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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현 Feb 21. 2022

어쩌다보니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창의력 없는 이십대의 광고회사 취업기 #4 대학교 2학년 1학기

2017년이 다가오는 와중, 가장 큰 목표는 포토샵 다루기였다. 정확히는 기획서에 들어갈 시안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기르기로 했다.  그 와중에 물어볼 이가 없어 유튜브에서 강의를 찾아 무작정 듣고 따라 하길 반복했다. 끈기 없는 사람은 쉽게 타올랐다 사그라들었다. 열망은 생각보다 쉽게 사그라들더라. 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나의 성장 동력은 언제나 스스로가 아닌 타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다른 이가 좋아한다는 가수의 앨범 커버를 이용해 합성을 연습하고, 한창 페이스북에 합성 부탁드립니다. 하는 글이 유행할 때 사진을 가져다 혼자 열심히 연습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가끔 좋은 반응이 나오면 그 말을 성장동력 삼아 나아갔다. 포토샵 단축키가 익숙해져 피피티를 켜고 버벅거릴 때 즈음, 포토샵을 조금 할 수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름 열심히 만든 광고 시안. 지금와서 보니 부끄럽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며, 학교에도 새로운 소속을 두기로 했다. 일 학년 때 학회나 동아리 하나 들지 않은 걸 후회했지만서도, 그 덕분에 조용히 잘 지낼 수 있었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일 학년 학회에 들기엔 이미 동기들이 회장직을 맡기 시작했고, 아는 후배도 없는지라 괜히 일 학년들 사이에 끼이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다.


대신 고학년 학회로 눈을 돌렸다. 고학년이라고 해봤자 이 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학회였다. 토론, 카피라이팅, 디자인 학회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예측 가능할 만큼 뻔하게, 토론 학회에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역시 대학은 지식의 요람이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해봐야지 하는 지적 허영심과 함께,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이들이 사회 문제를 어떻게 대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일종의 오만에 가깝다. 법학과를 희망한 나는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익숙하지만, 광고에 관심을 가지고, 디자인을 연구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일에 치중한 사람들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없으리라는 어림짐작이었다. 다만, 그 오만을 쉽게 깨 부술 수는 없었다. 그 해에 학회에 새로 들어온 이 학년은 본인 한 명뿐이었고, 이미 14학번이 세 번째 돌아가며 회장단을 맡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그곳에 스스럼없이 발을 내디딘 본인도 문제가 없다고 보긴 힘들다.


그럼에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이유는, 광고학과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한 순간도 괴짜가 아닌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백조들 사이의 오리, 아니 갈대 정도였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학교에 소속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저 태어난 김에 살아가듯, 입학한 김에 다녔을 뿐이다.


학회 개인 발표. 솔직하긴 한데, PPT 비율이 왜저러지.


이 선택으로 인해, 나는 광고과에서 또 일 년을 보냈다. 무슨 이야긴가 하면, 학회의 선배들은 괴짜를 품고도 남을 만큼 좋은 이들이었으며, 덕분에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토론이 끝나면 혼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실명을 직접 이야기하긴 뭐하지만, 그때의 선배들 덕분에 많이 배우고, 성장하면서도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관심받는 막내였고, 어디에 자랑할 만큼 대단한 선배들이 있다는 사실이 학교를 즐겁게 다니게 했다.


선배들은 모르겠지만, 동기들에게 학회를 자랑하기도 하고, 능력자인 선배들을 자랑하기도 했다. 나는 능력이 없지만 선배들은 다르다는 일종의 위안이었나 싶다. 실제로 선배들은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이들이었고, 가끔 진행되는 개인 발표나 팀 발표를 볼 때면 속으로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자료 공유를 위해 올려둔 발표자료를 보고, 알음알음 디자인을 따라 하던 날들이 있었다.


벚꽃이 피었다 지는 찰나가 지나고, 학술제 팀원 모집 기간이 다가왔다. 학술제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그다음 해의 팀장들이 나오고, 새로운 후배들이 들어왔다. 2016년에 함께 팀을 맺었던 선배가 팀장으로 나선다기에, 큰 고민 없이 팀원에 이름을 올렸다. 처음부터 마음속으로 정해둔 선배였지만, 놀리기 위해 밀당하는 척을 했다.


그 밑으로 열몇 명의 이름이 적히고, 스물두 명이나 되는 큰 팀이 만들어졌다. 팀장 선배는 의지할 수 있는 동기 몇 명과 함께 하기로 약속한 터였고, 새로운 후배들은 팀의 기반을 이루었다. 이번에는 새내기와 팀장 사이에서 조율해야 하는 역할을 맡았다.


누군가가 정해준 건 아니지만, 그 당시 내 마음가짐은 그랬다. 후배들에게는 편하게, 선배들에게는 누가 되지 않게, 즐겁게 회의했으면 했다. 물론 태생적으로 재미없는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는 벽은 있었지만, 나름 최선을 다 했다. 서기를 맡아 회의록을 정리하면서, 팀원들의 이름도 가장 먼저 외웠다. 아 물론, 팀장님이 가장 먼저 외웠겠지만.


일 학년 때보다는 수월하게 진행되는 듯싶었다. 수업도 열심히 들었고, 학회 활동도 열심히 했고, 모쪼록 완벽에 가까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물론 가끔 피곤에 절어 몸이 무너지기도 했지만, 그 순간마저도 즐거웠다. 물론 광고가 재미있었다기보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순간이.


그러나, 광고학과의 꽃은 언제나 학술제 당일.

학술제의 꽃은 항상 기획서를 쓰는 일.

기획서란 여럿이 모여 시간을 쏟는 과정.

그 과정의 무게를 오롯이 견뎌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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