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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Jun 08. 2019

같이 늙다니

토르처럼 튼튼하고 건강하게 잘 키워라.

2003년이면 지금으로부터 17년쯤 될 것이다. 나는 사회 초년생, 그녀는 졸업이 코 앞인 대학생이다. 그때부터 서로 알고 지냈다. 임상 선생과 학생 사이, 인생 선/후배 사이, 술자리 뒤섞이는 사이, 말싸움 사이(심하지 않아서 다행) 그리고 음... 모르겠다.


이제, 같이 늙어가는 사이다. 우리 둘째와 생일이 같다. 6월 7일 그녀의 첫 째 아들이 태어났다. 코 찌질이 학생에서, 어쭙잖은 사회인에서, 열심히 돈 버는 선생에서, 연애에 목말라하는 여인네에서, 이제는 토르처럼 강인하고 듬직한 아들이 있는 엄마가 되었다. 참 신기하다. 


꼭 이 친구가 아니더라도 학생에서 시작해 함께 삶을 공감하고 인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지금을 돌이켜볼 때 우리 사이는 참으로 신기하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은 각자 가지고 태어난 싱그러운 세포들이 이제 빠르게 늙어간다는 점이다. 시간이 야속해질 나이가 된 것이다. 나만 늙어가지는 않아서 억울하지는 않다. 다행이다.


우리 선정이가 이제 코 찌질이 학생에서 토르 아들은 둔 엄마라니...... 같이 늙다니......

예전처럼 혼내거나 또 혼내지 말아야겠다. 옆에서 말하면 토 달지 말고 그냥 가만히 얌전한 고양이처럼 있어야 할 것 같다. 같이 늙지만 아무래도 갈수록 내가 질 것 같은 느낌(?)이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뭐 하나 챙겨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 육아용품이라도 있으면 보내줄 텐데. 남은 게 없어서 아쉽다. 몸 풀고 몇 년 후 만나게 되면 맛난 고기에 소주나 한 잔 대접해야 할 듯싶다. 선정이는 맛나고 비싸고 얻어먹는걸 싫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잘 먹는다. 꼭 고기 사줄게.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 놈 봐라. 코 찌질이 학생’

그래!!! 우리는 다 코 찌질이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사이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스틸 사진처럼 각인된 장면들과 공감하지 못할 서로의 추억이 각자의 대뇌 피질에 아로새겨져 있을 것이다. 나중에 치매 걸려서 지워질 때까지 조각된 기억은 계속 남겨질 것이다. 그러면 되는 게 아닌가.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우리 코 찌질이 학생이었던 선정이가 토르 같은 아들을 낳아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정말 축하해. 토르처럼 튼튼하고 건강하게 잘 키워라.


-핸드폰 게임에 정신 팔려 있는 12살 초딩 아들을 기억하며...


2019년 6월 7일 11시 22분 선정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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