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안아줘

낭만적 대화

by 정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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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rain / 캔버스에 아크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음에 불안해하고 있을 때

모두에게 사랑받지 못할까봐 조마하고 있을 때

열심히 살았지만 보상받지 못함에 절망하고 있을 때

유행에 뒤쳐지는 것이 늙어가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을 때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일 때

잠시 눈을 감고 천천히 나를 바라봅니다.






<연애편지 / 디지털>


낭만적이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생각 속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나무 한 그루와 바람이 있습니다.

미지로 떠나는 아주 느린 열차에 올라탄 사람은

창밖을 바라봅니다.

철커덩 소리와 함께 자유와 희망을 가슴으로 안았습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맞은편에 앉은 여행자는 살짝 미소를 지어보입니다.

그 미소가 어떤 말인지 알 수 있습니다.






<waiting in grasse / 종이에 아크릴>


낭만적인 생각들이 언젠가부터 사라졌습니다.

어느날 전해준 아름다웠던 언어가

현실 앞에서 가차없이 휴지통속으로 버려진 뒤부터

그 언어를 부끄러워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눈을 감은 지금

그 언어는 나와 당신을 바라보는 고귀한 시선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cordelia / 종이에 아크릴>


비 내린 뒤 잎사귀에 맺힌 빗방울을 바라볼 때

태양이 저무는 눈높이에 맞추어 노을을 바라볼 때

철썩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맑고 순수한 아이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을 때

인생에 관하여 토론을 나누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엿들을 때

나는 어느 시인의 애가가 눈에 들어옵니다.

나는 다시 그 고귀한 시선을 찾아냅니다.






<당신에게 / 디지털>


금빛 은빛 무늬가 있는

하늘이 수놓은 융단이

밤과 낮 어스름의

푸르고 침침하고 검은 융단이

내게 있다면

그대의 발 밑에 깔아 줄 텐데

가난하여 오직 꿈만을 가졌기에

그대 발 밑에 내 꿈을 깔았으니

사뿐히 걸어다오

그대가 밟는 것은 내 꿈이니.


-예이츠 詩 <하늘의 융단>


2017.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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