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 없는 이십대의 광고회사 취업기 #6 입대부터 제대까지
오랜만에 돌아와 염치가 없다. 입대를 앞둔다는 말과 함께 3개월 정도를 사라져 있었다. 어떤 일이 생길 지 알 수 없는 게 광고의 매력이니 모쪼록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사실 한동안 1년 8개월의 군생활을 적어내려가야 할지, 슬며시 넘겨야 할 지 고민이 많았다. 광고는 트렌디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트렌드는 커녕 바깥의 소식조차 들을 수가 없는 날들이었다. 입대하던 그 때만 해도 군대 내에서 핸드폰은 쓸 수 없었고, 따듯한 봄의 입대일이 다가올 수록 초조한 마음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죽이기만 반복했다.
다른 이야기를 왈가왈부 늘어놓지는 않으려 한다. 군대 이야기만큼 본인만 재미있는 이야기도 없고, 어느덧 예비군 3년차가 된 지금, 기억은 불확실한만큼 각색되었으리라 믿는다. 그저 육백 일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얻은 몇 가지만 이야기 하려 한다.
첫번째로 나는 광고 기획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24시간 통제받는 삶이 편할 수는 없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름 안정감 있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정해진 건 수업시간 밖에 없었다. 비는 시간에 팀플이나 과제, 몇 개의 대외활동을 욱여넣고 나면, 모자란 잠을 보충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운 좋게도, 일정한 시간에 업무가 끝나는 보직을 맡아 6시에 일어나고 10시에 잠드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오후 6시면 할 일이 끝나고 두 시간 정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구질구질하게 사람들에게 연락을 보내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행복했다면 이상하게 바라볼까.
군대의 일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해내고 나면 눈 앞에 결과가 보였다. 배수로를 만들거나, 낙엽을 쓸거나, 예초를 하는 소모적인 일에서 묘한 행복을 느꼈다. 아이러니하게도, 광고를 배우는 동안은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그 때 알았다. 아, 나는 광고 기획은 못하겠다.
두 번째는 꾸준히 하면 뭐라도 된다는 점이다. 매일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뭐 그런 걸 하냐고 비아냥대는 사람이 있었고, 중간엔 행동의 이유를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말미엔 다들 익숙해했다. 그렇게 하루가 모여, 25kg을 감량했고, 150권의 책을 읽고, 수백 편의 글을 썼다.
마지막으로, 나는 참 고집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앞에 쓴 이야기들이 너무 교훈적인 데다가, 이상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까지 해 사실은 놈팽이에 가깝다는 폭로를 하려 한다. 입대하고 사람들한테 버려지는 게 두려워, 전화 달라고 문자를 보낼 수 밖에 없는 휴대폰으로 여기저기 문자를 보내는 짓도 일삼았고, 편지를 써주지 않은 사람들이 괜히 밉기도 했다.
일처리는 확실해야 하고, 정해놓은 규칙에서 벗어나는 일이 싫어 전역 전날 까지도 관물대의 각을 잡았다. 집합 5분 전엔 항상 나가있었고, 같이 일하는 후배들은 참 불편했구나 싶다. 그만큼 팀원으로는 괜찮을 지 몰라도 팀장으로는 스스로도 고개를 갸웃 거릴 수 밖에 없는 까탈스러운 인간이었다.
그 와중에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와 광고에 대한 애증이 겹쳐져, 광고학과의 학술제를 보기 위해 휴가를 나갔다. 목, 금 이틀간 진행되는 행사를 관람하고 토요일에 복귀하는 아주 짧은 일정이었다. 까까머리를 한 채, 동기인 친구들이 무대 앞에서 발표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는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함께, 내년에 나도 해볼까 하는 마음이 불현듯 솟았다.
다만, 이 모든 결정은 열정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어떤 행동은 애증에 가깝고, 대부분의 행동은 열등감과 부러움 때문이다. 나보다 먼저 저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부러워, 나도 하고 싶어 정도의 단순한 고집이랄까.
그래서 결국 팀장의 자리에서, 무대에 올라 발표를 했을까. 이건 다음 글을 위한 궁금증으로 남겨두고, 그 전에 다음 글이 더 암울할 수도 있다는 점에 미리 양해를 구한다. 취업을 준비하는 3,4학년의 이야기인 데다가, 여전히 광고를 포기하겠다는 말을 가득 적을 예정이다.
아무튼 까까머리 남자애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그보다 한 발 먼저 역병이 돌아올 지는 예상치 못했건만,
역시 할 수 있는 건 걸음을 내딛는 일 뿐이었다.
ps. 오래전 이야기인데다가, 군대 이야기인 이유로...적당한 사진이 없었다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