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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May 31. 2019

연구노트

메모의 힘=자신의 위치 파악

2011년 5월에 나를 기억해 본다.


대학원생이 된 지 이제 몇 개월이 지났다. 1학기는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고 이제 학교 가는 게 꽤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갈팡질팡 했었다.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 나는 논문 주제, 수업 확인, 연구 계획 등 사전 준비를 했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수업 준비, 수업, 발표 준비, 또 수업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힘들었다. 교수님과 대학원생 동기 및 선배들의 연구와 논문 이야기는 소리 없는 총성처럼 내게 많은 숙제와 생각을 남겨주었다.


그때 교실 학생들은 내가 멀쩡해 보였을 테다. 그러나 속은 시커멓게 탄 연탄재 마냥 힘겨워했던 걸 나는 기억한다. 그래도 나는 석사를 넘어 박사까지 끝냈다. 그리고 지금은 2년이 흘러가고 있다. 지난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반복된 실수를 바로 잡고 현실을 더 알차게 보낼 수 있는 자양분이 아니겠는가.


힘든 기억 속에 대학원 과정에서 꽤 스스로에게 칭찬할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메모]다.


사실 메모는 귀찮다. 기본적으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잊을 만한 중요한 내용이나 기억해야 할 꼭 필요한 정보는 기록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메모를 하게 된다. 특별한 건 없다.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메모는 할 것이다. 근데 내가 왜 학위 과정에서 메모를 이야기할까? 뻔하다. 공부와 연구를 하는 게 대학원생이다. 특히 연구는 중요하다. 연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또 그 결과는 논문(paper)다. 이것 또한 하루아침에 금 나와라 뚝딱 도깨비방망이로 한 방에 해결될 사항이 아니다. 즉 연구는 곧 시간이고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에 기록이 필요하다. 나는 이게 꼭 필요했었다. 제대로 학위를 끝내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고, 필요충분조건인 셈이다. 나는 연구하는 시간을 기록함으로써 좀 더 발전하고 싶었다.


석사 학위를 빨리 마친다면 일반적으로 2년이란 시간이 소요된다. 더 늦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수업만 열심히 받고 수료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학기 정도 되면 대학원생들은 슬슬 연구 계획서 작성이 필요하다. 즉 연구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슬슬 조바심이 생긴다. 누구나 다 그렇다. 사실 난 학생이 되기 전 미리 준비했다. 해야 할 연구 주제가 많았다. 걱정이 없었다. 걱정은 남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러나 1학기가 지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칫 잘못하다가는 논문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학위도 받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주위 학우들과 선배들의 높은 연구열과 격려와 기대를 내비치는 교수님들의 눈빛 또한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중 해외 논문 발표부터 해야 하는 교실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었다. 발표와 연구 진행이 병행해야 하는 악전고투의 노력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나로서는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게 정답이었다.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은 연구 논문으로 걱정하고 있는 나를 지나가는 말로 벌써부터 신경 쓰냐고 걱정과 위로를 해 주곤 했다. 그러나 나는 직장을 다니며 학위를 밟고 있는 입장이었다. 소위 파트타임이라 불리는 대학원생인 것이다. 그래서 더욱 학위 과정은 쉽지 않았다. 또 일반대학원이라 수업은 주간에 많이 몰려 있었고 저녁에는 전공수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장인에게는 쉽지 않다. 마음만 가지고서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나의 일상은 대략 이랬다. 주위 동료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가급적 빨리 출근해서 업무를 시작하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솔선수범이 필요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진짜 열심히 해야 했다. 학교 다닌다고 업무가 쌓이면 큰 일이기 때문이다. ‘대학원 다닌다고 일에 소홀히 하는 거 아냐!’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이 부분이 제일 신경 쓰였다. 다행히 동료들의 동의와 배려는 내게 큰 힘이 되었고, 나 역시 하나라도 더 하려고 노력했었다.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그 고마움은 잊지 않고 있다.


주간에 있는 교양(필수) 수업은 휴가를 써 가며 해결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개인 휴가는 쓰지 않았다. 휴가는 거의 수업을 위해 사용했다. 물론 여름휴가와 같은 사치는 없었다. 또한 전공수업도 있다. 다행히 교실의 배려로 수업은 저녁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것은 몇 안 되는 파트타임 학생에 대한 배려였다. 지금도 그렇게 수업이 진행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퇴근 후 열심히 뛰어간 기억도 난다. 저녁 수업을 받기 위해 까딱 한눈이라도 팔게 되면 전철을 놓치기 일수다. 지각도 많이 했다. 그래도 결석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사실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 결석이란 단어는 내 머릿속에 저장을 할 수가 없었다.


퇴근 후 전철을 타고 열심히 뛰어다녔던 대학원 과정에서 조금 아쉬운 점은 저녁 식사를 못한다는 사실이다. 매일은 아니지만 거의 먹지 못할 경우가 다반사였다. 배고 고플 때는 커피와 물로 배를 채워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지금은 담배를 끊었지만 그때는 줄기차기 피워댔으니 저녁에는 좀비처럼 폐인과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먹는 거에 욕심이 없던 터라 배가 고파서 화가 나는 일은 없었다. 단지, 발표 수업에서 말을 버벅거리거나 전공 수업에서 뜻을 이해하지 못해 화가 나는 게 제일 싫었다. 그래도 직장생활 8년 차였는데. 나는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다. 학문적 깊이가 얕은 나를 대할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를 뿐이었다.


또 한 가지 아쉽고 미안한 점은 늦은 귀가다. 그때 아들은 4살 ~ 5살 꼬마였다. 아빠의 품이 그리울 때라서 더 많이 안아주어야 했는데. 그럴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이 녀석을 반항심 가득한 녀석으로 변했다. 이제 아빠 손도 안 잡아준다. 이게 좀 아쉽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서 궤도에 벗어났다. 미안하다. 나이가 들수록 말이 많은 것인지 내가 원래 말이 많은 인간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다시 본선으로 돌아와 보자.


시간이 촉박한 나로서는 메모를 규칙적이고 체계적으로 할 필요가 있었다. 처음엔 엑셀로 매일 적어가면서 그날의 중요한 연구 진행을 키워드 형태로 적어가며 기록했다. 그 후 내용이 많이 지고 보기도 불편해서 워드로 칸을 나눠 날짜와 중요한 내용 그리고 비고 등을 통해 연구 과정에서 느끼는 생각 등을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연구 노트”를 작성하는 법도 검색해 보았다. 이것저것 알아보았지만 내게는 맞지 않아서 그냥 일기 쓰듯 메모를 하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코넬식 노트 필기법>를 참고하여 작성하고 또 작성했다. 나중에는 쓸데없는 개인감정도 적었는데 그것도 연구과정에서 느끼는 것들이라 그대로 남겨 두었다. 다시 보면 참 웃기는 내용도 있기는 하다. 여하튼 내게 주어진 숙제가 차곡차곡 쌓이다 보니 어느덧 석사가 끝나는 시점에 나는 욕심이 생겼다. 나의 메모를 책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 뿌듯함은 엄청날 것이라 기대했다. 그래서 한 번 해 봤다.



잘 정리된 메모, 아니 지금은 <연구노트>라고 해도 될 듯하다. 가끔 휴일에 펼쳐 본다. 차분하게 읽어보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연구하고 있는 재료들이 잘 섞이고 제대로 맛을 내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노트를 보다 보면 나의 현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특히 학위과정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연구노트를 한 권의 책으로 만든 시점이 바로 박사 과정을 시작하고 1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석사 때와 같이 큰 전화점에서 터닝 포인트를 찾지 못해 갈팡질팡 하고 있을 때다.


<메모>의 힘은 자신의 현 위치를 파악할 수 있고 다음을 계획할 능력을 주는 도구가 된다. 연구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기록하고 또 기록하면 자신만의 일기가 되고 <연구노트>라는 보물이 될 것이다. 연구를 시작하거나 연구가 잠시 싫어질 때 기록하는 습관인 메모 혹은 연구노트 작성을 해 보시길 추천한다. 무엇이든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다. 다만 SCI급 논문을 대량을 쓸 수 있는 꿈같은 결과는 보장할 수 있지만 앞서 이야기한 갈팡질팡한 자신을 파악하고 어디로 갈지 나침반은 충분히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좋은 습관인 메모를 해 보라.

경험 많은 사람들은 굉장히 많다.

메모의 힘은 참 놀랍다.

기본은 기록이고 결과는 보물이 될 것이다.


짧게 쓴다는 게 너무 많이 써서 그만 써야겠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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