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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현 Feb 14. 2022

어쩌다보니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창의력 없는 이십대의 광고회사 취업기 #3 대학교 1학년 2학기


첫 여름 방학을 앞두고 학술제를 위해 자주 모임을 가졌다. 팀원과 이어지는 한 학기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단은 친해지자는 취지이기도 했다. 물론, 숫기 없는 청일점이 먼저 내뱉을 말이 얼마나 될까. 그냥 조용히 분위기를 지켜보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이끌어 가는 팀장님이 참 힘들었겠구나 싶다. 다만 그건 본인 스스로의 생존 전략이었다.


그 새 몇 번의 모임을 거치고, 어느 정도 말을 터 놓은 상태에서 처음으로 기획서를 쓰기로 했다. 다른 이들은 어떨 지 모르지만 처음쓰는 기획서에 불안을 먼저 느꼈다. 마침 알맞은 공모전이 있어 여덟 사람을 네 사람 씩 두 팀으로 나누었다. 일 학년 세명과 삼 학년 한 명. 클라이언트는 안과였던 걸로 기억하지만, 구체적인 목표까진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기획서 감각을 익히기 위해 가끔 한 번씩 모여 다른 공모전의 수상작을 분석하고, 각자 팀의 진행 상황을 공유했다.


세븐일레븐 수상작 분석...민망하다...


다만, 여느 공모전이 그렇듯 진도는 나가지 않고 마감일은 다가왔다. 몇개의 수상작을 분석했으나, 광고 기획서 자체를 처음 본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았다. 다른 동기들이 구조가 짜임새 있다거나, 캠페인이 기존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기획서가 무슨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기존의 캠페인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전혀 몰랐다.


결국 디자인이 예쁘다 라거나 하는 쓸모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나중에 팀장님이었던 선배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이 막막했다는 오프 더 레코드를 듣기도 했다. 하긴 나라도 그랬겠다. 공모전 마감까지 일주일 남짓 남았을 때, 피피티를 만들기 시작했다. 포토샵도 할 줄 모르고, 기획서도 써 본적 없는 일학년이 할 수 있는 일은 자료조사나 디자인 레퍼런스를 찾는 일이었다.


마감 일정에 맞춰 겨우 기획서를 써 냈던 걸로 기억한다. 삼학년이던 선배가 피피티 디자인도 하고, 시안 작업도 맡아서 했다. 기획서 흐름도 중간중간 손보았으니, 사실상 그 분이 혼자 쓴 기획서에 가까웠다. 그 당시엔 기획서 하나를 겨우 완성했다는 뿌듯함보다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마음이 더 컸다. 광고를 꿈꾸진 않지만, 어떤 역할이든 일인분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 스스로를 괴롭게 했다. 다시 하나의 팀으로 돌아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친구들은 그 사이 많은 발전을 이룬 것 같은데, 점점 뒤쳐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술제를 앞두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가끔은 늦은 시간까지 회의를 하기도 했고, 서로 스트레스로 가득 차 짜증 섞인 말을 내뱉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생활 습관이 고장났는지 하루는 팀플을 하던 중간에 하얀 노트북 위로 코피를 뚝뚝 떨어뜨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모니터를 본 채 회의록을 적고 있다 주변에서 놀라는 소리에 새빨갛게 물은 자판을 마주한 순간이 떠오른다. 팀장 선배가 당황해 토끼눈을 하고는, 병원을 가야 하지 않냐 되물었다. 


그 이후로 다른 팀에 청일점에 피곤하고 아픈 아이로 소문이 났다고 알고 있다. 과 생활은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나름 수업에서의 팀플이나 발표는 그럭저럭 해냈고, 이름 정도는 아는 이들도 많이 늘어난 시점이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다른 팀이나 사람들이 본인을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웃사이더가 하기엔 과분한 생각이기도 했고, 그 당시엔 맡은 몫을 해내는 게 가장 큰 걱정이었다.


여덟명의 목소리가 모여 조금씩 기획서의 모습이 갖춰져 가면서도 불안은 여전했다. 기존에 봐 오던 여러 수상작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해결책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고 있다. 다만, 그 때는 노력과 말 그대로 피 땀 섞인 피피티에 마음이 쓰여 괜한 불안이라고 생각하고 넘겼을 뿐이다. 그렇게 학술제 당일은 다가왔고, 행사는 마침 11월 둘째 주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간에 걸쳐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시다시피 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하필 행사 첫 날인 목요일에 발표 일정이 잡혀있었다. 물론 팀원에 일학년인 본인이 직접 발표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기획서가 뭐라고 수능장으로 발걸음을 내딛지를 못했다. 팀장 선배에게도 수능 때문에 참석 못할 것 같다고 몇 번을 말하려다, 조용히 속으로 말을 삼켰다. 정확히 말하면, 마감을 위해 날을 새고 기획서를 수정했기에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했다. 아, 팀플이 진행되는 새벽 이야기를 빼먹었는데, 사실 그 시간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마감 전날 밤, 학교 도서관 팀플실에서 우리는 모두 모여 기획서의 마무리를 다듬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더이상 바꿀 수 없는 구조는 합리화하고, 자연스럽게 몇 장의 순서를 이리저리 바꾸는 정도였다. 팀장님은 바로 옆에서 대본 작업을 진행했고, 다른 선배 두 분은 피피티 후반부에 들어갈 시안을 작업하고 있었다. 무능한 일학년은 선배들에게 필요한 디자인 소스를 찾아주고, 팀장님이 쓴 대본의 오탈자나, 이상한 흐름을 바로잡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였다.


여전히 그 때만 생각하면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포토샵이라도 할 줄 알면, 피피티 디자인이라도 할 줄 알면 선배들이 이렇게까지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텐데, 나는 모든 걸 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욕심이고 자만임을 알면서도, 그러고 싶다.' 라는 생각을 품었다. 혼자 기획서를 쓸 수 있을 만큼 능력이 있으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선배들을 돕는 와중 아무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품었다.


글이 점점 길어지지만, 얼마 남지 않았으니 다 적고자 한다. 그 날의 발표를 구체적으로 그릴 순 없지만, 대략적인 분위기와 여러 일을 기억한다. 아무튼, 우리 팀은 그 날 상을 받지 못했고, 술자리에선 깔깔대는 웃음 내신 아쉬움과 서로의 고단함에 대한 눈물을 쏟았다. 팀들 사이에 수준 차이가 있었다기보다는 어떤 해결책이 더 명료했는가가 판단의 기준이 아니었을까 싶다.


선배가 건네준 엽서. 우리의 팀 명은 '세상말새'


내가 울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미 술에 취해 있었고, 밤을 새며 보낸 그 긴 시간과, 중간중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그 모든 걸 견디고 함께 이 자리에 앉아있는 순간이 행복할 따름이었다. 아쉽긴 하지만, 결국 남는 건 상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언젠가 팀장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를 품었다.


해는 일찍 지고, 눈이 내리기 시작할 즈음.

거리의 캐롤과 함께 첫 겨울방학이 찾아왔다.

스물 하나를 앞둔 스무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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