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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현 Feb 11. 2022

어쩌다보니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창의력 없는 이십대의 광고회사 취업기 #1 고등학교


처음부터 광고를 할 생각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광고업계에는 발을 들이지도 않으리라는 다짐을 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려나. 교복을 새 것으로 바꿔 입던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세운 단 하나의 목표는 법대 진학이었다. 변호사나 검사, 판사, 문과 계열의 꽃이라 불리는 사짜 직업, 문과라면 그 정도 꿈은 꾸어야 한다는 희망을 품었다. 솔직히 말하면 쉽게 이룰 수 있을 거라 착각한 어리석은 시절이었다.


가장 먼저, 법학 동아리에 들었다. 최근 시사에 대해 토론하고, 대법원의 판례를 읽고 분석하고, 모의재판 대본을 썼다. 사회 탐구는 '법과 정치'를 선택했다. 아 지금은 '정치와 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하던데. 다만, 본인이 한창 빠져있던 때는 '정치', '법과 사회' 과목이 '법과 정치'라는 이름으로 합쳐진 직후였다. 바뀐 이후로 방대한 양과 함께 높은 난이도로 기피 1순위를 다투는 과목이 되었다.


나름 예쁘게 뽑혔다고 이야기하던 수능특강


남들은 이상하게 볼 지 모르지만,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동아리에서 판례를 읽던 시간이, '법과 정치' 교과서를 읽으며 암기하던 순간이 가장 즐거웠다. 헌법을 읽고, 법 조문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법이 실생활에서 운용되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법조인을 꿈이 가까워만 보였다. 지금와서 솔직히 생각해보면, 좋은 법조인이 되기보다 직업이 가져다 주는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정보는 곧 권력이라고, 한자로 얼룩진 판례과 법전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분야이기도 했다.


시대는 눈 코 뜰 새 없이 빠르게 변했고, 법학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추세셨다. 물론 고등학교를 입학하는 시기부터, 사법고시 폐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으나, 실제로 벌어질 줄은 몰랐다. 로스쿨로 진학해야만 법조인이 될 수 있었고, 법학과가 사라진 자리에는 자유전공이라는 이름의 학과가 등장했다. 로스쿨이나 회계사 등 고시를 준비하는 이들이 진학한다는 소문을 전해 듣긴 했으나,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꿈없는 고등학생은 모두들 한 번씩 자유전공을 꿈꾸지 않았나 싶다. 시간이 지날수록 입학에 필요한 점수는 한없이 높아져만 갔다.


그렇게 살기를 3년, 여전히 TV에 나오는 광고보다 뉴스가 더 재미있고 이해하기 쉬웠다. 법으로 가득찬 세상은 정보를 쏟아냈고,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사건의 흐름 속에서 길을 잃기도 했다. 정보를 받아들이기도 힘들었기에, 제 방식대로 소화를 할 수 없었단 걸 지금에서야 당연하게 바라본다. 그 당시에는 '법과 정치'를 공부하면 할수록 사회의 어두운 면이 눈 앞에 펼쳐졌고, 오랫동안 바라보다 보면, 과거 유명 철학자의 말처럼 심연을 바라보다, 심연이 나를 바라보는 순간을 마주하기도 했다.


서울 상위권 대학의 자유전공학과, 정책학, 행정학과에 수시 원서를 접수했으나, 전부 불합격하여 입시의 끝자락까지 정해진 거취 없이 떠돌았다. 수능 점수에 맞추어 대학을 알아보고, 그제서야 법학과가 아닌 다른 과를 접했다. 다만, 여전히 꿈을 놓지 못하고 서울 소재 대학의 법학과 하나와 집 근처에 위치한 수도권 대학의 광고학과를 선택지로 두었다. 전자는 비싼 등록금과 자취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었고, 후자는 집에서 통학이 가능하다는 점과 함께 최초 합격 시 4년간 반액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조건이 붙어있던 걸로 기억한다. 결과적으로는 서울 소재의 법학과와 수도권 대학의 광고학과에 모두 합격했다. 


이 대목에서부터 제 삶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매번 무슨 과를 진학할 건지 물어볼만큼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이들이, 갑자기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왜 법학과를 가지 않았는지, 왜 서울 소재의 대학을 포기했는지, 다시 입시에 도전할 생각은 없는지. 참으로 많은 조언과 조언을 빙자한 조롱을 던져주었다.


그들에게 실망하거나, 화내기 전에,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가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토록 바라던 법학과 대신 광고학과에 진학하기로 마음 먹은 그 순간, 슬픔은 거두절미하고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토록 바라지 않았나 보다.


물론 광고를 전공하는 순간 속에서, 여전히 간절했던 적은 없다. 돌이켜보면 그냥 스스로가 그런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다만, 법과 정치, 피해자과 가해자, 범죄와 협잡으로 가득 찬 세상을 조금 색다르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는 말로 긍정적이게 포장해보고자 한다.


평생 재미나 창의력과는 담을 쌓고 지낸 검은 뿔테 안경을 쓴 고등학생은

그렇게 3년간 법학도의 꿈을 꾸고는, 광고학도가 되어버렸다.


이제서야 막 스무살이 시작되는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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