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by 정종해


한 남자가 있습니다.








하늘은 어김없이 그에게도 고통의 소나기를 퍼부었습니다.








갑작스레 내린 소나기라 피할 사이도 없었습니다.

마음은 피할 곳을 찾아 헤매지만

막상 찾으려하니 그렇게 많던 처마도 버려진 우산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족들은 소나기일테니 금방 그칠 것이라고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자의 마음속으로 스며든 고통의 시간은 소나기가 아니라 장마와 같았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노력과 가슴에 그려온 희망들이 비에 씻겨 사라져갔습니다.








끝내 참아내지 못한 남자는 달아나버렸습니다.









그와 함께 고통의 빗줄기를 맞고 있던 가족들을 내팽개친 채

홀로 태양을 찾아 떠났습니다.








멀리 한참을 걸었습니다.

태양은 보이지 않았지만 고통을 피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풍경들이 그의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는 하나 둘 남의 이야기 같았던 그 풍경들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남자는 비겁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천천히 자신이 달려온 길을 되돌아 걸어갔습니다.








여전히 비는 그치지 않았지만, 빗방울은 조금씩 잦아들었습니다.








비에 흠뻑 젖은 가족들이 여전히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남자를 바라봅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가족들에게 다가갑니다.








그들은 맨 먼저 그의 손을 잡습니다.

“괜찮니?”

“괜찮아?”







“내일 떠날거라고 말하지 말라.

그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도착하는 중이니까.

깊이 보고 깊이 머물라.

봄의 가지에 움트는 싹이 되고,

노래를 배우는 작은 새가 되고,

꽃 속의 애벌레가 되고,

돌 속에 숨은 보석이 되기 위해,

그대는 매순간 지금 여기에 도착하고 있으므로,


-冊 <탁낫한의 평화로움>에서 발췌... <진정한 이름으로 불러달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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