? 담임 선생님이 그러는데. 당신 아들이 반에서 인기가 제일 좋다네. 이쁘게 생겨서 여자들한테 인기 많고, 친구들이랑 잘 지낸다네. 반에서 인기남이래. 근데 말이야.”

나는 따뜻한 밥 한 숟가락에 김치를 얹으며 아내의 말에 끼어들었다.

"인기남이라고? 설마... 이쁘다고? 근데 4차원은 뭐야?"

아내는 내 말을 무시한 채 계속 이야기를 이어 갔다.

“선생님 말로는 당신 아들이 좀 엉뚱하다고!!! 내 뱃속에 나왔지만 내가 봐도 좀 엉뚱해. 밖에서 듣는데 웃겨서 정말 혼났어.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진짜 우리 아들이 그럴지도 몰라. 오빠 그렇잖아. 보통 학부모한테 ‘아이가 4차원 같아요.’라고 말하나?”

맛난 반찬이 한가득한 밥상에서 나는 TV 속 아나운서의 또랑또랑한 말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4차원이라...'


아내는 TV 속에 들어 간 내 모습을 보더니 소리쳤다.

“지금 내 이야기 듣고 있어? TV 속으로 들어가! 밥 먹을 때 안보기로 했잖아. 나 누구랑 대화하니? 아들이 4차원이라고... 심각하지 않아? 아니 안 웃겨? 도대체 애들한테 관심이 있어야지. 당장 TV 꺼요!”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밥상 앞에는 우리 둘 뿐이다. 아들은 학원에 갔고, 딸은 옆 방에서 자고 있었다. 회식자리에서 상사 뒷담화하는 듯 우리 부부는 아들을 밥상에 올려놨다. 나는 불쌍한 4차원 아들 얼굴을 떠 올리며 아내를 놀리고 싶었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고등어를 한 입 먹고 아내에게 말했다.

“근데 아이들이 죄다 혈액형이 AB형이지? 아들이 천재는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또라이야? 보통 아들은 엄마 닮는다고 하던데..." 


나는 상추를 들고 맛난 제육볶음 한 점과 밥 한덩이를 올리며 아내를 주시했다.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상추쌈을 입으로 가져갔다. 아내는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좀 그래. 이상해. 4차원 맞는 것 같애. 근데 나는 아니야. 당신이 좀 이상하지. 당신이랑 결혼할 때 주위에서 당신은 5차원이니 조심하라고 했어. 기억나?"

“응? 왜 또 갑자기 5차원이 나와... 나 지극히 정상이야. 이거 왜 이래!”


천사 같은 아내는 심기가 불편한 나의 표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이야기에 심취해 있었다.

“오빠 직장 후임한테 물어봐. 아마 이상하다고 할 걸? 분명 그럴 거야. 모두 당신을 이상하게 보는 거 몰라? 당신만 모르고 있지? 결혼 전에 내가 알아봤어야 하는데. 아들 녀석도 4차원인 게 당연할지도 몰라. 그 피가 어디 가겠어?”


아내의 독설에 나는 잠시 생각했다.'도대체 누가 말 하는거지?' 여하튼 화를 내거나 따질 일은 아니지만, 4차원 아들에서 5차원 아빠로 주제가 넘어가는 걸 느꼈다. 화제를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근데 아들이 인기남 맞아? 4차원은 진짜야? 담임 선생님이 좀 이상한 거 아냐? 뭐. 사는데 지장 없으니까. 나랑 아들이랑 3차원 이상이면 음... 우리 이쁜 딸은 뭐야? 걔도 4차원이러나?”

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내에게 말했다.

“오빠가 그렇게 애지중지한 따님도 가끔 뚜껑 열리는 걸 보면. 음... 걔도 좀 이상해. 커 봐야 알겠지만 당신이랑 비슷한 것 같애. 또라이 기질이 좀 있어."

"뭐? 정말? 울 이쁜 딸한테 무슨 막말을... 나 닮아 얼마나 이쁜데."

"당신은 좋겠네... 내 뱃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죄다 혈액형은 AB형이고, 한 녀석은 4차원이라고 하고, 한 녀석은 오빠처럼 또라이 기질 있어서. 내 말이 맞지? 그렇지?"

나는 할 말이 잃었다. 그 어느 직장 회식보다 처절한 난도질을 천사같은 아내에게 당하고 있는 중이다. 정성스럽게 차려준 밥상 앞에서 화를 낼 수는 없다. 그냥 웃어넘길 뿐이다. 아내는 내 눈치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아빠라는 사람이 아이들한테 관심 좀 가져야지. 아이들이 이상해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밥 먹고 아무것도 안 하고 소파에 누워 있지만 말고 아이들이 놀아달라고 할 때 좀 놀아줘요. 안 그러면 늙어서 아이들한테 찬밥 신세 되지말고. 알겠죠?!”


아들의 4차원 이야기로 시작해서 5차원이 된 나는 밥상에 올라온 횟감처럼 처절하게 잘려 나갔다. 그래도 행복하다. 서로 마주 앉은 맞벌이 부부에게 따뜻한 밥 한그릇과 소소한 반찬이 있는 저녁은 정말 소중하다. 함께 머리 맞대고 저녁을 함께하는 지금이 행복이다.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요리를 하는 아내를 보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처음 신혼때 밥상에 올려진 음식들은 죄다 짜고 맵고 싱거웠다. 맛이 없었다. 다행히 나는 음식에 예민하지 않는 터라 밥상 앞에서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는 아내에게 항상 맛있다고 말해주었다.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은지도 13년이다. 밖에서 먹는 저녁보다 오히려 집밥이 더 좋다. 물론 아내의 음식도 좋아졌다. 맛이 없어도 행복하다. 우리가 함께 일군 가족이라는 삶속에 함께 음식을 먹는게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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