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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Aug 07. 2019

욕심 많은 거북이와 토끼

언덕에서

토끼는 한참을 달려 초원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본다. 작은 바위 하나와 잎사귀가 풍성한 나무 한 그루가 길가 옆에 있었다. 오는 길에 발가락 사이에 흙먼지가 묻었다. 토끼는 바위에 앉아 잠시 몸을 풀며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발가락 사이에 낀 흙먼지를 털어내기로 마음먹었다. 바위에 앉기 전에 길고 커다란 두 개의 귀를 쫑긋 세워, 주의 깊게 소리를 들어본다. 아무 소리 없이 공허하다. 잠시 청각이 예민한 자신의 귀를 의심해본다. 하지만 이내 별 신경 쓰지 않고 바위에 앉아 기지개를 켜고 두 발을 서로 부딪치며 흙먼지를 털어낸다.


잠시 후, 저 멀리서 알 수 없는 소리 하나가 예민한 두 귀를 자극한다. 나뭇잎을 밟고 지나가는 사각거리는 소리다. 재차 흙먼지가 덮인 땅을 밟은 듯 푸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점점 소리는 커진다.  토끼는 들려오는 소리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한 여름 태양빛을 손으로 가리며 시력 좋은 눈으로 작은 점을 응시한다. 거북이 녀석이다. 거북이는 저 멀리서 앞다리와 뒷다리를 번갈아 가며 느린 걸음으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

 

거북이는 뒷덜미에서 내려오는 땀이 긴 모가지 아래에 멈춰 선 후, 이내 땅에 떨어지는 걸 느낀다. 오늘따라 둥글고 커다란 등 껍질이 하염없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한발 한발 내딛을수록, 등에 붙은 커다란 무게는 팔 굽혀 펴기 할 때마다 느껴지는 고통과 같았다. 거북이는 잠시 멈춰 서고 목을 길게 늘여 뜨린다. 땅만 보고 와서 그런지 목을 꽤 뻣뻣하다. 슬그머니 앞을 바라본다. 저 멀리 언덕이 보이고 검은 바위 위에 흰 촛불을 꽂아 둔 것처럼 기다란 물체 하나를 발견한다. 토끼 녀석이다. 잘 들리지도 않은 귀를 집중해서 소리를 들어본다. 공허하다. 지금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저 멀리 보이는 언덕까지 부지런히 네 다리를 움직여야 한다. 저 토끼 녀석을 봐야 한다.


어느새 거북이는 토끼가 있는 언덕에 도착했다. 숨이 턱끝까지 차 오른다. 땀은 비 오듯이 얼굴과 목덜미에 흘러내린다. 토끼는 그 모습을 보며 거만한 표정으로 거북이는 쳐다본다.

“어쭈~ 여기까지 오셨네. 한참 기다렸네. 근데 이를 어쩌나 난 기다리다 지쳐 쓰러질 지경이네.”

거북이는 차오르는 숨을 힘겹게 참으며 감춰진 긴 목을 쭉 늘어 뜨리며 토끼에게 말한다.

“토끼. 너를 꼭 이기고 말 거야. 거만한 토끼 같으니 네가 그곳에 가도록 놔둘 것 같아!”

“아이고 네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고집불통이네. 네가 아무리 쫓아와도 너보다 한 수 위라는 걸 모르나?”

“다시 말하겠는데.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어.”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해 봐!”


토끼는 다시금 귀를 쫑긋 치켜세우고, 먼지를 털며 일어난다. 기지개를 켜고 두 다리에 힘을 준다. 이윽고 토끼는 바위에서 내려와 언덕 아래 방향을 바라본다. 이를 지켜본 거북이는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닿으며 토끼에게 소리친다.

“잠깐! 토끼야. 우리 그 시원한 바위에서 이야기 좀 하자. 잠시만.”

“뭐야? 큰소리칠 때는 언제고. 너 지금 딴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니야. 어차피 네가 나보다는 빠른데. 뭐 그리 급해. 잠시 나랑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자.”

토끼는 축 늘어진 거북이를 보며 잠시 생각을 하더니 급할 것도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거북이는 토끼의 표정을 읽었는지 이 틈이라 생각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 잠깐이면 되는데. 급할 거 없잖아? 그러니 아까처럼 바위에 앉아서 좀 쉬면서 내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예민한 토끼는 커다란 귀를 세우며 주위를 둘러본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이상한 낌새도 없다는 걸 알고 다시금 바위에 앉는다.

“그래. 네가 말하고 싶은 게 뭔데?”


거북이는 다리를 포개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가파른 숨을 쉬어가며 토끼에게 말한다.

“배고프지 않냐? 어차피 우리는 오늘 중으로 그곳에 도착할 거야. 맞지? 충분한 시간이 있어. 잠시 쉬자고. 좀 허기가 느껴지는데. 피자 한 판 어때? 먹고 가도 나쁠 건 없잖아.”

피자라는 소리에 토끼는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군침이 돌았다. 흰 털로 뒤덮인 자신의 홀쭉한 배를 쳐다보며 만져본다. 거북이는 등 껍질 안쪽에 손을 넣어 스마트폰을 빼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피자집이죠. 여기 검은 큰 바위와 잎사귀가 풍성한 나무 한그루가 있는 언덕인데요. 불고기 피자 큰 걸로 하나 주세요. 토핑은 제가 좋아하는 무지개 버섯으로 해주고, 음... 모차렐라 치즈 빼먹지 말고요. 그리고, 아 맞다. 고구마 무스가 듬뿍 담긴 크러스트도 잊지 마세요. 배고파 쓰러질 지경이니 최대한 빨리 보내주세요.”

거북이는 말이 끝나자 무섭게 스마트폰을 꺼버리고 다시 등 껍질 안쪽 구석에 넣었다. 토끼는 이런 거북이를 유심히 쳐다보며 말했다.

“야. 너는 네 맘대로 하냐? 나는 고구마 싫단 말이야. 거북이 이 녀석 봐라. 지가 먹고 싶은 것만 말하네. 어처구니없네. 이왕이면 마실 것 좀 시키지. 콜라 어때? 빨리 다시 전화해서 콜라 달라고 해.”

거북이는 잠시 멈칫하더니 주섬주섬 등 껍질을 기울이며 다시 스마트폰을 꺼냈다.

“저기 잠시만요. 콜라 1.5리터짜리 추가해 주세요.”

거북이는 귀찮은 듯 다시 스마트폰을 등 껍질 안쪽에 구겨 넣었다.


 
잠시 후, 바람 한 점 없는 초원에서 저 멀리 흙먼지 구름이 춤을 추고 있었다. 작은 구름은 점점 커진다. 자세히 보니 무엇인가 거칠고 빠르게 이쪽으로 달려온다. 거북이와 토끼는 입가에 맺힌 침을 닦아내며 저만치 다가오는 물체를 물끄러미 응시한다. 시커멓고 굵은 앞발에 힘을 줄 때마다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한치의 오차 없이 미리 입력된 신호처럼 반복적으로 앞발과 뒷발이 움직인다. 기다란 머리와 눈썹 위에 검고 윤기 나는 갈퀴가 목덜미를 부딪치며 더욱 빨리 달리라고 채찍질한다. 근육으로 덮인 등과 긴 허리는 빠르게 노를 저어가며 숨겨진 질주 본능을 깨우고 있었다. 그의 피부는 태양에 반사되어서 그런지 유난히 검은 윤기가 빛을 내고 있었다. 점점 속도를 줄이며 멈춰 섰다. 바로 앞에는 아무런 미동 없이 땅바닥에 엎드린 거북이와 다리를 꼬고 바위에 걸터앉은 토끼가 보였다. 그들을 향해 던진 말.

“피자 시키신 거 맞죠?”


거북이가 먼저 검은 말을 향해 고개를 쳐들며 말한다.

“엄청 빨리 오시네요. 정말 대단하네. 근데, 지금은 돈이 없으니 외상으로 합시다. 내  사장님께 전화 하지.”

검은 말은 숨을 거칠게 쉰다. 그리고, 윤기 나는 검은 꼬리를 흔들어 대며 똥 씹은 표정으로 무표정한 거북이에게 말했다.

“아니 외상? 이거 곤란합니다. 사장님께 못 들었는데. 그리고 저 오늘 알바가 처음인데.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급하게 오느라 전화기도 놔두고 왔는데. 피자 식을까 봐 엄청 달려왔는데. 카드 결제됩니다. “

“카드 없어.”

“한 푼도 없으세요?”

“없어. 그러니 피자 주고 그냥 가고, 내가 알아서 사장한테 말할게. 빨리 피자나 내려놓고 가.”

검은 말은 하는 수 없이 피자를 땅바닥에 내려놨다. 뭔가 표정이 일그러진 토끼는 검은 말을 향해 소리친다.

“야! 콜라는 어디 있어? 콜라.”

토끼의 말에 검은 말은 안절부절못하지 못하며 자신의 몸을 훑어본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토끼와 거북이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콜라는 못 들어봤는데요. 시키신 거예요? 콜라는 없는데. 사장님이 급하다고 해서 피자만 들고 바로 달려왔는데. 죄송하지만 콜라는 없어요.”

난처해진 검은 말은 눈을 어디로 둘지 몰랐다.

이와 반대로, 희미한 연기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피자 상자에 냄새를 맡으며 목을 길게 늘이는 거북이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한다.

“그럼 콜라는 안 시킨 거다. 알았으니 그만 가봐.”

“아니. 콜라를 빼먹는 알바가 어디 있어. 어이가 없네. 야! 너 다음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 얼굴만 길어가지고 생각 좀 하고 다녀라. 쯧쯧” 토끼는 혀를 차며 검은 말을 나무랐다.

풀이 죽은 검은 말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저기, 사장님께 꼭 전화해 주세요.”

검은 말은 머리를 재차 흔들며, 오래지 않아 검은 말은 길 쭉 하고 윤기 나는 네 다리를 움직이며 방금 온 길로 내달렸다. 순간 흙먼지가 흩날린다. 거북이와 토끼는 찡그린 표정을 지으며 기침을 하며 힘차게 내달리는 검은 말을 향해 소리쳤다.

“이런. 미친 검은 말. 예의가 없네. 피자에 먼지가... 콜록콜록. 야!” 하지만 검은 말은 벌써 저만치 멀어졌고, 검은 물체는 점점 작아졌다.


토끼와 거북이는 게걸스럽게 피자를 먹는다. 8조각으로 나뉜 피자는 어느새 그들의 뱃속에 들어갔다. 상자에는 남은 피자 한 조각의 향긋한 냄새만 남겨졌다. 거북이는 토끼를 쳐다본다. 붉은 눈과 쫑긋하게 솟아있는 두 귀에 두 개의 커다란 앞니에 고구마 무스가 묻어 있었다. 담백한 맛을 느끼며 토끼는 자신을 쳐다보는 거북이에게 말한다.

“뭘 그렇게 쳐다봐. 얼굴에 뭐 묻었어?”

“어. 아냐. 엄청 배부르지? 이제 한 조각 남았네.”

토끼는 상자에 남은 피자 한 조각을 발견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3조각 먹었으니 그건 내 거야.”

거북이는 토끼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앞 발을 바위 옆 나무를 가리켰다.

“더 먹고 싶으면 잎사귀나 뜯어먹어. 내가 시켰으니 마지막 한 조각은 내 거야.”

“아니 뭐라고. 거북이 네가 시킨 건 맞지만, 똑같이 먹어야지!”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럼 네가 시키지 그래?”

무표정한 거북이를 향해 토끼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거북이의 등 껍데기를 가리켰다.

“야. 너 돈 없는 거 맞아? 지갑이 보이던데.”

거북이는 등 껍질을 흔들 거리며 축 늘어진 목을 꼿꼿이 세운다.

“어이. 토끼. 내가 피자 값을 낸다고 했나? 서로 더치페이(dutch pay)로 해야지. 이거 왜 이래! 정신 나간 토끼야.”

토끼는 뒷 목을 잡고 잠시 하늘을 보더니 목을 비틀며 짜증을 냈다.

“뭐라고? 내가 먹고 싶다고 했냐? 네가 시켰으면 네가 내야지. 어이없네. 처음부터 피자 먹자고 한 녀석은 바로 너라고!”


 
네 다리와 긴 목을 꼿꼿이 세운 거북이와 더욱 붉게 물든 눈동자에 흰털을 꼿꼿이 세운 토끼는 서로를 바라보며 눈싸움을 한다. 잠시 뒤 달콤하고 담백한 냄새 향기가 그들의 경계에서 춤을 추며 긴장된 분위기를 깼다. 유혹하는 피자 냄새는 그들의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거북이는 향기가 나는 쪽으로 스르르 눈을 움직인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토끼는 남은 피자 한 조각을 커다란 두 앞니 앞으로 가져가더니 일체 망설임 없이 한 입에 먹었다.

“욕심 많은 토끼녀석”

거북이는 외마디 한마디와 함께 남은 향긋한 피자 냄새를 맡아본다.


 
토끼는 배가 부른 지 하품을 하며 거북이에게 말했다.

“피자 값은 네가 알아서 하고 나는 이만 갈 테다.”

거북이가 토끼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등 껍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피자집이 분명하다.


 
양 사장은 방금 구워진 피자 한 판을 손에 들고, 또 다른 한 손에는 전화기를 들고는 씩씩대고 있는 검은 말을 보고 있었다. 

“배달 가기 전에는 꼭 주문을 다시 확인해야지. 검은 말 언덕까지 갔다 왔는데 힘들지?”

검은 말은 양 사장에게 미안했다.

“거북이가 그러는데 콜라는 없던 걸로 하겠답니다. 사장님 거북이 전화받나요?”

양 사장은 전화기를 귀에서 떼로 번호를 확인하더니 다시 귀에 갔다 댔다.

“전화를 안 받는군. 피자 값을 못 받았으니 이를 어쩌지?”

검은 말은 자신을 생각해주는 양 사장에게 괜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가 다시 가서 피자 값을 받아 오겠습니다. 양 사장님 죄송합니다.”

“아니야. 전화를 계속해 볼게. 너무 걱정하지 마.”

양 사장은 전화기 넘어 검은 말이 저만치 멀어지는 걸 보았다. 검은 말은 다시 언덕으로 내달렸다. 두 번째 가는 길은 처음보다 익숙했다. 꽤 빠르게 내달렸다.


 
거북이는 전화벨이 울리는 전화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등 껍질 한쪽 구석에 처박아 놨다. 다시는 꺼내지 않을 것 같이 말이다. 이를 지켜보던 토끼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거북이 같으니. 검은 말이 다시 오기 전에 나는 빨리 도망이나 가야겠다. 어이. 거북이 날 이기려면 부지런히 그 짧은 다리를 움직여야 할 거야.”

“야! 피자 값은 내고 가야지. 어딜 가려고 해. 혼자만 도망간다고. 내가 가만 놔둘 것 같아!”

“어쩔 거야? 어디 한 번 따라와 보시지.”

토끼는 거북이가 하는 말도 듣지 않고 언덕 아래로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예민한 두 귀가 자동으로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더니 저 멀리 달려오는 검은 말의 숨소리를 감지했다. 붉은 눈동자에 초조한 얼굴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검은 말의 형체를 따라간다. 검은 말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토끼는 언덕을 내려가기도 전에 검은 말이 이 조용한 언덕에 도착할 것이란 걸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온몸의 흙먼지가 검은 말의 꼬리 뒤편으로 회오리 치듯 사라진다. 언덕에 도착한 검은 말은 앞다리로 꼬리에 머문 흙먼지를 토끼와 거북이를 향해 쏟아 냈다. 토끼와 거북이는 흙먼지에 눈 앞이 깜깜 해지는 걸 느끼며 바로 앞에 있는 검은 말을 향해 거침없이 말했다.

“미친 검은 말. 이거 무슨 짓이야?”

“피자 값 받으러 왔어요. 빨리 주세요.”

거친 숨을 쉬며 검은 말은 충혈된 눈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배 째. 우리는 피자 값 줄 생각이 없어. 콜라를 빼먹었으면 미안할 줄 알아야지!”

흙먼지에 등 껍질 안으로 숨은 모가지를 빼며 거북이가 거침없이 소리쳤다.

“아. 깜짝이야. 제 왜 이래? 거북이 피자 값있어. 저 녀석이 거짓말했어. 그러니 그 녀석한테 받아.”

토끼는 눈을 비비며 거북이를 가리켰다.

검은 말은 거북이를 향해 커다란 콧구멍을 벌리고는 거친 숨소리라 말했다.

“거북이 이 녀석.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거야? 피자 값 빨리 달라고!”

거북이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토끼를 가리켰다.

“내가 시킨 거 아니야. 저 토끼 녀석이 시켰어. 뭘 좀 알고 지껄여. 예의 없이 어디 함부로 나한테 뒤집어쓰려고 하는 거야? 어이 검은 말. 내가 아니라 저 욕심 많은 토끼 녀석이라고!”

“내가? 어이없네. 거북이 너 정말 이럴 거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내가 뭘 전화해! 너야 말로 염치없고 뻔뻔한 욕심 많은 녀석이라고!”

“어이 토끼. 넌 방금 피자 값 낼 생각도 안 하고 도망치려 했잖아. 너야 말로 철면피지.”

“검은 말. 내가 아니야. 저 녀석이 처음부터 피자 먹자고 했다고.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검은 말은 신랄한 대화를 하고 있는 거북이와 토끼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들 쪽으로 전속력을 다해 내달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거북이 등 껍질은 검은 말의 앞 발에 언덕 아래로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이를 지켜본 토끼는 힘 있는 뒷발로 바위를 점프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거친 숨소리를 내며 검은 말을 자신의 긴 얼굴과 머리로 토끼의 꼬리 쪽을 박았다. 토끼는 중심을 잃고 우두커니 서 있던 나뭇가지에 부딪치며 언덕 아래로 고꾸라졌다.

“욕심 많은 녀석들. 어디 나를 골탕 먹이려고.”

분을 참지 못한 검은 말을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다시 꼬리를 흔들며 오던 길을 돌아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 속 토끼와 거북이는 경주를 한다. 처음부터 육체와 감각이 타고난 토끼는 큰 어려움 없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쉽게 달려간다. 하지만, 거북이는 토끼에 비해 너무 느리고 나약한 존재다. 동화에서 말하는 메시지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토끼처럼 거만하지 말고, 거북이처럼 우두커니 열심히 달려가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쓸데없는 작은 의문이 생긴다. <왜 경주를 하는 것인가?> 답을 추측해 본다.


경주라는 인생의 길에서 우리는 거북이보다 토끼가 되길 원한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육체는 바꿀 수 없다.  거북이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경주는 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머릿속에 뻔한 질문 하나가 생긴다. <왜 경주를 해야 해?> 경주를 할 필요가 있을까. 굳이 왜 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우리는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경주를 해야 하는 현실에 놓였을지 모른다. 돌이킬 수 없고 거부할 수 없는 필수 불가결한 현실. 우리는 경쟁해야 한다.


동화를 통해서 우리는 거북이가 착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토끼와 경쟁하는 거북이는 분명 욕심이 있다. 이길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 왜 토끼와 경쟁하겠는가. 또한 토끼도 마찬가지다. 거북이와 경주를 하면 분명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뻔히 알고 있으면서 거북이를 놀리고 심지어 거북이를 상대로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내가 보는 이 두 마리의 존재는 욕심이다. 우리도 경주라는 인생의 길에서 욕심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길 수 없는 혹은 이길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 아닐까. 나의 욕심으로 검은 말과 같이 누군가 피해를 보게 될 수도 있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욕심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닐는지 돌이켜 보고 싶다.



이야기를 더 만들고 싶다. 하지만 능력이 부족하다.


[illustrated by 김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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