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종현 Feb 24. 2022

어쩌다보니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창의력 없는 이십대의 광고회사 취업기 #5 대학교 2학년 2학기

기획서를 쓰기 위한 모든 시간이 기억나진 않는다는 점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생생한 몇 장면이 기억속에 남아있지만, 그 사이 기억은 연필로 그린 그림을 손으로 문질러 지운 것 마냥 뿌옇다. 그럼에도 아주 천천히 짚어가며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사실, 긴 글을 쓰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다.


기획서를 쓰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가장 큰 문제가 된 점은, 스물 두 명이나 되는 인원 수였다. 손에 꼽게 많은 사람이 모여,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바꾸어 말하면 한 가지 안건에 대해 스물 두 개의 의견이 나온다는 말이다. 그 속에서 하나의 기획서를 완성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단순하게, 스물 두 명이 팀플을 한다면 조금 와 닿으려나.


아주 애매한 입장에 서 있었다. 학술제를 겪어 보았으니, 이 시점에서 이 정도의 진행상황이 나와야, 발표 연습을 할 수 있을텐데, 모여서 회의를 진행하면, 항상 저번 시간까지 합의한 내용이 바뀌기 일수였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회의를 잠시 못나온 친구들은 돌아와서 회의 내용에 의문을 품었다. 제자리 걸음이면 다행이련만, 자꾸 뒤로 후퇴하는 느낌이 들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시점이었다. 낮에는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시간을 내 과제를 하고, 밤에는 모여서 학술제를 준비했다. 주말은 반납한지 오래였다. 후배들은 모르지만, 고학년, 그 중에서도 팀장을 포함한 몇 명은 회의가 끝나고도 모여서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다듬었다. 함께 마신 커피가 몇 잔인지 셀 수 없을만큼 쌓이고, 그만큼 피로도 축적되어 갔다.


그 당시 칠판에 적었던 기획서 흐름. 사실 단어 맞추기 할 때 더 많이 썼다.


여전히 문제는 기획서의 방향이 너무 모호하다는 점이었다. 이십대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캠페인을 목표로 하는 기획서, 그 속에서 브랜드를 녹이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기획서의 방향이 변하는 만큼 시시각각 변하는 이십대 초반의 고민을 자신만의 언어로 녹일만한 깜냥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살아남기 바쁜 대학생활이었다. 학술제에 참여한 기업에서도 모호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그 공백을 학생들의 시간으로 채우는 느낌이랄까. 가끔 회의를 하다 '만약에 수상 못했는데, 비슷한 아이디어를 들고 나오면 고소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아쉽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맘때 흡연을 시작했다. 장장 여섯시간동안 진행되는 회의 속에서 잠깐 주어지는 쉬는 시간에 도무지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코인노래방에 홀리듯 다니고 있었지만, 몇 분 사이에 노래방을 왕복할 수는 없었다. 아주 단순하고 간결한 해방구가 필요했다. 선배 중 한 사람에게 담배를 빌려, 불을 붙이고 한숨을 내뱉었다.


시간은 지나고 학술제는 가까워졌다. 수능 날짜가 가까워진다는 말이기도 했고, 겨울이 다가온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충 후드에 롱패딩 하나를 걸치고 단과대 건물을 배회하는 날들이었다. 어떻게든 기획서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새벽까지 함께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척이나 춥던 그 단 한장면을 아주 또렷하게 기억한다. 빼빼로데이 근처로 기억한다. 갈색 후드티에 아이보리색 바지를 입고 왔던 날, 후배 몇 명이 빼빼로처럼 입었다며 놀리고, 새벽 세 시가 조금 넘은 시점에서 피곤해 하는 아이들과 내일 오전 수업이 있는 아이들을 먼저 보내기로 했다.


자연스레 회의가 마무리 되는 분위기였으나, 사실 기획서는 한참 모자란 시점이었다. 가뜩이나 선배들과 후배들의 의견이 엇갈려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채 헤어진 걸로 기억한다. 본인을 포함해 네 명 정도가 남아 회의 내용을 다잡으려 했고, 그 전에 바람이나 쐴 겸 후배들을 데려다 주기로 했다. 다른 두명은 이 시간에 회의할 곳이 있나 확인해보러 나갔던가. 회의실엔 팀장님만 남아있었다.


겨우 팀원인 내가 이러고 있는데, 팀장님은 얼마나 힘든가 싶었다.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했었나. 나갔다 오는 길에 바나나우유를 사갔다. 해줄 수 있는 일은 그것 뿐이었다. 팀장님은 그걸 받아들고는 뭐 이런 걸 사왔냐며 타박하다 눈물을 흘렸다. 그 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 여전히 그 힘듦의 깊이는 짐작할 수가 없다. 아니, 짐작하려는 노력조차 하기 두렵다.


결국 우리는 기획서를 만들어냈다. 물론 순서를 이리저리 바꾸길 반복해 조악해 보일 순 있지만, 그 당시 스물 두 명이 모여서 만들어 낸 최선이었다. 이번에는 여러 시안을 만들었다. 그래도 어디 내놓을 정도는 되는 퀄리티였고, 나름 자신도 있었다. 자랑스럽다기보단, 일 인분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술제 팜플릿. 벌써 5년 전 사진이다.


학술제 당일이 다가왔고, 팀장님은 오백 명 앞에 서서 발표를 마쳤다. 그 때 팀장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모든 과정과 고난을 짊어지고, 마무리를 하는 선배의 모습이 너무 빛났다. 천 개의 눈빛이 한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무대 위에서, 한 사람으로서 한 팀의 몫을 해내는 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


문제는 항상 결과에 있었다. 그 해에도 우린 상을 받지 못했고, 기쁨 대신 아쉬움을 나눴다. 물론 뿌듯한 마음은 있었지만, 내겐 한 가지 꼬리표가 따라 붙는 듯 했다. 네 팀 중 두 팀에게 상을 수여하는 방식이었기에, 이 년 연속으로 상을 받지 못한 건 우리 학년에서 내가 거의 유일했다. 그 때가 가장 슬펐다.


상복이 없다는 말이 내겐 능력이 없다는 말로 들렸다. 그렇게 노력해서 시안도 만들고, 회의록도 작성하고, 기획서도 완성했는데 돌아오는 건 언제나 위로 뿐이었다. 위로보다 칭찬이 고팠다. 물론 스스로도 하지 않은 칭찬을 누군가 건넬리 없었다.


이 대상 없는 열등감을 가진 채,

스물 한 살의 겨울.

입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어쩌다보니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