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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Jun 12. 2019

설렘(throbbing)

새 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짝

첫째 아들과 다르게 둘째 작은 숙녀는 뭐든지 남들에게 물려받았다. 옷과 신발은 물론이고 장난감과 아동용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헌 것이든 새 것이든 쓸 만한 것들이 많았다. 받은 물건들을 정말 잘 사용했다. 그러나 이제 유용성이 떨어졌다. 시간이 증가할수록 물건은 없어지고, 서로 반비례 곡선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고마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이자를 빌어 말하고 싶다. 사실 본의 아니게 아끼다 보니 가계부담이 줄었다.  그러나 이제 물려받는 것들을 뒤로하고 새것을 살 때가 된 것 같다. 작은 숙녀의 발가락은 이내 나의 엄지손가락보다 더 굵어졌다. 이제부터 쇼핑 타임이 필요한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듣는 귀가 좋아진 아이는 새 신발을 산다는 엄마의 말에 벌써부터 설렌 것 같다. 작은 숙녀는 함박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배시시 부끄러워하고 마네킹 발 앞에 놓인 핑크색 구두에 넋을 잃고 있는 100% 여자 아이 표정. 행복에 겨워 한 없이 웃음을 발산하는 작은 숙녀.



아들 키울 때는 핑크색 구두를 보기만 해도 왠지 어색했다. 지금은 어떤가. 핑크색, 장미꽃 붉은색, 노을 진 사막 아래 황금색, 개나리꽃 노란색, 화려한 색동옷 무지개색, 반짝이 잉어 비닐 등 그야말로 색이 너무 이뻐 보인다. 갈수록 작은 숙녀의 눈높이가 되는 나 스스로를 보게 된다. 이쁘고 화려한 것들이 마냥 나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온다.




어릴 적 어머니가 시장에서 새 신발을 사주시면 고이 가슴에 품고 잠을 청했다. 그날 밤은 신발과 함께 꿈을 꾸고 싶었다. 그러나 잠이 제대로 올리가 있나. 셀렘이 온몸에 엔도르핀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다음날 새 신발을 신고 문 앞에 나갈 생각에 잠을 설쳤다. 내 손에 들려진 작은 신발과 짜릿한 느낌의 감출 수 없는 행복감을 아직도 기억난다. 내 몸 구석구석 작은 세포가 이를 기록했나 보다. 


설렘은 참 오묘했다. 몸은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고 빨리 아침이 오길 바라는 소풍 가지 전 마음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황금빛 줄무늬가 매력적인 새 신발을 가진 아이의 마음도 지난 나의 어릴 적 설렘과 같았다. 이것은 어릴 적부터 함께 하고 즐겼다. 또한 이것은 갈등을 유발하는 녀석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짝사랑은 설렘 가득한 상대에 대한 감정만큼 괴로움과 좌절감을 맛보게 해 주었다. 그것뿐인가. 전날 밤 잔 듯 기대했던 모든 계획이 다음날 물거품으로 실패하는 여러 상황들도 많았다. 


달콤할 것만 같은 설렘은 야누스와 같은 두 얼굴이지 않을까.




<지금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두 얼굴이라도 좋으니 내게 그런 감정이 남아있는지 궁금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있지 않을까? 나는 잠시나마 생각을 했고, 최근 내게 다가온 이것들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싶었다. 생각나는 대로 기억나는 대로 적고 싶다. 



안면인식 기술을 구현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알아보았다. 역시나 C와 같은 컴퓨터 언어가 필요했다. 그것은 파이션(Python)이라는 언어인데 나는 문득 이 녀석을 마스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소처럼 여러 경로를 찾고 확인하고 정보를 입수했다. 아직 갈길은 멀지만 파이션을 코딩하고 실행시킬 수 있는 에디터(도구) 프로그램인 파이참(Pycharm)이라는 걸 알았고, 바로 인스톨을 시도했다. 


물론 도구보다는 코딩을 위한 이론 공부와 활용 연습이 우선이지만 설치하고 난 화면은 그 자체만으로 나에겐 설렘이었다. 내 노트북에 파이참을 실행하고, 파이션을 공부하기 위한 <코딩> 준비가 된 상황이다. 그러나 무난히 설치가 되었다는 기쁨과 함께 또 다른 갈등이 생기기는 했다. ‘내가 꼭 이걸 해야 하는 걸까?’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선택했다. 애초에 생각했던 안면인식 기술을 구현하고 싶다는 길로 몸을 돌렸다. 내심 걱정이다. 정말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마음이 가니 몸도 따라가는 법. 무엇부터 시작할까. 고민 속에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가 내 온몸을 감싸고 있다.




어느 날 나는 일찍 조기 퇴근했다. 어느 작은 벤치에서 동료를 기다린다. 오랜만에 저녁 겸 소주 한 잔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술친구를 기다리는 중이다. 나의 설렘은 이렇다. 기다리는 이 시간에 내가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름 아닌 <독서>다. 


나는 원래 책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책이 좋아졌다. 독서가 즐거워졌다. 현재는 나의 두 손은 항상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만일 누군가를 기다려야 한다면 내겐 작은 공간과 의자 그리고 읽을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마음의 양식이고 뭐고 그냥 책 속에 새겨진 한 글자 하나하나가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독서 자체가 재미있다. 




가끔 가족과 외식을 한 후 소화도 식힐 겸 찾아가는 곳이 하나 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저수지다. 가족과 함께 산책을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낚시하는 풍경> 사실 나에게 낚시는 좋지도 싫지도 않은 존재다. 다만 찌를 던지고 붕어나 잉어들이 내가 던진 밑밥에 걸릴 것인지 아닌지 궁금할 뿐이다. 이 순간이 재미있다. 마냥 시간을 보내는 그 순간도 흥미롭다. 


그러나 아무래도 낚시는 심심하고 지루하다. 오히려 힘만 든다. 그래도 생각나는 것은 혼자 가만히 찌를 바라보며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어디에서 오는지 피부로 느끼는 것이다. 기분이 좋다. 또한 오로지 찌만 바라보면 잡념은 이내 없어진다. 가끔 낚시를 갈 기회가 되면 나도 모르게 전날 밤부터 설렌다. 불어오는 바람에 찌가 흔들리는 작은 미동들은 내 손끝과 찌가 하늘 높이 올라갈 때 1차로 느껴진다. 이후 물고기의 푸다닥거림은 온몸 구석구석에서 느끼게 된다. 짜릿한 손 맛을 다시금 생각하면 다시 설렌다.




누구에게 배우는 건 쉽다. 그러나 누구를 교육하는 건 어렵다. <교육>은 참 쉽지 않다. 처음 시작할 때 기억이 난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능력이 되는가? 수업을 어떻게 진행하지? 내가 잘 준비해야 할 텐데. 어떻게 잘하지? 어느새 고민의 탈을 쓴 독사과는 과일 바구니에 한 가득 담겨 있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천재가 아닌 이상 누구나 어려움을 가진다. 그래도 최소한 기본적인 역량을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그것은 이렇다. <열정> 특히 대학교에서 다 큰 성인인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쉽지 않다. 근본적으로 교육은 누구에게 정보 습득 과정일 수도 있고, 인생에 있어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대전환점이 되는 계기를 줄 수 있다. 그만큼 교육은 달콤한 사과향처럼 다가오지만 몸으로 느끼는 부담은 엄청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준비하는 나에게는 항상 셀렘 가득한 과정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내 온몸을 감싸지만 이를 이겨내고 열심을 가지고 피교육자와 얼굴을 마주 보고 눈을 마주치며 그들의 지식과 생각을 변화시키는 작업을 참으로 흥미롭고 재미 가득하다. 그래서 아직도 고민 한 바구니만큼이나 설레는 느낌으로 수업을 준비한다.




마지막은 <글쓰기>다. 제일 가치 있는 습관을 묻는다면 나는 당연 글쓰기라고 말하고 싶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언급한 <글쓰기는 축복이다>라는 문구는 내게 어색하기만 했다. 축복은 무슨 축복? 너무 미학적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그러나 독서를 하고 작은 생활 글쓰기를 하다 보니 <축복>이라는 말이 내 가슴속에 밀물처럼 빨려 들어오는 걸 느낀다. 유시민 작가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글쓰기 자체가 굉장히 재미있고 하면 할수록 나를 더 알아가는 방법을 깨우치는 것 같다. 늦은 감도 있지만 이제라도 글쓰기가 나의 작은 삶에 일부가 되어서 참 기쁘게 생각한다. 축복이 맞는 것 같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동요 가사 한 줄에 설렘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작은 숙녀만큼 나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나만의 설렘을 적어보니 그리 나쁘지 않다. 사실 행복에 겨운 소리다. 그래서 더욱더 설레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껴본다. 분명 찾아보면 자기만의 설레는 것들이 하나 정도는 있다. 더 많으면 좋을 것 같다. 


지친 하루의 일상에 설렘 한 방울을 마시면 행복한 하루가 보장될 것이다.


-새 신을 신고 뛰어가는 작은 숙녀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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