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고 평정을 찾다

영남알프스 : 영축산 ~ 신불산 ~ 간월산 원점회귀코스

by 목하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길을 덮은 어둠이 유난히 차갑게 다가오는 날이었다. 내 윤곽을 감싸고 도는 어슴푸레한 가로등의 따스함조차 위로가 되지 않는 날. 일도 사람도 그 흐름을 따르기 버거운 날이 있다. 작년 11월의 끝자락이 나에겐 그랬다. 서늘한 밤 공기는 아스팔트 길을 단단하게 얼려 놓았고, 그 위를 걷는 내 발은 차가운 돌멩이 마냥 정없이 툭툭 밀려났다.

아 오늘은 그런 날인가보다.






그런 날인가보다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 뭉친 마음이 채에 걸러진 듯 풀어지고, 그 사이로 말갛고 고요한 마음이 나를 깨웠다. 스르르 눈을 뜨자 새벽의 첫 빛이 내 눈꺼풀에 부드럽게 스쳤다. 그 빛은 메마른 먼지들을 어루만지며 방 안을 보송한 감각들로 채웠다. 마음이 약동했다. 추운 시기를 묵묵히 견뎌내다보면 찾아오곤 했던 그 생명의 약동.


반가워.


내 안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기운이 다시 움트는 순간, 나는 산을 가고 싶었다.


아직 어둑한 새벽, 체온으로 따뜻하게 데워진 이불을 툭 밀어내며 일어났다. 방 안을 감싸고 돌던 맵싸한 찬 공기에 손끝과 발끝이 움츠러 들고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망설임이 밀려왔다. 그러나 이내 옷장 앞으로 걸어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위 아래 내복부터 차근차근. 한겹한겹. 내 몸을 감쌀 수 있는 옷들을 총총 둘러메기 시작했다. 위축되어있던 몸이 서서히 태연자약하게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래 추우면 옷을 껴입으면 되는건데.......

큰 문제의 해결책은 의외로 사소하고 간단하다.


이른 아침, 신불산 자연휴양림 주차장에 도착했다. 물병, 보조배터리, 등산 장갑, 등산화, 썬크림 등 산행에 꼭 필요한 물품들만 걸친 단출한 몸과 마음으로 출발했다. 처음에 나를 맞이한 건 거침없이 콸콸 흐르는 폭포수였다. 그 물소리는 마치 자연의 심장이 박동하는 듯 했고, 잠들었던 나의 심장도 함께 뛰기 시작했다.


이번 산행 코스는 신불산자연휴양림 하단에서 출발하여 영축산 ~ 신불재 ~ 신불산 ~ 간월재 ~ 간월산을 거쳐 다시 신불산자연휴양림 하단으로 되돌아 오는 원점 회귀 코스였다. 2021년, 산을 잘타는 친구와 함께 대략 4시간 만에 왕복을 찍었던 코스였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내 미래를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 덕분에 산행로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산을 오르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나무에 묶여있는 헝겊 조각과 밧줄이 대신 길을 안내해주었다. 앞서 이 길을 지나간 사람들이 남겨놓은 흔적들 덕분에 나는 혼자여도 혼자가 아니었다.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참 복된 일이다.

솔방울이 든 봉지가 길을 안내해줬다.


무릎까지 잠기는 낙엽들을 서걱서걱 걷어내며 오르다보니, 산은 앞서가던 사람들을 점점 뒤로 밀어냈다. 내 앞에는 주황색 등산복과 비니를 눌러 쓴 할아버지 한 분만 묵묵히 오르고 계셨다.

"허, 거기는 길이 아닌데!"

할아버지는 자꾸만 이상한 길로 가는 나에게 길을 바로 알려주셨다. 그런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열심히 산을 올랐다.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오르다보니 영축산 정상에는 할아버지와 나 둘 뿐이었다.


같은 시간, 같은 방향을 향해 비슷한 속도로 길을 오른다는 것. 그것은 인생에서도 산에서도 알 수 없는 연대감을 안겨준다. 그런 마음이 통한 할아버지와 나는 정상에서 몰아치는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아버지께서 직접 재배한 대추, 배, 그리고 생강으로 달여낸 따뜻한 차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나는 산이 좋아서 이 근처 터를 잡았네. 원래는 개 4마리랑 같이 오르는데,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그래서 사람 많은 주말에는 혼자 오지. "

그 말 끝에 할아버지는 오늘의 다행스러움을 덤덤하게 털어놓으셨다. 혼자 오를 때면 자신이 언제 쓰러질지 몰라 불안하다고. 그래서 옆에 누군가가 같이 있으면 좋다고 하셨다.


앞서가는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길을 잃고 정상에 오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나와 함께 산을 오른 덕분에 혼자라는 불안감을 덜 수 있었다. 짧은 인연이든 긴 인연이든 이렇게 만나 서로에게 마음을 기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어쩌면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닐까. 나를 안내해주던 헝겊 조각들, 산지기 할아버지, 그리고 나.


"큰 개 4마리 키우는 집이라고 하면 다들 알지. 한번 놀러와."

할아버지는 개들이 기다리는 댁으로, 나는 신불산으로 각자의 길을 나섰다. 서로의 다음 여정을 응원하며. Good luck!


영남알프스의 산지기 할아버지 뒤를 따라 쫄래쫄래...



영남알프스는 가을 억새군락지로 유명하다. 아침햇살을 받은 억새들이 산의 능선을 따라 찬란하게 흐드러져 있었다. 광활한 산의 맵시를 따라 휘몰아치는 바람에도 꺽이지 않고 오히려 춤추듯 자리하고 있었다. 억새는 아무리 자르고, 뽑고, 태워도 다시 돋아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우리의 아픈 역사들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다.

대단하다. 너희는 어떻게 그렇게 강할 수 있지?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행색의 억새들이 세상 어느 존재보다 강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억새는 그 모진 바람과 시련들 속에서 태어났고, 그렇기에 그런 역경과 한 몸처럼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그 역경이 고통이 아닐지도. 그들만의 생태를 인간들의 입장에서 강하다고 느끼는 걸지도. 억새에게는 그 삶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영축산을 지나 신불산, 신불산을 지나 간월재, 간월재를 지나 간월산. 나와 반대방향으로 가는 분들과 서로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에 대한 경험을 나누며 응원했다. 그 찰나의 만남들이 겹겹이 쌓여 나는 나의 길을, 그들은 그들의 길을 또 뚜벅뚜벅 걸어갔다.


간월재에서 간월산으로 가는 길 초반에는 계속 계단을 올라야 했다. 사람들은 무거운 다리를 간신히 들어올리며 한 계단씩 오르고 있었다. 나 또한 몸이 무거워짐을 느꼈지만, 이내 마음을 바꾸고 계단을 단숨에 올랐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올라갔을까?

하늘에서 두 줄의 실이 내 다리를 들어주고 있다고 상상했다. 덕분에 나는 하늘에 내 몸을 두둥실 태운 채, 계단을 올랐다.


길을 계속 오르다 보니, 내 눈 앞에 한 중년 부부가 나타났다. 아주머니께서 산을 오르는 것이 힘드셨는지, 남편에게 볼멘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남편은 익숙한 듯 여유롭게 아내의 투정을 받아주며, 보폭을 맞춰 함께 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오랜 시간 함께한 부부의 사랑이 느껴졌다.


반대 방향으로 길을 걷는 사람들, 다른 속도로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 티격태격 서로에게 의지하며 오르는 사람들. 그 모든 몸짓들은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생명, 자연의 일부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몸짓처럼.


간월산 정상에서 광활한 산맥과 산바람을 흠뻑 즐긴 뒤, 하산을 시작했다. 예상보다 시간이 늦어져 서둘러 길을 나섰다. 올라올 때와는 다른 길을 택했는데, 낙엽이 수북히 쌓인 산책로를 만날 때마다 길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번번이 길을 잃고 되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유독 하산하는 사람이 적은 길이었다. 마침내, 나는 정말 산행로를 이탈해 버렸다. 어느새 범상치 않은 몸짓으로 돌을 짚으며 내려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헝겊 조각, 밧줄, 이정표 등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음… 나는 어디서부터 얼마나 이탈해버린 걸까?


되돌아가기에는 막막했다. 휴대폰 지도는 20분 후 하산지에 도착한다고 알려주었지만, 그 시간마저 믿기 어려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길을 개척해보자.

인적이 전혀 없는 길, 그 산새는 험난했다. 최대한 단단한 돌을 짚어가며, 이제는 발이 아닌 손, 다리가 아닌 몸 전체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래도...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길을 다니지 않을까?

스스로를 다독이며, 묵묵히 내려갔다.


그렇게 내려가다보니 눈앞에 5m는 족히 넘을 것 같은 커다란 돌들이 급경사로 펼쳐져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그 돌들 사이 좁게 파여진 길을 미끄럼틀 삼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물웅덩이에 철퍽 엉덩이가 잠겨 버렸고, 그 순간 눈앞에는 거세게 내려치는 폭포수가 펼쳐졌다. 가방, 바지, 등산화, 장갑, 모든 것이 젖어들고, 스산한 물의 차가운 기운이 내 살을 감싸는 순간,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갑자기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에서 무파사가 거센 물살에 휩쓸려 떨어져 내려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더 이상 내 힘 만으로는 갈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다행히 전화가 터졌고,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것이 내 생애 두번째 119인가…

전화 너머로 소방관님의 조급하지만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해가 지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였고, 나는 인적이 전혀 없는 산자락에서 갇힌 상태였다. 정확한 위치를 말할 수는 없었지만,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과 지도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 내가 지나온 길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최대한의 정보를 소방관님께 전달했다.

"시간이 좀 걸릴 거에요. 휴대폰 배터리는 아끼고 있어요."

구급대원과의 통화가 끝난 후, 다시 한 번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이제 나는 고요하게 남겨졌다. 주위엔 세찬 폭포수와 울퉁불퉁한 바위들, 그리고 아직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세계였다.


폭포수 옆 구조를 기다리며 철퍼덕 앉아있는 나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멀리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등산복, 구급대원 복을 입은 대원들이었다. 밀려오는 죄송함과 감사함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분들과 함께 산을 내려오자, 이미 응급구조 차량 두 대와 평지에서 기다리고 계신 다른 소방대원들이 보였다.

나 한 사람을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셨구나…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두 마디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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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의 다사다난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나는 먼저 몸과 마음을 쉬게 했다.

나는 오늘, 도대체 어떤 일을 겪은 걸까?

마침 연락을 하고 있던 외국인 친구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전했다. 친구가 던진 한 마디가 내 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How scared were you?"
얼마나 무서웠냐고?
나는, 과연 무서웠던 걸까?


산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 그때의 내 모습이 제3자의 시선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덤덤하고 씩씩하게 돌을 하나씩 짚으며 산을 내려가는 모습, 차분하게 내 위치를 전화로 설명하는 모습, 구급대원분들께 다치지 않았다며 혼자 내려갈 수 있다고 씩씩하게 말하는 모습, 그리고 몰려드는 죄송함과 감사함에 거듭 꾸벅꾸벅 인사하는 모습.

그 상황 속의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How scared were you?"

내 안에 있던 감정들을 하나하나 헤집어 볼 순 없지만, 그 안에는 분명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깎아지른 바위들이 가득한 산 속,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그 곳, 내가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들었는지도 모를 만큼 막막했던 순간들. 암벽이 끝도 없이 내 앞에 펼쳐졌을 때, 내 안에는 분명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주위 어디에도 내 편이 아닌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도, 돌도, 낙엽도 그저 그 자리에 있는 존재일 뿐, 나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마음을 집중했다.

그래, 침착하게 땅과 가까워져보자.

그 나무들, 돌들, 낙엽들이 내 마음을 함께 해주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차근차근 길을 개척해 나갔다.


구급대원과의 연락을 끊고 구조를 기다리던 나는 그 순간,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나에게 남겨진 건 폭포수 소리와 어슴푸레 저물어가는 해, 그리고 한기로 둘러싸인 내 몸이었다.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오고 있었지만, 그것이 위협인지 위로인지알 수 없었다. 그저 가방 속에서 펜과 축축해진 일기장을 꺼내었다. 오늘 만난 사람들, 내 안에 스친 생각들을 차근차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모든 흐름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가서 글을 쓰기엔 몸도 피곤하고, 이 현장감은 담기지 않을 것 같아 아쉬웠는데, 이렇게 폭포 소리가 들리는 자연 속에서 글을 쓸 수 있다니. 그 마음이 내 몸을 감싸 안았고, 나는 그 자연과 하나가 되어 글을 찬찬히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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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행복의 역치가 낮은 거 같아요."

같은 공간에서 꿈을 키우던 한 후배가 언젠가 나에게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너가 가진 그 긍정의 기운은 누구도 가지지 못하는 거야."

주변 사람들은 나의 긍정적이고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멋지게 바라보았다. 그들에게 내 긍정의 에너지는 매력적으로 보였고, 함께 그 길을 걷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본 나의 모습일 뿐, 내면의 진짜 나는 다르게 존재한다. 나 역시 여느 사람처럼 많은 번민과 갈등을 안고 살아가며, 그 감정들을 다스리는 법에 서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바라본 그 긍정적인 나도, 결국 나의 일부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다시 일어나서 긍지를 가지고 나아갈 수 있을까?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순간에 집중하고, 가진 것에 감사하는 것이다. 산에서 길을 잃고 두려운 순간에도 내가 가진 상황에 감사해하며 한 걸음씩 나아갔듯이, 지금도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길 수 있다면, 휘발되지 않는 행복과 긍정의 에너지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서 품고 있는 질문 중 하나가 있다.

"어떻게 하면 내면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내면의 평정을 찾기 위해, 수도승처럼 규칙적이고 고요한 삶을 지향한 적도 있다. 지금도 그런 평온한 일상에 끌리고, 혼자 있는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혼자일 때 나는 내 마음과 몸에 집중할 수 있고, 그때만큼은 외부의 소음과 불안이 나를 어지럽히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에 새로운 관점을 발견했다. 어쩌면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기 보다, 편안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내 마음과 몸은 그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을 때, 내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어려운 것을 깨달았다. 평정을 유지하고 싶어, 혼자 있는 공간으로 숨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내 질문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변했있다.

"어떻게 하면 세상 속에서도 내면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최근에 브런치에서 알게 된 영진님께서 폭포 수 옆 잠든 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성공한 사업가가 마음의 평안을 주는 그림을 구입하러 갔어요. 깊은 산속에 작은 호수가 있는 그림에 발걸음을 멈추었어요. 바람 한 점 없는 호수가의 평온함은 그가 원하던 거였어요. 그런데 그 반대편에 그것과 정 반대의 그림이 있었어요. 폭포수가 거품을 일으키며 마치 앞으로 물방울이 뛰어 나오는 듯한 그림이었어요. 그런데 그 옆에 작은 새 한마리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어요. 잔잔한 호수는 나뭇잎 하나만 떨어져도 파동이 생기는 불안한 평안인 것 같아요. 그는 작은 새의 그 마음을 원했어요.


폭포수 옆에서 새는 어떻게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을까?

그 새에게는 폭포수가 고통이 아니었을 거라 생각해본다. 폭포수로 인해 불편하거나 아픈 감정이 생겼을 수도 있지만, 그 새는 그것을 없애거나 더 즐기려는 집착이 없었을 것이다. 그냥 지금, 이 순간에 다가온 자연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삶을, 그 순간을 즐긴 것이 아닐까.


그런 날인가보다. 어둠과 밝음, 차가움과 따뜻함은 함께 존재하고 번갈아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을. 삶은 그 자체로 자연스러움을 가진다.


내 무릎을 감싸안던 낙엽들, 나에게 길을 안내해주던 헝겊 조각들과 산지기 할아버지, 산을 오가며 스쳐지나갔던 사람들, 거센 바람에 넘실대는 억새들, 콸콸 쏟아져 내리던 폭포, 소방대원 분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질문을 주는 사람들. 그 모든 존재들이 다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은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움이다. 사람들에게 보였던 나의 긍정도, 폭포수 옆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덤덤함도 그 속에 포함된다.


내가 가진 촉수를 너무 세우려하지 않고, 자연스러움에 기댈 줄 아는 것. 그것이 내 질문에 대한 또 다른 답이 될 수 있을까?

큰 문제의 해결책은 의외로 사소하고 간단하다.


마음은 뭔가 불쾌한 것을 겪으면 그것을 제거하려고 집착하고, 뭔가 즐거운 것을 경험하면 그 즐거움을 지속하고 배가하려고 집착한다. 그러므로 마음은 늘 불만스럽고 평안에 들지 못한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中






토요일 연재