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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Aug 20. 2019

첫 강의를 준비하는 그대에게

점심시간, 열심히 강의 준비하는 후임의 지친 어깨가 보인다. 기다란 책상에 널브러진 책과 자료들이 가득하다. 보기만 해도 머리가 어지럽다. 어깨너머로 한 숨이 들려온다. 하지만 어쩌랴~ 주사위는 던져졌고, 강의는 해야 한다. 그런 후임의 모습을 보니 지난 2017년 딱 이날이 기억난다. 부끄럽지만 내 이야기를 조금 들려주고 싶다.


강의 준비 기간은 약 3개월 정도였다. 빠듯한 시간도 잠시, 코 앞으로 다가온 첫 수업을 생각하니 초조함이 이루 말도 못 했다. 속된 말로 똥줄이 탔다. 사실 수업 첫날까지 강의 자료를 다 끝내지 못했다. 내용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어쩔 수 없이 수업을 진행하면서 짬짬이 만들 수밖에 없었다. 수업과 강의 준비를 병행한 샘이다.


사실, 강의 자료를 만들 시간은 충분했다. 문제는 막히는 내용이 너무 많았다. 내가 알던 내용과 교재에 나온 내용이 일치하지 않아서다. 원서를 찾아보고 논문을 확인했다. 기존에 알던 내용이 정리되고 새롭게 정보를 습득했다. 나는 이 과정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이유는 부정확한 내용으로 인하여 학생들에게 잘 못된 정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정보의 오류에 대하여 고민했던 것이다. 당연 강의 자료를 만드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태까지 알던 지식이 잘못된 것도 수두룩 했다. 그때도 지금도 난 이렇게 생각한다. '박사는 개뿔! 이것도 모르는데. 강의는 무슨 개뿔!' 나에게 강의 준비는 곧 나의 무지를 알게 해 줬다.


고민이 깊었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느꼈다. 하지만 강의 준비를 하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하나하나 찾아보고 수정하고 다시 공부해보니 해 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이내 초조한 마음이 설렘으로 바뀌었다.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알아보자는 목표도 생겼다. 나의 작은 노력이 이 지루하고 싫어하는 과목을 재미있게 만들 수 있기를 희망했다.


<최고의 교수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갖게 되면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름 겸임교수인데 적어도 세계 최고 석학의 조언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찾아보고 또 찾아봤다. 다행히 유튜브에서 EBS 다큐멘터리 "최고의 교수" 영상을 보며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갔다. 아직도 제대로 된 답을 얻지 못했지만 "최고의 교수"에서 그들이 하던 교수법을 조금 가져와도 될 것 같았다. 최고의 교수들 중 딱 세 분의 말이 인상 깊었고 이 자리를 빌려 내가 느낀 바를 적어 봤다.


마이클 샌들 교수
"최고의 교수들은 늘 공부하는 사람들이며, 교수는 결국 '학생을 가르치는 학생' 일 뿐이다."

교수라고 어깨에 힘주고 다니지 말라. 교수가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다. 아무리 준비해도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기 곤란한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면 의뢰 교수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학생의 입장에서 공부하고 알려주는 게 맞다. 교수의 자존심만 버리면 언제든지 학생과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생보다 공부를 더 해야 하는 부담감과 정신적 피곤함은 감소해야 한다. 오히려 학생들이 더 잘 아는 경우가 많다. 가령 내가 준비한 강의 자료에 오타를 발견하고 이야기해 주는 경우다. 내가 무조건 옳다고 판단하는 순간 교수라는 자리가 부끄러워질 수 있다. 아는 척하는 실력 없는 교수는 학생들의 질문 몇 마디에 바로 들통나기 때문이다.


조벽 교수
"수업 시작 10분 전이면 어김없이 강의실에 도착해 프로젝터로 칠판에 학습 목표를 띄워 놓는다."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수업은 일회성이 아니다. 이미 학습목표가 정해져 있고 우리는 이를 위해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계획한 대로 수업에 적용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반대로 수업 준비를 못하면 나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수업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진다. 말 그대로 시간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다. 비싼 등록금 내고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수업은 계획만큼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계획한 대로 마치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가령 수업 준비를 제대로 못하면 내용 전달도 문제이지만 시간이 남는 경우가 발생한다. 수업을 빨리 끝내면 학생들은 좋겠지만 정해진 시간이 있기에 바로 수업을 종료할 수도 없다. 그럼 쓸데없이 사적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직장과 인생 선배로서 조언이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주제에서 벗어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시간이 남으면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날에 학습 목표를 제대로 인지하고 계획한 대로 잘 진행하는 게 최선인 것 같다.


골드스타인 교수
"나는 교과서만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교과서로만 가르친다면 학생들은 나를 만날 필요가 없다."

교재만 읽어주는 교수가 있다. 내가 학생일 때도 분명 이런 교수가 있었다. 교수인 내 귀에서 학생들의 입을 통해 듣게 된다. 부끄러운 일이다. 남는 게 조금도 없다고 생각한다. 책에 밑줄 긋고 몇 마디 툭 던지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오히려 조용한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며 독학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교재는 참고서다. 꼭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교재만 읽는 수업은 이론과 실기를 이해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재에 있는 핵을 파악하고 기사, 논문, 동영상 등 최신자료를 찾아 학습 효과를 높일 필요가 있다. 전공에 맞게 다채로운 교수법을 입맛에 맞게 골라 수업에 적용하면 된다. 이 부분은 교수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답이 없다. 그래도 골드스타인 교수가 수업하는 영상을 보면 정말 재미있다. 자유롭다. 집중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똑같이 할 수는 없지만 비슷하게 따라가더라도 학생들의 반응은 전과 사뭇 다를 것이다.


나의 작은 경험으로 최고의 교수를 논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수십 년간 고민한 교수들에 비하면 난 아주 작은 애벌레 수준이다. 부끄러움을 마다하고 이렇게 내 경험을 적어본 것은 적어도 처음 강의를 시작하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라 믿어서다. 최고의 교수들이 언급한 모든 것을 관심 있게 찾아볼 필요가 있다. 시간만 때우거나 강의료만 챙기려는 심보를 가진 자에게는 이런 말들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최소한 배움이라는 공간에서 적어도 학생들에게 욕먹어서는 안 된다. 노력해야 한다. 부끄러운 자신이 되지 않는 자에게는 필요한 조언일 테니.


수업을 진행하면서 영상과 글을 통해 최고의 교수가 이야기한 조언을 보고 또 봤다. 나는 아직도 멀었다. 언제 강의를 끝낼지도 모르지만 자연스레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있다. 기억력이 좋지 않아 나름대로 종합적으로 해석해 한 단어로 응축해 정해봤다.

<관심>

이 단어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과도한 명예욕, 권위의식, 여학생의 치맛자락, 돈 등에 관심을 갖는다면 분명 결과는 뻔하다. 피교육생인 학생은 뒷전에 밀려 날 것이며 수업을 떠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러운 본색이 드러 것이다. 누가 봐도 부정적인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은 당장 표면으로 올라오지 않는다. 하지만 훗날 제자들의 입에 좋은 소리는 기대하기 힘들지 않을까? 이와 반대로 철저한 강의 준비, 소통, 질문과 토론, 상호 존중 등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학생들의 정신과 인생에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학생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적어도 자신을 믿어주는 교수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학생들은 배움의 즐거움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작은 희망이라는 씨앗을 뿌릴 수 있지 않을까.


첫 강의를 시작하게 된 후임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부디 <관심>을 어디에 둘 것인지 미리 정하고 노력하길 바란다.

강의가 짧을 수도 있지만 학생들에게 욕먹는 교육자가 되지 않길 바란다.

좋은 수업에 대한 고민과 학생에 대한 관심만이 그대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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