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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Aug 23. 2019

수육 한 점

무더운 한여름에 찾아온 복날이다. 몸보신이 필요하다. 기력이 없어 숨쉬기가 힘들다. 여느 식당에 가서 삼계탕 한 그릇 먹기도 버겁다. 그래서 오늘은 집에서 수육을 준비했다. 레시피를 확인하고 돼지 목살 2근을 샀다. 찬물에 핏기를 씻어내고 끓는 물에 담갔다. 요리를 잘 못해서 가급적 간단히 하고 싶었다. 된장 두 숟가락을 넣고 아내가 준비한 양파와 사과를 넣었다. 어느새 집이 후끈 달궈졌다.


더운 집안 열기에 에어컨을 켤 때쯤 아버지와 어머니가 집으로 들어오셨다. 나는 베란다에 큰 상을 꺼내고 2시간 삶은 수육이 담긴 냄비 뚜껑을 열었다. 구수한 된장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먹음직스럽게 잘 삶아졌다. 한 덩이씩 꺼내 먹기 좋게 썰어 희고 윤기 나는 그릇에 고이 담았다. 옆에 있던 아내와 아이들은 밥그릇과 반찬을 준비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육 한 점이 아버지 입 속으로 들어갔다. 옆에 있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작은 접시에 먹기 좋게 자른 수육을 아이들 앞에 줬다. 행복한 미소와 함께 어린 녀석들은 맛있게 먹는다. 나도 수육 한 점을 집어 쌈장에 찍어 한 입 먹었다. 고소한 고기 맛과 향긋한 된장 냄새가 입에 살살 녹는다.


고기 한 점을 오랫동안 씹고 계시던 아버지를 봤다. 오른손에 쥐어진 젓가락 너머로 앙상한 뼈만 남은 팔뚝과 어깨가 보였다. 무더운 여름에 지친 핏기 없는 얼굴은 지난 4개월 동안 있었던 흔적과 같았다. 앞에 놓인 수육 한 점을 보며 가족과 함께 먹는 저녁 밥상이 그토록 소중하게 느껴졌다.


알코올 냄새가 가득한 방 저편에 창가 너머로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힘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봤다. 주렁주렁 매달린 수액줄에 팔뚝에는 주삿바늘이 훑고 지나간 흔적들이 보인다. 배를 움켜쥐고 힘없이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아버지 얼굴이 보였다. 고통스럽다. 담도암 판정을 받고 9시간 동안 수술대 있었을 그의 몸은 이미 죽은 자였다. 나는 해 줄게 없었다. 그냥 그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제법 수술 경과가 좋아서 항암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의료진의 말에 따르면 원체 건장하시고 기력이 좋으셔서 잘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암 판정을 받고 수술하고 그 이후까지 수많은 시간 동안 음식을 드시지 못했다. 전에 봤던 건강한 아버지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지금 모습은 줄어든 몸무게에 앙상하게 뼈만 남은 팔다리가 전부다.


수육 한 점을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 다행이다. 소중하다. 행복해야 한다. 어머니도 잘 드신다. 가족 중에 누군가 아프면 모두가 아프다고 한다. 병은 전파되고 마음은 힘들고 피폐해진다. 작은 접시 안에 담긴 수육 한 점이 가족의 건강 한 점이 되길 바란다. 주말을 보내고 또다시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 갈길이 멀다. 완치를 바랄 수 없는 암이지만 버틸 수 있도록 무엇인가 해야 한다. 작지만 소화가 잘 된 고기 한 점 드릴 수 있는 시간이 많길 바랄 뿐이다. 다행히 아버지는 맛나게 드시고 계시다. 아이들도 그런 할아버지 모습을 보며 입을 오물거린다. 무더운 여름 복날에 좋은 식당에 가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집에서 오손도손 집밥을 먹는 게 참 행복이다.


[메인사진 출처: http://famtimes.co.kr/news/view/107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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