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안아줘

by 정종해



오래 전 <월간 에세이>에 연재했던 글이 있었네요.^^

다시 보니 반가워서 올립니다.



“나타나엘이여, 다른 사람이 아무도 그대에게 준 일이 없는 기쁨을 나는 그대에게 주고 싶다”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중...


살찐 노란 점박이 고양이는 지금 잘 살아가고 있을까?

담장위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던 털이 흉측하게 더러워진 아주 어린 새끼고양이는?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엎드려 구원을 바라던 노파는 잘 살아가고 있을까?

가게 운영이 안 되어 문을 닫고 태국으로 일하러 간다던 커피가게 사장님은?

여행 중에 잠깐 만난 미국인 여행자 Kelly는 잘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3일을 함께 걸어간 H대 건축학도는?

그립고 고마운 그러나 그 마음 전하고 싶어도 소식을 알 수 없는 친구 S.H.는 잘 살아가고 있을까?

먼저 다른 세상으로 떠난 아버지와 선배 W.S.는?


오히려 그들이 내게 물어온다면

“노력하고 있다고, 하루하루 잘 버티고 있는 중”이라고

나는 대답한다.


겨울...

그래 아주 추워서, 무겁게 옷을 껴입어서, 찬바람에 고개를 묻어버려서, 숨을 헐떡이며 살아 남기위해 힘겹게 걸음을 걷느라고 그대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고...

그러나 봄...

이제 봄이 되었으니 그대들을 떠올려 보게 되었다고, 봄이 그렇게 시켰다고

나는 덧붙인다.


나는 봄이 시키는 대로 젖은 땅위에 앙증맞게 자라나는 풀 하나를 바라본다.

벌거벗은 나무사이로 어느새 둥지를 튼 까마귀 가족을 바라본다.

곧 만개할 목련의 움추린 봉오리를 바라본다.

그 사이로 스쳐가는 바람이 자신은 겨울이 아니라 봄이라고 속삭인다.

겨울을 이겨낸 어린 고양이는 곧 새로운 생명을 품고 어머니가 되는 연습을 한다.

바람은 겨울의 태양을 멀리 휴가 보내고 봄의 태양을 데리고 왔다.

작은 새들은 태양 앞에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를 지른다.


“안녕하세요! good morning! bonjour! buon giorno! おはようございます! 早上好!"


그리고 그 모두가 악수를 나눈다.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잘 이겨내셨어요.”


그러나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이 있다.

거울 속에 비친 낯설기만 한 사람...

‘그동안 고생했어. 잘 이겨냈어!’









봄이라서 새 부츠를 장만했다.

이제는 새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5년간 동고동락한 짙은 갈색의 낡은,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나에게 아주 잘 길들여진 낡은 부츠는 그 무엇보다 가치롭다. 마치 피노키오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것처럼 낡은 가죽부츠에게 나는 의미를 부여한다. 나라고 하는 존재를 대변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다.

고흐가 그린 낡은 가죽부츠와 무척 닮았다.

오랜 장인의 손마디와 무척 닮았다.

지치고, 아프고, 눈보라와 폭풍우를 헤치고, 진창을 밟아가며 오직 나에게, 나를 위해 단련되어버린 낡은 가죽 신발... 나는 그것을 현관 앞에 놓아둔다. 아니 모셔둔다.

그리고 매일 그것을 바라본다.

너를 잊지 않고 있다고, 그리고 너를 보며 다시 일어선다고 말을 한다.


새 부츠를 신고 봄 길을 걷는다.

얼마나 더 걸어가야 길은 끝이 날까?

힘겹게만 여겨졌던 겨울을 뒤로 보내며 나는 다시 봄의 길 위로 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아마 봄은 잠시 숨을 돌리고 자신을 바라보라고 ‘봄’이었는지 모른다고.


-jeongjong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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